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열왕기서(3) – 축적된 죄의 무게의 결과 (잔존왕국시대)
(왕하18장-왕하25장)
드디어 북이스라엘이 주전722년에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유배당하고 그 땅은 폐허가 되었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남유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느냐이다. 과연 남유다는 어떤 대응을 할까? 북쪽이스라엘의 멸앙을 바라본 남쪽유다의 왕은 아하스였다(주전732-715년).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그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저자세로 앗시리아와 결탁함으로 국제정치의 역학을 의존하는 방법과 둘째로 하나님께 의지하여 신앙으로 국가 공동체를 견고히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근시안적으로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재빠르게 움직이느냐 아니면 자신들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의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말씀에 헌신하는 근본적인 방법을 취하느냐였다. 정답은 두번째 길이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부패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닫고 그들 스스로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오는 것이 참된 평안의 지름길이요 살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나 질풍노도와 같은 앗시리아의 침공에 북이스라엘이 무너진 모습을 보아왔던 남유다의 아하스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신들을 새롭게 하기보다는 세속적 방식인 국제정치의 역학에 계속 기대려 한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가증한 다신교 종교를 따르며 심지어 자기 아들을 희생제물로 바치면서까지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난다. 이렇듯 남유다의 아하스는 앗시리아의 봉신으로 스스로 자처함으로 자신의 안전망을 구축하려 한다. 어느 정도 잘 굴러가는 것 같았다.당시 근동의 절대 강자처럼 보이던 앗시리아의 봉신이 됨으로 멸망의 위험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봉책에 불과했다. 북이스라엘이 왜 멸망했는가? 하나님을 멀리떠나 악행을 일삼았기 때문이 아닌가? 앗시리아는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일 뿐이다. 그러나 아하스는 그것을 못보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에 실패한다. 그리고 국제 정세속에서 안전의 끈을 찾는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을 때(주전715-686년)(왕하18:1-20:21) 상황은 극적으로 바뀐다. 그는 앗시리아와의 봉신관계로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다. 이제 역사의 진자가 크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신실함을 맹세하면서 그 당시 국제정치에서 흔한 권력싸움을 거절한다. 그것은 당시 상황으로 볼 때 근동의 초강대국인 앗시리아에 대한 반역으로 나타나고 마치 자살행위와 같았다. 결국 주전701년에 앗시리아의 산헤립이 쳐들어온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가 대군을 이끌고 히스가야의 남유다를 멸망시키기 위해 침공한 것이다. 과연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같은 운명이 되는가? 그들은 앗시리아의 먹잇감이 되는가? 이에 대해서 히스기야는 첫번째로 기대 이하의 반응을 한다. 그는 돈으로 군사위협을 극복하려 하고 산헤립이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하자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의 은, 그리고 성전문의 금과 궁궐에 입힌 금까지 벗겨준다. 이때 앗시리아의 산헤립은 철군하지만 그때 퇴각했던 앗시리아가 유다의 완전 항복을 받으려고 재침공한다. 이때 유다의 상황은 호랑이 앞의 토끼와 같이 멸망이 불가피해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히스기야는 성전에 올라가서 성경에 나타난 기도중 가장 위대한 기도를 드린다(왕하19:15-19). 그는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구했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구원해달라고 기도했다. 이 믿음의 기도로 인해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산헤립의 앗시리아 군대는 초토화되고 18만 5천명이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20장에서 히스기야 생애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이야기가 전달된다. 하나는 히스기야가 중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를 드린다. 이 기도로 인해 히스기야는 15년을 더 살게 되는 기적 같은 은혜를 받는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치유에 대해 들은 바벨론왕이 그에게 접근한다. 바벨론은 근동의 신흥세력으로서 앗시리아를 견제하면서 성장하고 있었다. 이때 바벨론왕 브로닥발라딘이 히스기야가 자기와 함께 앗시리아를 반대하도록 유인하려고 편지와 예물을 보낸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앗시리아를 거역하는 데에 기꺼이 참여한다는 것을 표명하기 위해 자신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믿음이 성장했던 히스기야가 말년에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 힘을 찾지 않고 바벨론과 애굽과 교류함으로 유다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실수를 하고 마는 것이다.
이 실수를 업고 그의 아들인 므낫세가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반대편에 극에 서게 된다. 진자운동이 역으로 간 것이다. 그는 죄의 총체적 종합판으로 배도의 광란기 55년을 보낸 인물이다. 그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여러 우상들을 만들었으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섬겼다. 또한 많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사법제도를 부패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이런 죄악으로 얼룩진 므낫세의 통치는 다른 어느 왕들보다 길게 지속되었고 그리하여 더러운 오점은 결코 지울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제 심판은 불가피하게 되고 대세가 멸망 쪽으로 완전히 기울고 있다.
그런데 더욱 나쁜 것은 그의 아들 아몬도 역시 부친 므낫세를 빼닮은 재생품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이 둘은 히스기야의 개혁의 진자를 역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렇다면 이제 유다는 그대로 그렇게 끝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요시야라는 가장 경건한 왕을 준비하신다. 요시야는 유다 최고의 선왕이다(왕하23:25). 그는 8세에 왕위에 올랐는데 왕위에 오른지 18년이 되던 해에(BC622년) 성전을 수리하는 동안에 율법책이 발견된다. 그가 성전을 수리한 것은 그에게 성전에 대한 열심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요시야는 유다의 운명에 있어서 마지막 기회가 되는 개혁을 추진한다. 먼저 예루살렘과 주변에 있는 우상숭배 장소들과 대상들을 대대적으로 정화하고 우상숭배 제사장들을 제거한다. 그리고는 사사시대 이래 어느 왕의 통치시대에도 본적이 없을 정도로 유월절을 대대적으로 지키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확립한다.
그런데 이 개혁자 요시야가 급작스럽게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상황은 이렇다.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가 주전612년에 신흥세력인 바벨론과 메데의 연합군의 손에 넘어간다. 그러나 앗시리아의 잔류군대가 유다 동북쪽 유브라데강 근처에 자리잡게 되었고 애굽의 바로느고2세는 바벨론이 메소포타미아를 홀로 통치하며 아시리아를 이어 열강세력으로 자리잡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 앗시리아를 지원했다. 바로느고2세가 주전609년 앗시리아를 지원하여 북으로 진격할 때 바벨론편에 서려 했던 요시야가 므깃도에서 바로느고를 만나 저지하다가 전사하고 만다. 이러한 요시야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유다의 마지막이자 좋은 개혁의 기회는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이제 유다는 끝없는 추락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요시야의 죽음으로 개혁의 동력을 상실하고 멸망으로 치닫는 유다의 운명을 이제 막을 수는 없게 된다. 이제 열왕기서의 저자는 완전한 탄식속에서 유다의 마지막 4왕에 대한 기사를 간략하게 기록한다. 므깃도전투에서 애굽의 바로느고가 유다의 요시야를 죽이고 승리했다는 것은 일시적이나마 애굽이 유다를 통제하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요시야의 전사 이후 유다는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즉위시키지만 애굽은 그를 폐위시키고 끌고 가면서 여호야김을 꼭두각시 왕으로 세운다. 그들은 애굽에 세금을 많이 내게 된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바벨론이 되어서 바벨론이 팔레스틴을 장악하게 된다. 이 와중에서 여호야김은 바벨론을 섬기다가 배반하면서 일찍 세상을 떠나고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는데 그는 부친 여호야김의 반역에 대한 비극적 결과로 항복한 후에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간다. 이 여호야긴의 뒤를 이은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허수아비였다. 그러나 그는 그의 형제인 여호야긴의 외교정책을 이어받아 결국은 느부갓네살을 반역했다가 아들의 죽음을 목도하고 눈이 뽑힌 후에 바벨론으로 잡혀간다. 이때 예루살렘은 완전히 함락되고 성전은 파괴된다. 결국 유대 역시 역사에서 막을 내리고 만 것이다.(주전586년)
이렇듯 북이스라엘 멸망 당한후 잔존왕국인 남유다에는 아하스-히스기야-므낫세-아몬-요시야-여호아하스-여호야김-여호야긴-시드기아 이렇게 9명의 왕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역사의 진자는 히스기야와 요시야때에 진정한 개혁으로 기울여졌고 므낫세때는 하나님께 대한 극단적인 배반으로 반대 진자운동의 극치에 이르렀다. 그리고 므낫세때의 패역의 깊이가 얼마나 컸던지 결국은 그 웅덩이에서 유다는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것이 잔존왕국 유다의 진자운동의 실상이다. 이로 인해 유다는 결국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되어 멸망 당한다.
그렇다면 열왕기서는 이러한 희망 없음으로 닫히고 마는가? 아니다. 다윗왕조의 희망을 보면서 열왕기서는 막을 내린다. 여호야긴이 죄수와 포로의 몸으로 끌려갔으나 죄수의 신분으로 죽지 않고 바벨론왕의 존경받는 손님으로 대접받은 것으로 끝이 난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윗왕조의 회복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막을 내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다. 다윗가문인 남유다가 인간적으로 벌받을 짓을 했고 또한 실제로 벌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은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왕조를 회복하실 것이다. 이것은 인간적 왕조가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이 땅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예시한다. 그렇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언약에 충실하신다. 인간의 어떠한 실수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을 성취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이요. 사역의 특징이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이 한가지 있다. 축적된 죄의 무게는 무시할 수 없고 반드시 그 결과를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수많은 세월 동안 하나님의 신실하신 가르침과 경고를 무시하고 죄악에 이끌리어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났다. 다행스럽게도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으로 진자운동이 하나님께로 기운적이 있었지만, 므낫세때에 너무 극단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진자운동으로 말미암아 헤어날 수 없는 경지에 빠지게 된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선을 베푸시고 회복을 준비하시지만 우리의 죄악이 축적된다면 그 쌓인 죄악의 무게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 고통을 자초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여 기회를 얻을 때마다 진정한 회개로 돌아와서 주의 말씀 안에서 회복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
따라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축적된 죄의 무게는 하나님의 경고임을 알고 신속히 떠나는 것이 하나님께 합당한 길이요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 아니겠는가?
이연재 목사(라이드예수마음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