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필 목사의 기고 글
다시 쓴 출애굽기
알고 있지만 다른교회 나가시는 권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꼭 점심시간을 기준으로 두어 시간 만나고 싶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오랜만에 청한 것이라 예사가 아니라 생각되어 서로 어렵게 시간을 맞춰 한 주 후 약속장소에 아내와 같이 나갔습니다. 한 사년 만에 만나는 권사님이셨지만 금방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참 미인이셨겠다 생각되는 얼굴형에 옷차림 또한 세련미를 여전히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권사님께서 안 아픈데가 없어요 라고 표현하셨듯 그 때 보다는 불편하신 것이 얼굴에서 약간 읽혀졌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시며 중국집으로 안내하고 여러 요리로 점심을 사 주셨는데 오랜만에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던 중 권사님께서 월간 문학지 두 권을 꺼내 보이셨습니다. 거기에는 권사님의 이름으로 단편 수필이 두 곳에 실려 있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는 젊었을 때에 수필 부문으로 등단하셨고 그 연세에 드물게 책을 좋아 하시고 예전 같지 않지만 아직도 글을 쓰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고맙게도 다른 사람에게 해 보지 않은 간증이라시며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을 만나 신앙생활 하신 것을 죽 말씀해 주셨습니다. 처음 들었지만 진심이 실려서인지 은혜가 되었고 한 사람을 구원하시고 그를 통하여 그 주변 사람을 개종시킨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식사를 다 마치고 조용한 커피숍으로 옮겨 본론을 꺼내셨습니다. 가방에서 두터운 이미 타이프 된 원고뭉치를 꺼내셨습니다. 삼십 여 년 전에 중동에 파견근무하면서 사막지역에서 생활하셨답니다. 그 때 경험한 것 위에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할 때에 자신을 군중속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애굽에서부터 가나안 땅 들어갈 때까지의 여정을 다시 읽으며 느끼고 생각나는 것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쓰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 본인의 지난 삼십년간의 광야생활과 같은 인생 속에서 느껴진 신앙 진술이셨고 어쩌면 생의 마지막이자 다시 쓸 수 없는 신앙고백집이었습니다. 이 소중한 초고를 저에게 보여 주며 오늘 우리의 만남은 하나님과 우리만 아는 것이라고 다짐 시키시면서 이 원고를 한 번 읽어주고 교정할 부분이 있으면 교정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마웠지만 부담스러운 부탁이었습니다. 남의 원고를 교정한다는 것은 사실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를 망설이게 한 것은 권사님이 삼십년 동안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느끼고 경험한 어쩌면 성령행전을 저가 읽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교정한다는 것이 그분에게 주신 은혜와 역사하심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제 삼자인 저가 본래의 은혜를 가리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양하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아니었고 권사님의 바램이 간절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음주간에 뵙기로 하고 조심스레 해 보겠노라며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사실 걱정 됩니다. 권사님의 신앙고백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읽어갈 수 있을까. 교정할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권사님이 표현하고자는 의도와 같은 의미를 표현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권사님에 부어주신 영적인 느낌을 나는 공감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저를 서두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답하고 왔으니 조심스레 열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이곳에 이민 온 분들은 모두다 꼭 단풍잎 같다는 생각을 말입니다. 단풍잎은 별처럼 생겼고 색깔이 빨강 파랑 노랑 등 다양합니다. 빨간 색깔의 단풍잎, 노랑 단풍잎, 파랑 단풍잎 모두다 얼마나 아름답고 곱습니까. 이민 온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그렇습니다. 멀리서 만날 때에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까이서 말씀을 나누며 그분들의 생과 경험들을 알아 갈 때마다 마치 형형색색의 별모양 단풍잎 같습니다. 색갈이 곱고 빛나는 별처럼 아름답습니다. 책을 써라하면 대여섯 권은 쓸 수 있을 정도로 소중합니다. 버릴 것이 없고 간직할 수 있다면 다 간직하고픈 귀한 경험들입니다. 모두다 삶의 경로가 다르고 스킬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고 고백이 다르고 그러면서도 여기까지 살아온 인생을 보면 이는 분명 사람이 계획한대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대로 인도되어온 인생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여기까지의 우리의 인생은 그분이 인도하신 성령의 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더 늦게 전에 하나님이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을 잘 되새겨 보며 성령행전을 기록해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입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에는 마무리 인사말이 없습니다. 이는 그 다음장 28장을 계속 우리보고 개인적으로 써 보라는 것이랍니다. 권사님이 출애굽기를 다시 쓰셨듯이 우리도 사도행전 28장을 쓰십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진술해 보십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손상필 목사(새문안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