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개혁파 신학자이자 목사 칼 바르트 (Karl Barth, 1886 ~ 1968)
스위스의 개혁파 신학자이자 목사. 1886년 바젤에서 베른 대학교 신약학, 초기 교회사 교수 프리츠 바르트와 안나 카타리나 사르토리우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베른 대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하여 베를린에서 아돌프 폰 하르낙, 빌헬름 헤르만에게 배우고 튀빙엔, 마르부르크 대학교를 거쳤다.

목사 안수를 받고 1911~1921년 아르가우 주 자펜빌 공업 마을에서 개혁파 목사로 활동했다.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도하며 종교 사회주의에 공감하는 한편,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93명의 독일 지식인들이 서명한 전쟁 지지 선언에 자신의 스승들이 포함된 것을 보고 근대 자유주의 신학과의 결별을 결심했다. 이후 바울의 로마서를 새롭게 읽으며 집필한 『로마서』가 신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를 계기로 박사 학위 없이 1921년 괴팅엔 대학교 개혁파 신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이후 뮌스터 (1925~1930), 본 (1930~1935) 대학교를 거쳤다.
1933년 히틀러 집권 직후부터 나치즘에 정면으로 맞섰으며 1934년 고백교회의 바르멘 선언을 사실상 단독 기초하여 나치즘을 신학적으로 반박했다. 1935년 히틀러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하여 본 대학교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독일에서 추방되었고 바젤 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로 임명되어 1962년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서 가르쳤다. 말년에는 바젤 교도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수감자들에게 설교했다. 1968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근대 자유주의 신학이 하느님을 인간의 종교 의식이나 문화 가치의 투영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진단 아래, 하느님의 타자성과 인간과의 차이를 강조하는 변증법적 신학을 내세웠으며 “하느님은 하느님이고 인간은 인간이다”라는 명제로 요약되는 이 전환은 그전까지 이어진 자유주의 신학의 지배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1932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하여 미완으로 남긴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Summa Theologiae 이후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가장 방대하고 종합적인 교의학 저작으로 평가받으며 하느님, 계시, 선택, 화해, 창조, 윤리 등 모든 교의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의 자기 계시로부터 전개했다. 20세기 개신교 신학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데 이견이 없으며 개신교 신학을 너머 그리스도교 신학 전체에 거대한 흔적을 남겼다.
주요 저술로 『로마서』 Der Römerbrief (복 있는 사람),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 Fides Quaerens Intellectum (한국문화사),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대한기독교서회), 『교의학 개요』 Dogmatik im Grundriß (복 있는 사람), 『개신교 신학 입문』 Einführung in die evangelische Theologie (복 있는 사람), 『19세기 프로테스탄트 신학』 Die protestantische Theologie im 19. Jahrhundert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한국에 『칼 바르트 기도』 (복 있는 사람), 『설교자의 기도』 (비아), 『불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예솔), 『칼 바르트의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 해설』 (새물결플러스) 등이 소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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