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그리스·터키 여행공부
올림피아(Olympia)
그리스의 도시 올림피아는 4년마다 한 번씩 개최되는 스포츠 제전 올림픽의 발상지이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시작으로 하여 이곳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 제단에서 성화가 채화되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올림픽의 공식적인 시작 행사로 진행되고 있다. 올림피아 시(市)는 인구 1,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로 규모가 작고 조용하여 산책하기에 좋은 도시이다.

1) 지리적인 특징
올림피아는 그리스 문명의 산실인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쪽 끝, 즉 엘리스 지방의 피사(Pisa)에 위치해 있으며, 이오니아 해에서 15㎞, 아테네에서 257㎞, 스파르타로부터 127㎞ 정도 떨어져 있다. 올림피아의 북방과 동북방은 올리브와 떡갈나무로 우거진 산림지대이며, 남쪽은 알페이오스 강이 흐르는 지대와 맞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클라디오스(Kladeos) 강의 급류를 바라보고 있다.
2) 올림피아의 역사
올림피아는 3,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그리스 최대 규모의 유적을 지니고 있다. 원래 올림피아는 기원전 10세기 신(神) 중의 신이라 불리우는 제우스 숭배의 중심지였다. 그리스에 남아있는 신전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7세기 경에 만들어진 헤라 신전이다. 제우스 신전은 후세에까지 명성이 높았는데, 성직자들과 올림피아 제전경기에 의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올림피아 제전경기는 신에게 헌납되었으며 다른 어느 지방의 경기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3) 올림피아의 고고학적 발굴

기원 후 6세기 중엽, 올림피아는 거듭된 지진이나 홍수, 산의 붕괴 등으로 인해서 파괴되고, 수미터의 토사 밑에 묻혀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올림피아 최초의 대규모 발굴은 1875~81년 E. 쿠르티우스가 지휘하는 독일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제우스 신전과 그 장식조각, 헤라신전, 평의회장, 대숙박소, 체육연습장, 원형기념당, 보고군, 주랑, 주로 약 192m의 스타디온, 제우스 신상을 제작한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작업장 흔적, 파이오니오스 작의 니케상, 프라크시텔레스 작의 헤르메스 상 등이 출토되었다.
1928∼43년과 최근에도 발굴이 계속된 결과 스타디움도 발굴되고, BC 457년의 금상아제(金象牙製) 제우스상과 그 상을 만든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작업장 및 사용한 도구 등도 출토되었다.
198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4) 올림피아의 관광 명소

① 제우스 신전
조용한 평원 ‘알티스’ 성역에는 장엄한 제우스 신전이 세워져 있다. 제우스 신전 뒤에는 성스러운 올리브나무가 있는데, 그 가지로 우승자를 위한 올리브관을 만들었다. 제우스 신전의 규모는 높이 68피트(21.79m), 너비 95피트(30.44m), 길이 230피트(73.70m)이다. 건축가는 엘리스 출신의 리본(Libon)이고 건축양식은 도리아식이다. 신전 내부에는 유명한 그리스 조각가 페디아스(Pheidias)가 만든 천지의 최고 통치자 제우스가 위엄 있는 모습으로 왕좌에 앉아 있다. 상아와 금으로 장식된 이 조각상은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것으로 칭송받았다.
② 헤라 신전
제우스 신전 북쪽에 위치한 헤라 신전은 올림피아에 있는 신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신전으로 제우스 신전보다 130년 앞선 기원전 600년 경에 세워졌으며, 올림픽 성화를 채화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③ 올림픽 경기장

각 도시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경기를 펼쳤던 올림픽 경기장은 4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경기장으로 들어가려면 우선 폭 3m에 높이가 2.5m쯤 되는 자그마한 아치를 통과해야 했는데, 이 아치는 로마가 그리스를 지배했던 기원전 2세기에 만든 것으로 당시에는 선수와 심판만 아치를 통해서 경기장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복원된 경기장은 관람객들이 경기를 내려다 볼 수 있도로 경사면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리스 시대에는 북쪽에만 관람석이 있었으나 로마 시대에는 남쪽에도 설치하여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④ 올림피아 박물관
올림피아 박물관은 아테네의 고고학박물관에 이어 그리스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박물관이다. 19세기 후반부터 독일의 역사 연구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올림피아의 유적들이 이곳에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유적들이 올림피아의 화려하고 방대한 문화를 잘 보여준다.
5) 올림피아와 올림픽
고대 올림픽은 그리스의 신 제우스에게 바치는 올림피아 제전이 펠로폰네소스 반도 올림피아 지역에서 열렸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서 올림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스는 원래 단일국가가 아니라 여러 도시 국가들의 연합체였기 때문에 폴리스 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나 올림픽이 열리는 전후 3개월 동안은 일체의 전쟁을 중지하였다. 올림픽 경기의 우승지에게는 올리브관이 수여되었으며 그리스 국민은 올림피아제를 통하여 몸과 정신을 단련하고 온 국민의 대화합을 이룰 수 있었다. 경기는 4년마다 한 번씩 총 293회 열렸으며, 올림피아 경기의 기원은 기원전 77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 후 349년, 즉 1170년 만에 폐지되었다.
6) 올림픽의 과거와 현재
올림픽에 참가하는 일부 선수들은 알몸으로 경기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여성들은 참가를 물론이고 참관조차 할 수 없었으며, 일부 여사제들에게만 참관의 기회가 주어졌다. 올림픽 경기는 처음에는 소규모의 지방적 행사로 일수는 1일, 경기종목도 도보 경기 정도였는데, 그후 높이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복싱, 레슬링, 경마, 4두마차 전차경주, 무장경주, 소년경기 등이 더해지고, 마지막에는 일수 5일, 경기종목 23 종목을 헤아리기에 이르렀다.

참가도시의 수도가 늘어나서 기원전 5세기의 최성기에는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 소아시아, 북아프리카, 흑해 연안의 그리스 식민지가 모두 선수를 파견하여, 올림픽 경기는 문자대로 그리스 민족의 자랑과 단결의 상징적 의의를 획득했다. 제전의 전후에는 <에케케이리아(선성한 휴전)>의 협정에 의거해서 교전중의 도시도 일시 싸움을 중지해서 적의 선수의 국내 통과를 허용했다고 한다.
올림픽 경기는 헬레니즘, 로마시대에도 계속되었는데, 로마 시대에는 스포츠 외에도 음악과 시짓기 대회도 함께 열렸다. 기원 후 62년 경에는 폭군 네로 황제가 참가하여 7개 종목에서 상을 휩쓸기도 하였다. 올림피아 유적 중에는 당시 네로 황제가 머물렀던 집터가 남아있다.
올림픽 경기는 점차로 종교와 민족의 순수성을 잃고 쇠미해졌으며, 313년 기독교가 국교로 승인된 후 394년에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올림픽 경기를 이교의 잔재로 여겨 폐지를 명하였다. 그후 그후 1583년 후인 1896년, 피레르 드 쿠베르텡 남작의 노력으로 ‘인류 평화의 제전’이라는 구호 아래 개최된 아테네 올림픽을 시작으로 올림픽이 다시 부활하였다.
김혜옥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