손상필 목사의 기고 글
놀랬습니다.
새벽기도 하기 위하여 교회에 갔더니 교회 안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놀랬습니다. 건물 안에는 비상구를 알리는 희미한 불만 있어야 하고 밖에서 비추는 외벽 등이 안쪽을 비춰야 하는데 오늘 새벽에는 정 반대로 안쪽이 환하고 밖이 어두웠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새벽에 우리 아닌 다른 사람들이 먼저 왔는가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인가 우리 새벽기도 팀이라면 열쇠를 어디서 구했는가 여러 생각이 들면서 조심스레 문 열어보니 문은 잠겨있었고 안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어젯밤에 교회를 사용한 후 사람들이 전깃불을 끄지 않고 나가 버린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에서 밤늦게까지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새벽기도 끝나고 어느 정도 정리한 후 밖에 나와 보니 날이 환해져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집에 오면서 잠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젯밤에 누가 불을 끄지 않았는지 알아보면 알겠지만 관심 없고 그들이 불을 끄지 않았던 것이 어쩌면 옳은 것이 아닌가 그런 엉뚱한 생각 말입니다. 교회는 사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니 늘 문도 열어 놓고 불도 켜 두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는 사람 누구나 교회 들러 기도하고 싶을 때 기도하고 앉아 생각 좀 하고 싶을 때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을 닫아 두어야 하고 시큐리티 장치를 해놓고 소수의 핵심 멤버만 키를 가지고 있고 정해진 시간에만 교회 올 수 있다니 삭막하고 답답한 마음입니다.
지난 목회지에서 교회를 구입하여 한 참 수리할 때의 일입니다. 늘 끼고 있었던 결혼반지를 벗어 책상위에 올려놓고 작업복 차림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어떤 젊은 퍼시픽 아일랜드 남녀청년이 들어오더니 여자아이가 나를 붙잡고 별 중요치 않은 성경 내용을 자꾸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싫은 표정 못하고 마주보며 설명해 주고 있었는데 남자 청년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여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나간 한 참 후 나의 시계, 반지, 지갑… 등 괜찮은 것 다 가지고 가벼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반지는 되돌려 줄 것 같아 가까운 지역 쓰레기통을 다 뒤져 보았으나 야속하게 없었습니다. 그런 비슷한 일이 두어 번 더 있은 후 방법은 문단속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평소에는 문을 닫아 두었고 예배시간에는 사람을 두어 문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면 열어 주고 모르는 사람이면 물어 들여보내고 또 지켜보라 하였습니다. 교회가 이래서는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예수님께 대한 별명 말입니다. 우리 주께는 이런 별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7장 34절 말씀에 보면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별명이었습니다. 당시 경건하다는 사람들은 세리같은 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는데 주님은 오히려 그들 집에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밥을 같이 먹고 파안대소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 그때 주님은 왜 경건한 자들로부터 오해를 사게 그러고 다니셨을 가요. 그때 그 잔 속에 들어 있던 것이 포도주였는지 아니면 사이다였는지 모르겠지만 왜 잔을 기울고 그러셨을 가요. 당시 경건한 사람들의 눈에 오해 살 일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인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세리와 죄인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찾아가 그들이 주는 밥을 같이 먹고 같이 대화하고 파안대소를 하며 그들의 응어리를 풀어주며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것입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주 죄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기 부담스럽다고 하는 말 말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무론하고 누구든 쉽게 교회 안에 들어 올 수 있어야 하는데 눈치 뵈고 부담스러워 교회를 꺼린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복음이 교회 안에서만 머물러 있고 신앙공동체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면 얼마가지 않아 교회는 텅 비어 버릴는지 모릅니다. 교회사에서 보면 사람들이 교회에 오기 부담스러운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오기 곤란하니 교회보다는 오히려 들녘과 광야로 나가 기도하고 예배하기 시작하여 산 속에 수도원이 많이 만들어 지고 교회는 텅텅 비어 버렸습니다. 교회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입니다. 문턱을 낮추십시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였던 주님 생각하며 말입니다.
손상필 목사(새문안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