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고린도전서- 십자가가 치유하는 삶
고린도전서는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많은 실천적인 도움을 주는 서신중의 하나이다. 고린도 지역에 있는 교회에서 발생한 현안들에 대한 답변으로 주어져 있기 때문에 삶과 아주 밀접한 교훈들로 구성되어 있다.
<기록연대와 장소>
바울과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는 각별했다. 바울은 고린도를 적어도 세 번 방문했고 적어도 네 편의 편지를 작성했다. 이것을 시간적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① 첫 번째 방문 : 50-52년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함(행18장)
② 바울이 “이전의 편지”를 작성함(고전5:9,11; “고린도 서신A”)
③ 53-54년에 바울이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를 기록함(고전16:8; “고린도 서신B”)
④ 바울이 “고통의 편지”를 작성함(고후2:1; “고린도 서신C”)
⑤ 두 번째 방문 : 고통스러운 방문(고후2:1; 12:14; 13:1-2)
⑥ 54-55년에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고린도후서를 작성함(고후7:5; 8:1; “고린도 서신D”)
⑦ 세 번째 방문(행20:2)
고린도전서 16:8에 따르면 바울이 세 번째 선교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2년반동안 머물면서 고린도전서를 썼다. 아마53년 말이나 54년 초에 고린도전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기록동기>
바울과 고린도 교회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오랜 기간 동안 다소 복잡한 관계에 있었다. 바울은 제2차 선교여행 때 고린도 교회를 세웠다.그는 아테네에서 고린도로 이동했는 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천막제조판매를 하며 그들의 동업자로 일했다. 바울은 일부 유대인들이 그를 모독하기 전까지 안식일이 되면 회당에서 설교했다. 고린도에서 18개월 동안 머문 후 시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갔는데 제3차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 2년반정도 머물게 된다. 그때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때 들린 소식은 고린도라는 특수지역에서 다원문화속에 있는 신생교회가 겪는 갖가지 문제들 이었다. 고린도 교회의 사정에 대해 두가지 경로를 통해 듣게 되는데 첫번째 통로는 1-6장에 나오는 문제들을 글로에의 집 사람들이 바울에게 구두로 전해 준 소식이었다. 또한 7-15장에 제기된 문제는 고린도 교회가 자신들에게 발생한 문제들을 스데바나와 보드나도와 아가이고를 바울에게 대표로 보내면서 서면으로 질의한 것들이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당면한 이러한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린도전서를 쓰게 된 것이다.
<내용개요>
1) 서언 – 문안인사와 감사(1:1-9)
2) 구두보고에 대한 답변(1:10-6:20)
①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미성숙(1:10-4:20)
② 교회안에 있는 부도덕(5:1-13)
③ 신자들 사이의 분쟁(6:1-20)
3) 고린도교회로부터 온 편지에 대한 답변(7:1-16:4)
① 결혼과 관련된 문제(7:1-40)
② 우상 제물과 관련된 문제(8:1-11:1)
③ 기독교 예배와 관련된 문제(11:2-34)
④ 영적 은사와 관련된 문제(12:1-14:40)
⑤ 부활과 관련된 문제(15:1-58)
⑥ 구제 연보와 관련된 문제(16:1-4)
4) 결어(16:5-24)
<고린도 교회의 구체적 상황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성도들의 상태가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는 먹일 수 없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지적한다(3:1-2). 다른 말로 하면 육신에 속한 자들이라는 것이다(3:1,3). 정말 그들은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무엇을 통해 그들의 신앙이 미성숙한 신앙임을 알 수 있는가? 가장 먼저 문제가 된 것이 분쟁이었다. 그들은 각각 바울, 아볼로, 게바, 심지어 그리스도께로 나뉘어 속했다고 말하면서 분쟁했다(1:12). 그 분쟁의 원인은 누가 말한 것이 더 옳고 효과적인가에 대한 논쟁이었을 것이다. 또한 전도자들의 수고와 세례 수여자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듯하다(1:13). 고린도 교회의 두번째 문제 상황은 음행사건이었다. 고린도 성도 가운데 계모와 통간하거나 창녀와 음행하는 자들이 있었다(5:1-13; 6:15-20). 그런데도 고린도 교회는 이런 일을 통한히 여기지 않고 그 일을 행한 자를 쫓아내지도 않았다(5:2).또한 고린도 교회에서 복잡하게 얽힌 또 하나의 중대한 문제는 우상제물을 먹는 것과 관련이 되어있다(8:1). 고린도 성도들이 우상제물을 먹게 되는 경우는 세 가지였다. 첫째로, 우상의 신전(“우상의 집”)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였다(8:10). 이것은 고린도 교회에서 사회적으로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들이 때때로 정치적인 이유로 참석할 수 밖에 없어서 발생했다. 이 경우에는 우상의 헛됨에 대한 개념이 정리되지 않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둘째로, 시장에 유통된 우상제물을 사서 먹는 경우이다(10:25). 이 때는 그것이 우상 제물인가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셋째로, 불신자가 자신의 가정에 신자를 초청해서 우상을 대면하게 되는 경우이다(10:27). 이 때 신자는 그것이 우상의 제물인지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지만 우상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지 못한 약한 신자가 보고 있다면 먹지 않는 편이 낫다고 한다.
또한 고린도 교회는 은사와 관련하여 여러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다양한 은사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반드시 사랑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13:1-13). 마지막으로 고린도 교회는 부활에 대한 확신을 잃고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주의 일에서 손을 놓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15:58). 부활에 대한 의심은 두가지로 표현되었다. 첫째로 부활의 역사성에 대한 의심이다. 고린도 교회에서 어떤 사람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15:12)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을 비롯하여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을 열거한다. 고린도 교회의 어떤 신자들이 품은 둘째 의심은 부활의 몸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15:35). 이에 대해 바울은 부활의 몸이 육의 몸이 아니라 신령한 몸임을 알려주어야 했다.
<메세지>
고린도 교인들은 왜 이러한 문제에 봉착했는가? 그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그 사회와 그 문화로부터 거룩한 결별을 하지 못하고 그 문화의 척도에 따라 교회 생활을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고린도 사회는 지위와 힘과 지혜에 대한 전통적 개념이 지배했다. 다시 말해 고린도 사회에서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자신들이 가진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다는 관행이나 기대치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보편적이면서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삶의 방식이었다.
이 것을 이해하면 왜 분열이 일어났는 지를 이해할 수 있게된다. 아마 먼저 전한 바울보다 후임으로 온 아볼로가 더 깔끔한 설교를 하고 시대에 맞는 웅변술을 소지했던 것 같다. 고린도 교인들이 세상적 방법으로 자신에게 호감 가는 사람을 택하다 보니 파벌이 생긴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어처구니 없게도 자신들이 선호하는 복음 전도자들을 두고 벌인 경쟁뿐 아니라 자기 과시와 자기 유익을 추구함에 있어서 그들은 고린도 사람들다웠다. 자신들에게는 부와 명예를 가져오고 다른 성도에게는 피해를 가져올 목적으로 세상법정에 소송을 제기 했다. 그것은 세상에서 당연히 있는 일이지만 성도들의 모임에서 나타날 현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도답게 구별되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세상 방식을 따랐다. 고린도전서12-14장에서 발견되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우열을 가리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성령의 은사를 교회에 유익을 주고 교회를 세우는 쪽으로 겸손히 받지 않고 자신의 영적인 우월감을 표시하는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도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까지 높아지려는 세상적 탐욕이 그대로 여과됨 없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성만찬을 기념하는 자리에서도 조차 사회적 서열이 적용되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현상이겠는가? 성만찬자리에서 그 시대의 사상이 깊이 몰입한 일부 신자들 중에 부자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자리에 있는 자들에게만 좋은 음식과 포도주를 비롯한 좋은 대접을 해줌으로써 결국 성만찬 자리까지도 사회적 지위를 확인시켜주는 자리로 전락시키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11:17-31) 이것은 그 당시 1세기 로마문화권에서 사적인 저녁식사가 준비되고 행해지는 일반적인 관습과 다르지 않는 모습이었다. 당시 고린도 교회의 일부 성도들이 이와 같이 교회밖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생활 방식을 그대로 교회 생활에 적용시키려 했고, 또한 자신들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도 교회안에서 유지되기를 원했기에 나타났던 문제들이었다. 이때 바울은 무엇으로 그들의 생각을 바꾸려 하는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신비와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자비가 그들의 삶을 전복시키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고, 나름대로 신령한 은사를 받았다고 하지만 내부를 깊이 들여다 보면 아직도 “세상적인 판단기준과 가치기준”에 의해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비행들이 들려오는 문제들이 돌출된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당시의 문화적 상황에 비춰본다면 하나 하나 모두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자기가 선호하는 지도자를 향해 파당이 이루어지는 것, 자신의 이기적 욕심에 의해 소송을 하는 것, 우상의 제물에 대해 자신 있게 행동하는 것, 밋밋한 성령의 은사보다 무엇인가 강렬한 은사를 사모하는 것, 나와 신분과 지위가 같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음식을 준비해서 만찬을 하는 것 등 이것들은 그 당시 그 사회에 있어서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산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다. 아마 그런 것이 잘 사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적으로 용인된 자신의 지위와 권리를 사용함으로 인해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교회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삶을 살 때(9:15-18) 비로서 성도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교회 공동체가 올바르게 형성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그때에야 만이 우리는 이 세상을 향해 우리를 보라고 외치고 우리를 통해 편만해지는 하나님 나라의 복됨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유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중요시하던 삶의 패턴에서 변화하여 이웃과 약자들을 위한 자기권리의 포기와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사랑의 행함속에서만 진정한 교회 공동체의 향내가 풍겨 나올 수가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특권과 권리를 포기하고 약한 자를 위한 십자가를 지심으로 세상 질서와 가치관을 전복시키시지 않으셨는가?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서 어떠한 특권을 주장하시고 인정 받기를 추구하신 적이 있으신가? 그분의 십자가 앞에서 이 시대의 모든 상대적 사상인 우월주의와 이기주의와 배타주의와 자랑은 그 목소리를 잃고 만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도 역시 십자가만이 참된 길이요 우리의 자랑임을 선포하는 것이다(고전1:18-25).
이연재 목사(라이드예수마음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