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투표 한번 해 봅시다 / 갈등과 고뇌–내일을 향하여 / 제일 어려운 일–인간이해 / 타샤 튜더–자연에서 자연으로 / 나이가 더해 가면서 깨닫게 되는 것 몇 가지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101) _ 2021년 2월 8일
“투표 한번 해 봅시다”
카톡방 친구들에게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경제가 발전되어 전보다 물질적으로 더 잘살게 되면 우리는 전보다 더 행복해진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Yes,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분은 No로 우리 투표 한번 해 보면 어떨까요?
몇일전에 소개드렸던 책, “초예측” (Super-forecast)에서 다니엘 코엔 (Daniel Cohen)과의 인터뷰를 읽고 정리해 본 것입니다.
코엔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저자)에 의하면, 과학기술의 발전은 세계의 경제를 발전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대중적 노동 생산성을 줄이고 소수의 생산성만 높일 뿐이어서, 세계경제를 퇴보시키고, 경제적 양극화만 더 높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는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전은 개인과 개인 사이는 물론이고,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기술의 양극화와 그로인한 경제적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코엔은 그의 책 “출구없는 사회”에서 세계의 역사란 “인간들의 끊임없는 욕망의 역사”라고 말하면서, 인간들의 행복해 지려고 하는 욕구는 아무리 뛰고 뛰고 또 뛰어도 제자리걸음을 걸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단언합니다. “경제성장은 인간의 행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경제가 나아지면 행복해질 거야’하는 것은 꿈일 뿐이고, 모든 꿈이란 언젠가는 생시로 돌아와 깰 때가 오는 법인데, 요즘은 다행이도, 그 꿈에서 깨어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코엔은 말합니다.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냥 남들이 소유한 것을 자기도 가지게 되면 행복해 질것 이라고 믿고 있다. 앞에 선 사람이 뛰니까, 그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자기도 그의 뒤를 따라 뛰어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더해지는 코엔의 주장입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인간의 경제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은, 주로 노동 – 열심히 일하는 것과, 토지 – 부동산 같은 기본가치, 그리고 자본 – 즉 위의 노동과 토지에 투자해서 만들어내는 돈, 이렇게 3가지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와 지식이 인간 삶의 가치를 창출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디지탈경제’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요즈음, 이 디지탈경제는 단순히 정보와 지식만이 아니라, 그것들을 다루는 인간 자체 까지도 디지탈화 하려고합니다. 인간의 기억, 경험, 감정, 그리고 심지어는 인간의 정체성 까지도 모두 다 디지탈 기호로 바꾸고, 인공지능을 통하여 그것들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확신할수가 없는 세상입니다. ‘디지탈 경제’가 우리 인간 세상을 ‘유토피아’의 세계로 이끌어 갈지, 아니면 ‘디스토피아’의 지옥으로 전락 시킬지 모르겠습니다. 많이 걱정이 되고 불안한 세상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Yes, or No ?
(추천도서: 출구없는 사회 – Le Monde est clos et le de Sir infini, 박나리 옮김, 글항아리, 2019)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102) _ 2월 9일
“갈등과 고뇌 – 내일을 향하여”
캐슬린 스티븐슨 (Kathleen Stephens, 한국이름은 심은경, 전 주한미국대사, 한미경제 연구소장)씨가 지난 달, 중앙일보에 기고했던 “이건 우리가 바라는 미국의 모습이 아니다”라는 글을 읽고 써놓은 잡기장 중 일부 입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1월 6일, 일련의 폭력을 동반한 시위대가 지난해 11월에 치루어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부정이었다면서 그 결과를 뒤집자며 워싱톤 DC에 있는 연방의사당에 난입해 들어갔습니다. 많은 언론들과 저명인사들은 “이런 행위는 전혀 미국다운 행동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중에 프린스턴대학의 오마르 와소우 (Omar Wasow) 교수는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통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다. 사실 이번 의사당 습격 사건은 참으로 미국다운 행동이었다” – 도대체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의구심이 생겨서 이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블랙 아메리칸인 와소우 교수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았습니다. 그의 설명은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미국이란 사회는 참으로 오랫동안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이건 어쩌다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번 사태 역시 미국의 여러 역사적 갈등 중 하나의 모습 입니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길고 깊게 이어져온 사회적 갈등은 인종 사이의 갈등 입니다. 특히 백인 민족주의와 다인종, 다문화를 표방하는 이민자들 사이에선 늘 쉬임 없는 갈등과 대립이 있었 왔습니다. 인종 사이에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갈등과 투쟁이 미국을 대표하는 갈등 입니다. 미국은 늘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사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 각도에서 볼 때 이번 사태 역시 미국의 본 모습을 보여준 것이요, 미국의 민얼굴이며, 미국이 이제까지 싸워왔고 또 앞으로도 싸워야 할 과제를 드러낸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은 늘 이런 인종적 갈등을 부채질하며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조종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속에 있는 본성 – 탐욕, 이기심, 정복욕, 차별의식과 싸워야하며 동시에 우리 속에 있는 또 다른 본성 – 관용, 이해, 협력, 그리고 선한의지에 호소해야하는 갈등 속에 던져져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악한 본성과 그 악한 본성을 극복해 보려는 선한 의지 사이에서 갈등하며 싸우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길 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싸움에서 인간의 선한 의지란 참으로 무력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낙심하곤 합니다만,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우리 속에 있는 선한 의지가 마침내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갈등하는 사회,
고민하는 인생,
대답하기는 많이 어렵지만,
인문학은 늘, 계속해서, 이 갈등과 고민을 부추깁니다.
그것이 아무런 갈등도 없고 고민도 하지 않는 사회와 인간 보다는 바람직한 내일을 향한 아픈 오늘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103) _ 2월 10일
“제일 어려운 일 – 인간이해”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땀흘리는,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Gym에 가서 돈내고 운동하며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도 있고, 그 Gym에서 일하여 돈벌어 먹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쓸고, 딱고, 청소하며 땀 흘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똑같이 땀을 흘리지만, 한쪽은 운동하느라 땀을 흘리고, 다른 한쪽은 일하느라 땀을 흘립니다.
세상엔 이와 흡사한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큰 돈을 내가면서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엄청난 돈을 받으면서 공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돈 내가면서 교회나 성당이나 사찰에 다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돈 받으면서 아예 그 곳에 몸담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세상만사 비슷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겉으로 나타난 것만 보고 모두가 똑같다고 해서는 않됩니다.
인간과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그 안에 담겨있는 실상을 살펴보아야만, 그 참 모습과 의미가 드러납니다.
똑같이 흘리는 땀이지만, 운동으로 흘리는 땀과 노동으로 흘리는 땀을 어찌 같다고 하겠습니까?
웃는다고 해서 똑같은 웃음도 아니고, 운다고 해서 똑같은 울음도 아닙니다.
같은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결코 똑같은 노래는 아닙니다.
그러니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다 좋게만 볼 수도 없고, 게으르게 보인다고 해서 싸잡아 비난만 할수도 없습니다.
똑같이 기도하는데도, 하나는 진실되고, 하나는 위선일 수도 있습니다.
똑같이 좋게 들리는 설교나 강론이나 법문이라 해도 하는 이에 따라 그들의 목적이 똑같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똑같이 “사랑해요” 라고 말하지만, 하나는 더러운 육욕이고,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희생일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똑같거나 비슷하다고 해서 그 동기와 목적, 그 실상 까지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똑같은 말을 한다고 해서 똑같은 뜻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행동을 하는듯 하지만 그 목적과 의도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말과 행위는 거의 숨겨져 있거나 가리워져 있는 동기와 목적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합니다.
오래 사귀어 보아야 조금 알 수 있습니다.
오래 사랑해 보아야 조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존중이 없으면 그 누구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잠간, 짧게, 한 두 마디,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만 보고서는 누구든 온전히 이해 할수는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이기에 개별적으로만 이해될 뿐입니다. 인간을 전체적으로 묶어서 이해 하려다간 실수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돌아가셨지만 저와 가까이 계시던 할아버지 한분은 할머니와 결혼한 지 60년을 넘게 살아오셨는데도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니! 할멈에게 그런 맘과 뜻이 있었던걸 이제껏 몰랐네! 미안해요!”
그래서 인간이해가 제일 어렵습니다. 사랑해도 어려운 것이 인간을 아는 것인데,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한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홍길복의 세번째 잡기장 (104) _ 2월 11일
“타샤 튜더-자연에서 자연으로”
몇일전 한글사랑 도서관의 김동숙 관장님이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DVD 영화 중에서 “타샤 튜더” (Tasha Tudor)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이 영화를 본 후 저 역시도 우리 인문학친구들에게 이를 추천하고 싶어 이 잡기장을 올립니다.

타샤 튜더 (1915-2008) 는 미국 출신의 세계적 동화작가이며 삽화가입니다. 비밀의 화원, 소공여, 호박달빛, 코기빌 마을축제, 타샤의 특별한 날 등 100여권이 넘는 인기 동화를 삽화와 함께 쓰고 그려낸 작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누가 직업을 물으면 늘 ‘가정주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타샤를 단순히 동화작가, 삽화가, 가정주부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자연주의자 중 한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타샤는 소위 철학사에서 말하는 자연철학자는 아니였습니다. 타샤 튜더 – 그녀는 자연을 가장 가까이하고,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살면서, 자연이 무엇인지를 가장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고, 지켜오며, 이를 즐기다가, 40여년이나 함께했던 버몬트에 있는 ‘타샤 튜더의 정원’에서 92세로 다시 그 자연의 품에 안긴 이상적 자연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론적 자연철학자가 아니라 실천적 자연주의자로 한 평생을 살다간 진정한 ‘자연의 사람’이었 습니다. 타샤 튜더 – 그녀는 자신에 앞서 비슷한 길을 걸었던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이나, 소로 (Henry David Thoreau)나 동시대의 니어링 (Scott Nearing과 그의 아내 헬렌 (Helen Knothe)과 흡사하게,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지키며,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다간 ‘자연의 사람’ 이었습니다.
온통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조각품 같이 정형화된 구조 – 꼭 성냥갑 같은 틀 속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저 자신과 제 주변을 돌아보며, 좀 더 자연스럽게, 좀 더 꾸밈없이, 좀 더 있는 그대로, 좀 더 진실하고 소박하게 살아 보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바로 튜더가 그렸던 웰 비잉 (Well-being)이고, 웰 다잉 (Well-dieing)으로 가는 길이라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이름다운 삶의 스토리 중에서 여기 타샤 튜더가 남겨놓은 몇 마디를 가슴에 담아둡니다.
*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모든 일에 여유를 갖고,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요. 그래서 놓치는 것이 너무 많아요.
* 행복이 뭐냐구요? 내면의 소릴 듣고, 거기 따라 사는 거죠.
* 저는 골동품 같은 좋은 그릇은 늘 꺼내서 사용해요. 장식장에 넣어두고 보기만 하는것 보다는 쓰다가 깨지는 편이 나은 거라고 생각해요.
* 모든 중요한 것이 그렇듯이, 인생이란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에 지나치게 심각하게 담아둘 필요는 없다고 봐요.
* 아무리 큰 돈을 준다고 해도 전 다시 젊은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 이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제일 행복하니까요.
* 어디 하늘의 별은 1년에 한 번씩만 비치나요?
*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세요. 그럼 행복해져요.
(후속 추천 : 서울MBC 스페샬 다큐, ‘타샤의 정원’)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105) _ 2월 12일
“나이가 더해 가면서 깨닫게 되는 것 몇 가지”
* 기쁨도 지나치면 흥분이 되고,
슬픔도 도가 지나면 어리석음이 됩니다.
희로애락도 다 정도껏 표현할 줄 알아야합니다.
세상일은 미친 듯이 기뻐할 일도 별로 없는 법이고,
죽을 듯이 슬퍼할 일도 별로 많지 않은 법입니다.
* 사랑과 애착, 사랑과 집착, 그 둘 사이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도 퍽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나이 70이 넘어도 여전히, 사랑하면서도 애착은 갖지 아니하고, 사랑하면서도 집착은 아니하는 것이, 여전히 힘들고 어렵습니다.

사랑은 그냥 주는 것인데,
애착 (Affection)은 줌으로써 받으려하고,
집착 (Attachment)은 주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냥, 아무 의무도 없고, 대가도 없이, 베풀기만 한다는 것은 아마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일 겁니다.
* 불평하기는 쉬운데 감사하기는 어렵습니다.
미워하기는 쉬운데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비난하기는 쉽지만
칭찬하기는 어렵습니다.
낙심하기는 쉬워도
희망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울기는 쉬워도
웃기는 어렵습니다.
슬퍼하기는 쉬워도
기뻐하기는 어렵습니다.
화내기는 쉬워도
참는 것은 어렵습니다.
싸우고 다투기는 쉬워도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돈도 벌기는 어려워도
쓰기는 쉽듯이,
인생살이 대부분이
성공하고 이루어 내기는 참 어려운데,
실패하고 무너지는 것은 너무 간단합니다.
전 지금까지 늘 쉬운 길만 쫓아다녔습니다. 힘들고 오려운 길에선 도망을 쳐왔습니다.
참 한심한 인간입니다.
*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인생길이란 늘 일방통행입니다. One Way 입니다.
인생살이에는 그 어디에도 양방통행이란 없습니다. Two Way는 없습니다. 한번가면 그걸로 끝이지 돌아오는 길이란 없습니다.
저기 돌아올 수 없는 종착역, 죽음의 종착역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습니다.
* 설날 아침, 모든 인문학 친구들을 떠올리며, 나를 반성하고, 당신을 존경하며, 사랑을 보냅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