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열왕기시대의 주변국들 (2)
애굽은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언급된 이후 열왕기서에 처음으로 언급된다. 애굽은 이스라엘과 유다 왕조 시대에 비교적 세력이 약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벨론이나 앗수르처럼 이스라엘과 유다를 위협할 힘이 없었다. 이들의 전성기는 18대 및 19대 왕조(주전 약 1550-1200년) 때였다. 애굽이 주전 1200년 이후 세력이 약화되었다는 극적인 예가 주전 11세기 초의 한 유명한 문학 작품에 나타난다. 이것은 웬아몬이라는 애굽의 한 관리가 페니키아를 여행하며 기록한 글로서, 그는 많은 모욕과 무시를 받았는데 이는 당시 애굽의 위상을 여실히 반증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왕조의 세력이 미약할 때에 애굽과 관계를 맺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솔로몬이 애굽 왕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의 왕들과 결혼 동맹을 맺는 모습을 보게 된다(왕상 3:1; 11:1-3). 이 애굽 왕은 가나안 족속으로부터 게셀을 탈취하여 그것을 솔로몬에게 예물로 주었다(왕상 9:16). 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여러 학자들은 그가 주전 978-959년 경에 팔레스타인을 여러 번 침입한 애굽의 바로 사이아문이라고 추측한다. 그 외에도 열왕기상하에는 몇 번에 걸친 애굽과의 접촉이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는 애굽의 바로 시삭이 르호보암5년(주전 약 925년)에 유다를 침공하여 성전의 보물을 탈취해 갔다(왕상 14:25-26). 그 뒤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은 앗수르에 대항하여 애굽의 바로 소에게 도움을 청하려 하였다(왕하 17:4). 그리고 애굽의 바로 느고 2세는 유다 왕조 말년에 많은 타격을 주었다(왕하23: 29-35).
앗수르
애굽과 마찬가지로 앗수르도 수세기 동안 중요한 세력이었다. 주전 2000-1000년의 중반쯤 정치적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애굽과 달리 이스라엘과 유다 왕조기에 세력이 절정에 달했다. 앗수르는 주전 9세기 중반 이스라엘 왕조가 시작되면서부터 위협을 가하였다. 이 시기 이후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많은 왕들의 이름이 앗수르의 문헌에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살만에셀 3세(주전 858-824년)는 이 기간 중 서부지역의 확장에 관심을 가진 최초의 왕으로서 직접 또는 사령관을 시켜 매년 이 지역을 침공하는 것이 하나의 정례화 된 특징이었다. 그는 주전 853년의 시리아 북쪽 (우가릿 동쪽 오론테스 강 유역)의 카르카에서 일어난 중요한 전투(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음)에서 이스라엘의 아합을 포함한 서방 12개 동맹국에게 패하였다.
수년 뒤(주전 841 년) 살만에셀는 다마스커스의 아사엘과 이스라엘의 예후를 포함한 서아시아 여러 나라의 왕들을 모은다.
앗수르는 카르카 전투에서 패함에 따라 특히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쇠퇴는 아닷니라리 3세(주전 810-783) 때 잠깐 회복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한 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주전 8세기 중엽에는 가장 세력이 약화되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바로 이 시기에 정확이 말해서 주전 8세기의 처음 반세기 동안 솔로몬 이후 처음으로 (정치, 경제적 안정)을 누렸다.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주전 793-753년)는 오랜 번영을 누렸으며(왕하 14:23-29)이는 유다의 웃시야(주전 792-740년)도 마찬가지였다(왕하 14:22-23; 15:1-7; 대하 26:1-23) 이러한 상황은 북쪽과 동쪽에 자리 잡은 세력들간에 생긴 상대적인 힘의 공백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이시기에 일어난 디글랏 벨레셀 3세 (주전 744-727년)는 앗수르를 크게 부흥시켰다. 윌리암 할로가 말했듯이 “디글랏 빌레셀과 그의 두 후계자는 당시 근동의 세력 판도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함께 많은 나라를 멸망시켰으며 유다를 포함한 여러 나라를 속국으로 삼았다. 디글랏 빌레셀은 주전 743-738년 처음으로 서부 지역에 대한 대규모의 공격을 감행하였다. 앗수르는 이 전쟁과 관련하여 처음으로 열왕기서에 언급된다. 우리는 이스라엘 왕 므나헴(주전 752-742년)이 디글랏 빌레셀에 공물을 바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왕하 15:19-20). 그의 두 번째 서방 진출은 주전 734-732년에 이루어 졌으며, 첫 번째보다 더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지중해 동쪽 전 지역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에 관해서는 열왕기하, 이사야 및 역대상하에 잘 나타나 있다. 디글랏 빌레셀이 이 원정에서 주요 목표로 삼은 대상은 다마스커스의 르신이었다. 이 때 르신은 이스라엘 왕 베가(주전 752-732년)와 동맹하여 유다 왕 아하스(주전 735-715년, 왕하 16:5-6; 사 7:1-2)와 대치하고 있었다. 아하스가 도움을 호소하자 디글랏 빌레셀은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영토를 빼앗고 많은 사람들을 앗수르로 포로로 잡아갔다(왕하 15:29; 16:7-9; 대상 5:26; 대하 28:16). 이 전쟁으로 아하스는 목숨을 구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이미 이사야가 예언한 승리였다(사 7-8장).베가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주전732-723)에 의해 암살을 당했다(왕하15:30). 호세아는 앗수르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았다.
살만에셀 5세(주전736-722)가 디글랏 빌레셀에 이어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에 관하여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으나 열왕기하 17:1-7절 및 18:9-11절에 따르면 그는 사마리아를 함락시켰다. 사르곤(주전 721-705년)은 전임자들과 같이 공격적인 확장 정책을 계속해서 펴나갔다. 그는 성경의 역사서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주전 720-712년 사이에 서쪽의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 대하여 세 번의 공격을 감행하였다. 그의 나머지 통치기간은 남진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산혜립이 사르곤을 이어 왕이 되어 주전 701년에 팔레스타인을 침공하였다. 이때의 유대왕이 히스기야이다.이 사건은 성경에서 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이 싸움에 대해 예루살렘에 대한 정복을 포함하여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
성경에 따르면 산헤립은 자신의 아들 중 두명에게 죽임을 당한다 (왕하19:37). 산헤립의 아들 엣살핫돈(주전680-699년)이 그를 이어 왕이 되는데 그는 매우 능력 있는 정치가였다. 그는 국내의 정치적 기반을견고히 한 후 주전 671년 애굽의 티르하카군을 공격하여 멤피스를 장학 하였다. 그는 귀환하는 도중 죽었다.
그러나 앗수르에게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간 것만은 아니다. 애굽의 사메티커스 1세는 아술바니팔이 살려주었으나 점차 애굽 영토를 회복하여 주전 655년에는 공물을 보류하고 스스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앗수르는 또한 내부적으로도 많은 위협에 시달렸으며, 북쪽과 동쪽의 국경은 메데와 다른 인도 아리안 족의 침입이 날로 더해갔다. 결국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는 주전 612년에 바벨론 왕 나보폴라사르(주전 625-605년)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앗수르는 주전 609년까지 서쪽 경계를 지키려 애썼으나 수포로 돌아가고, 이후 다시는 세계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앗수르의 몰락을 배경으로 요시야는 유다를 다스렸다(주전 640-609년). 비교적 외세의 침략이 없었던 이 시기에 요시아는 종교적인 문제에 전념할 수 있었으며 철저한 개혁을 시행하였다(왕하 22-23장).
바벨론
정치적인 면에서 나보폴라사르가 이끄는 바벨론의 부상은 곧 유다 왕조의 멸망을 알리는 전주곡과 같았다. 주전 609년 요시야가 죽은 후 유다는 바벨론과 애굽의 분쟁에 휘말려 든다. 애굽의 바로 느고 2세(주전 610-594)는 사메티커스의 아들로서 앗수르의 남은 자들과 동맹을 맺고, 대군을 앞세워 유브라데의 칼케미쉬에 있는 바벨론을 공격하였다. 그는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통치한지 3개월 만에 그를 애굽으로 사로 잡아가고 요시야의 다른 아들 여호야김을 왕으로 앉혔다(왕하23:31-35). 그리고는 그들에게 무거운 공물을 부과하였다. 여호야김은 애굽이 느부갓네살 2세(주전 604-562년)에 의해 물러난 주전 605년까지 느고의 속국으로 지냈다. 이 전쟁은 고대 근동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그것은 시리아와 팔레스틴에 대한 애굽의 통치가 끝이 났기 때문이었다(왕하 24:7). 유다민족이 바벨론 포로로 처음 잡혀간 시기도 이 때쯤인 것으로 보인다(단1:1).
이 때로부터 유다는 느부갓네살의 바벨론 치하에서 마지막 시기를 보내게 된다. 주전 601년에 여호야김이 반역을 일으켰으나(왕하 24:1)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가게 된다(주전 598/597년). 여호야긴의 통치 기간은 3개월로 짧았으며, 주전 597년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이번에는 약탈이 더욱 심했으며, 그 땅의 많은 지식인들이 왕과 함께 사로 잡아갔다(왕하 24:10-16).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삼촌인 시드기야를 왕으로 앉혔으나, 10년 후 돌아와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많은 포로와 전리품과 함께 시드기야를 포로로 잡아갔다(왕하 25:1-17).바벨론이 유다를 멸망시킨 것이다. 포로 생활은 바벨론 제국이 멸망한 주전 539년까지 계속된다.
열왕기하에 마지막으로 언급된 다른 나라의 왕은 바벨론의 에월모르닥이다. 그는 그때까지(주전561/560년, 왕하 25:27-30) 살아있던 여호야긴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이연재 목사 (라이드예수마음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