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집회서’ 중에서 / Gutta cavat lapidem / 일즉다 다즉일 / Nulla in Mundo Pax sincera / 살다보면 살아집니다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61) _ 9월 14일
“집회서” 중에서
개신교회의 목사이지만 저는 정경에 들어있지 않는 외경도 자주 읽는 편입니다.
토비트, 유딧, 에스델, 지혜서, 집회서, 바룩, 다니엘, 마카베오 상과 하 – 이 모두들 큰 깨우침을 주는 말씀들입니다.
오늘은 집회서를 읽던 중 몇 귀절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여기 잡기장에 남겨놓습니다.
8장에서:
말이 많은 사람과는 다투지 말아라.
그것은 꼭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버릇없는 사람과는 농담도 하지 말아라.
자칫하다간 돌아가신 조상들 까지도 욕먹히게 된다.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나무라지 말아라.
우린 모두가 다 잘못하는 사람이지 않느냐?
늙은 사람을 괄시하지 말아라.

우리 또한 늙어가고 있지 않느냐?
노인들이 하는 말을 헛투르 듣지 말아라.
너는 그들에게서 인생을 배울 수 있다.
현명한 사람들의 소홀히 듣지 말고, 그들의 명언을 새겨두어라.
그들은 네가 적절하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난폭한 사람과는 맞서거나 시비를 따지지 말아라.
그런 인간들은 네 말꼬리를 잡으려고 기다리는 자들이다.
무모한 사람과는 동행하지 말아라.
그는 곧 너에게 짐이 될 것이다.
성미가 과격한 사람과는 논쟁하지 말고, 후미진 곳으로 함께 가지 말아라.
그런 인간은 보는 사람만 없으면 너를 덮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과는 터놓고 말하지 말아라.
그는 비밀을 지키지도 않지만, 그걸로 너를 이용하려들 것이다.
이어서 10장 초두에는 이런 말씀도 나오네요.
지혜로운 통치자에겐 질서가 있다.
그 왕에 그 신하들이요, 그 군주에 그 백성이니라.
어리석은 임금은 백성을 파멸에 이르게 하고,
지혜로운 통치자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느니라.
Carpe diem !
Bonam fortunam !
라틴어 인문학 (41) _ 9월 15일
Gutta cavat lapidem.
(구타 카바트 라피뎀)

gutta, 방울, 물방울, 반점, 영어 drop, waterdrop
cavat, 원형은 cavatio, 굴, 구멍 cavat는 구멍을 만든다, 구멍을 뚫는다. 영어 drill
lapidem, lapillus, lapis, 돌, 보석, 작은돌, 조약돌, 영어 pebble, gravel
Gutta cavat lapidem.
(구타 카바트 라피뎀)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작은 물방울이 단단한 돌에 구멍을 만든다.
노력하면 불가능한 일도 이루어 낼 수 있다.
작은 시작도 거듭하면 큰 결과를 얻게 된다.
티끌모아 태산이다.
물방울이 모여 큰 바다를 만든다.
비록 작고 무력해 보이는 일이라 하더라도 반복하면 큰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 무슨 일이든 꾸준히 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사자성어에, 물수, 물방울적, 뚫을천, 돌석을 써서 ‘수적천석’ (水滴穿石)이라는 말이 같은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적수성연’ (積水成淵) – 한 방울의 물도 모이면 연못이 된다 – 거나 ‘적토성산’ (積土成山) – 한줌의 흙도 쌓이면 산이 된다 – 는 말도 모두 비슷한 뜻을 지닌 명언입니다.
‘무릇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큰 일을 이룬다’ 학생 때 선생님들로 부터 자주 들었던 말씀입니다.
‘머리 좋은 자가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씀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에픽테투스의 글귀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 어떤 일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지지는 않는다. 한 개의 과일 한 송이의 꽃도 긴 여름과 겨울을 지나야 얻어지는 것이다. 하물며 인생의 열매가 어찌 그리 급하게 이루어지겠느냐?’
제 경험으로도 쉽게 쓴 글이나, 고뇌없이 한 설교나 강의 강연은 결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몇 년째 성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를 그리는 미켈란젤로를 바라보던 친구 하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 뭘 그렇게 후미진 구석 까지 몇 달씩이나 목이 떨어질 정도로 고생하면서 정성을 다한다고 누가 그걸 알아주겠어?’
그때 미켈란젤로가 한 대답입니다.
‘내가 알잖아!’
Gutta cavat lapidem.
작은 물방울이 마침내 돌에 구멍을 냅니다. 돌을 뚫어냅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62) _ 9월 16일
“일즉다 다즉일” (一卽多 多卽一)
이말은 본래 대승불교의 주요 경전인 ‘화엄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말인데 한자는 물론이고 한글과 일본어, 영어로도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반세기도 훨씬 이전, 대학시절, 인도철학을 한 학기 수강했을 때, 교수님이 그 방대한 화엄경 중에서 몇 권을 가지고 오셔서 보여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책구경을 시켜주셨던 거지요. 그 후 한글이나 한문으로 번역된 화엄경 조차도 단 한번 직접 접하거나 읽어보질 못했습니다. 하여튼 80여권이나 되는 이 방대한 경전을 그때 선생님께서는 단 한귀절로 요약해 주셨는데 지금도 그 선생님의 얼굴 모습과 가르침이 제 가슴속 한편에 남아있습니다.

“일즉다 다즉일” (一卽多 多卽一)
하나는 모두이고 모두는 하나다.
하나는 여럿이고 여럿은 하나다.
하나 속에 여럿이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다.
부분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부분이 있다.
이것만 기억해 두어도 좋겠다.
이것이 화엄경의 요체이며, 불교철학의 핵심사상이다.
돌이켜보니 이런 내용의 강의가 남아있는듯 합니다.
이와 흡사한 귀절이 있습니다.
“일중일체 다중일” (一中一切多中一)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화엄경을 해설, 요약하시면서 ‘법성게’를 통하여 달리 표현하신 말씀입니다.
“일중일체 다중일” (一中一切多中一)
의미는 같습니다. 하나 속에 전체가 들어있고 전체 속에는 하나하나가 있다는 뜻입니다.
“일즉다 다즉일” (一卽多 多卽一)
“일중일체 다중일” (一中一切多中一)
이 두 마디는 불교의 근본사상중 하나인 ‘연기법’ (緣起法)을 설명하는 문장입니다.
‘연기’ (緣起)란 모든 존재하는 것은, 혼자, 따로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피차에, 서로 서로 다른 것이나 상대방에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사상은 세상만사는 상호의존관계라고 봅니다.
개별은 전체를 구성하고,
전체는 개별의 모음입니다.
세상은 이것 때문에 저것이 있고, 저것으로 인하여 이것이 있기 때문에 서로 연기, 연속적 원인 제공자가 된다고 보는 겁니다. 때문에 우주는 떼어서 볼것이 아니라 연결시켜 볼 때에 그 본질이 더 명확하게 보여진다는 설명입니다.
하늘과 땅, 땅과 하늘, 인간과 자연, 자연과 인간, 나와 너, 너와 나, 식물과 동물, 동물과 식물, 있음과 없음, 없음과 있음 – 우주는 서로 서로 연계되어 있고 상호의존하여 존재하며, 그 ‘있음’과 ‘없음’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여기가 있으니 저기가 있고,
저기가 있으니 여기가 있습니다.
당신이 있어서 내가 있고,
내가 있음으로 당신이 계십니다.
비움으로 채움이 오고,
채운 후에는 비워야 합니다.
열매는 씨앗이 되고,
씨앗은 다시 열매를 맺습니다.
애비는 아이를 낳고,
아이는 또 애비가 됩니다.
자연도 돌고 돌며,
인간사도 다 돌고 돕니다.
해 아래 새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변하길 바라면 내가 변해야하고, 그가 정직해지길 원하면 먼저 내가 정직해져야 합니다.
저희가 사는 동네 입구에는 Living Together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 동네는 다문화, 다인종사회이니, 서로 서로 어울려 살자는 뜻이지요. 한국을 포함한 동양에서는 상생 (相生), 공생 (共生) 이라고 하지요.
너와 나, 여자와 남자, 흑인과 백인, 전라도와 경상도, 보수와 진보, 남과 북, 사람과 하느님, 자연과 사회, 자보주의와 사회주의, 기독교와 이슬람, 미국과 중국 – 모두가 다 그게 그것이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니, 같이 살고, 함께 행복하고 싶습니다.
“일즉다 다즉일” (一卽多 多卽一)
“일중일체 다중일” (一中一切多中一)
Carpe diem !
Bonam fortunam !
라틴어 인문학 (42) _9월 17일
Nulla in Mundo Pax sincera.
(눌라 인 문도 팍스 신케라)

nulla, 원형 nullus, 없다, 아무도 ~ 아니다, nothing
Mundo, 세상, 우주, world
Pax, 평화, peace
sincera, 진실된, 참된, 원형은 sincerias 성실, 진실, 영어 sincere, true
Nulla in Mundo Pax sincera.
(눌라 인 문도 팍스 신케라)
세상엔 참된 평화 없어라.
이 세상엔 참된 평화가 없다.
이 귀절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음악가 Antonio Lucio Vivaldi의 칸타타 ‘Gloria’에 나오는 성가 (모테토, Motet) 중 유명한 문장입니다.
There is no true peace in the world.
비발디는 우리들에게 흔히 ‘사계’라는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굳이 이무지치의 연주가 아니더라도, 언제 들어도 계절의 흐름을 실감케 해주는 아름다운 선율이지요. 그런데 그의 칸타타 역시 꼭 조수미가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해도 늘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Nulla in Mundo Pax sincera.
아, 이 세상 어디에도 참되고 영원한 평화는 없구나 !
우리는 누구나 평화를 원하고, 또 평화를 빕니다.
Pax intrantibus.
(팍스 인트란티부스)
여기 들어오는 이들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
이 역시 유명한 기도문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는 참된 평화가 없습니다.
Pax Augusta, Pax Romana, Pax Americana 같은 단어를 많이 듣기도 하고 쓰기도 하지만, 황제나, 로마제국이나, 미국의 힘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지 못함을 우린 잘 압니다. 기독교에서는 Pax Christiana, Pax Christi를 말합니다.
Gratia vobis et Pax a Deo Patre nostro et Domino Iesu Christo.
우리 하느님 아버지와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으시길 빕니다. – 이는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미사문구 중 하나입니다. 사제의 이 축복에 대햐서 회중은 이렇게 응답합니다. Et cum spiritu tuo. – 또한 당신 (사제)에게도 !
평화, 히브리어 샬롬 (Shalom), 그리스어 에이레네 (Eirene), 라틴어 팍스 (Pax), 영어 피스 (Peace) – 무엇이라고 불러도 이 세상엔 참된 평화가 없다고 비발디는 슬프게 노래합니다.
Nulla in Mundo Pax sincera
Sine felle: pura et vera
Dulcis Jesu est in te
Inter poenas et tormenta,
vivit anima contenta,
Casti amoris, sola spe.
이 세상엔 참 평화 없어라
고난이 없인 참 평화 없어라
밝고 정의롭도다
당신 속에 사랑의 예수가 있도다
고뇌와 쓰라림 속에서도
평온한 마음,
오직 소망과 순결한 사랑으로 !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63) _ 9월 18일
“살다보면 살아집니다”
어떤 일에 대한 ‘태도’ (attitude)란 개인의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을 반영하게 됩니다. 개인생활, 가정생활, 학교생활, 직장생활, 종교생활, 취미활동, 각종 사회생활과 인간관계 등에서 어떤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결국 그의 가치관을 드러냅니다.
저처럼 70대 중반을 넘어서 80대를 앞에 둔 사람은 거개가 나름대로의 인생길을 걸어오면서 자기 삶의 어떤 방식이나 태도가 굳어져 있다고 봅니다. 지금와서 개과천선하여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겠습니다.
물론 가장 고전적이며 교과서적 ‘인간 삶의 태도’에 대하여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이다.
가치관을 바로 세워야 한다.
정직하고 성실해야 한다.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매사에 신중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긍정적 태도를 잃지 않도록 해라.
감사하는 사람이 되거라.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이 되어라.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태도를 지니도록 노력하거라.
악한 일은 아무리 작은 일도 해서는 않되고, 선한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하더라도 반듯이 해보도록 애써야한다.
욱하거나 쉽게, 자주 화내는 버릇은 꼭 고치도록해라.
사랑 까지는 못해도 미워하지만 않해도 반쯤은 성공한 것이다.
양보해라.
남에게 폐 끼치지 않도록 신경써라.
소통, 나눔, 베품이 너의 인생을 풍성하게 해 줄 것이다.
그런데, 이즈음 저 자신을 되돌아보면 이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마음먹은 대로 된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참 많이 속상하고 서글퍼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뮤직칼 배우이며 가수인 차지연의 노래가 오히려 위로가 되곤 합니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뮤직칼 서편제’에 나오는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귀절이 늘 혼자서 무슨 심각한 철학자나 된양 썩은 콩 씹듯이 살아온 저를 다시 반성하게 해 줍니다.

혼자서 슬퍼하지 않아!
돌아가신 엄마가 말하길,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그 말 무슨 뜻인지 몰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주문 같아!
너도 해봐 눈을 감고 중얼거려봐!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봐!
엄마가 쓰다듬던 손길이야!
멀리 보고 소리질러 봐!
아픈 내 마음 멀리 날아가네!
그저 살다보면 살아지네!
그저 살다보면 살아지네!
노래를 다 듣고나니,
아픈 내 마음 조금이라도 날아가는 듯합니다.
인생이 별겁니까?
지난날 모두들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앞으로도 또 그냥 그렇게 살아갈 것인데…
맡기고 삽시다.
하늘에,
운명에,
하느님께…
‘살다보면 살아지는게 인생이니까’
그래서 더더군다나
Carpe diem !
Bonam fortunam ! 입니다 !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