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8월 모임 실시
8월 모임에 홍길복 목사 ‘철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 사이에서: 서구 중세 철학의 시대(2)’, 주경식 교수 ‘영화와 인생 그리고 인문학’ 열강해
9월 모임은 6일과 20일(목, 오후 7시) LKS 한글사랑도서관에서
‘시드니인문학교실’(The Humanitas Class For the Korean Community in Sydney)에서는 지난 8월 2일과 16일(목) 오후 7시, 린필드 한글사랑도서관(454 Pacific Hwy, Lindfield NSW 2070)에서 2018년 8월 모임을 개최했다. 8월 모임은 2일(목) 홍길복 목사(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와 16일(목) 주경식 교수(주비전국제대학 Director)가 각각 강사로 섰다.
2일 모임에서 홍길복 목사는 ‘철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 사이에서: 서구 중세 철학의 시대(2)’란 주제로 서두에 “지난 시간에는 기독교의 태동으로부터 시작하여 초기 교부들과 그들의 사상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중세 중기와 후기에 중요하게 두드러진 종교적 및 철학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스콜라철학과 보편논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 역사를 보는 눈은 결코 한 가지만 있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인문학을 공부하는 우리들로써는 특별히 ‘확증편향성’(確證偏向性, Confirmation bias)이 지닌 위험성을 조심해야한다는 점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인간은 분명한 사실 앞에서도 자신이 믿고 신봉하는 믿음과 배치된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는 안보고 안듣고 안믿으려는 인지적 편향성를 가지고 있습니다. 확증편향성은 인문학을 공부하는 우리들에게는 늘 대결하고 싸워야 할 대상 중 하나입니다. 또 하나 경계해야 할 것은 시대적 쏠림현상입니다. 좋은 말로는 잡단지성이라고도 합니다만 사실 한 시대의 대중적 포퓰리즘이나 집단적 광기는 대단히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실과 주장을 혼돈해서는 않됩니다. 우리 속에 있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고 하는’ 한 쪽으로 기울어진 생각은 늘 우리 개인과 공동체와 역사를 삐뚤어진 방향으로 끌고 가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은 우리에게 폭넓은 생각과 너그러운 인생을 살도록 요구합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더 아름답고 풍성해집니다 … 오늘 강의안의 제목으로 달아놓은 ‘철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 사이에서’는 중세철학은 교부철학이던 스콜라철학이던, 인문학적 접근을 하던 기독교 신학적 어프러치를 하던, 결국은 이 두 가지 서구 정신사의 양대 축을 접목시켜 보려는 노력이었다고 보는 것이 저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라며 스콜라철학(개념 및 어원과 의미, 기원과 발전, 목표와 한계), 보편논쟁(실재론, 유명론, 개념론),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순으로 살펴보았다. 결론부에서는 “(1) 확증편향성에 빠져 편견에 사로잡히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늘 자신을 살핍시다. (2)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은 틀렸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다를 뿐이라고 해야 합니다.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참 아름답고 풍성하다’고 생각해야 행복해 집니다. (3)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 신념이나 종교적 신앙을 절대화하지 않토록 노력합시다. 공부란 결국 자신의 한계와 제한성,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진리 논쟁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에는 절대로 하나의 관점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4) 인문학을 공부하면 자신이 지닌 종교적 신앙이 점점 약화되거나 이러다가는 무신론자가 될까봐 걱정이 되십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요. 처음 철학적 지식과 소양이 일천 할 때는 그럴 가능성도 좀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인문학적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이성적 판단이 강화되면 우리는 더욱 더 든든한 신앙과 신념을 지니게 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이런 지혜입니다. (5)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나누고 가르고 차별적 눈으로 보지 말고 통시적 안목에서 종합해 보고 동질성을 발견해 보도록 힘을 기울입시다. 이성과 신앙, 철학과 신학, 이상과 현실, 어제와 오늘, 너와 나, 우리와 그들을 하나되게 하는 일에 좀 더 마음을 써보십시다”라며 마무리 했다.
16일 모임에서 주경식 교수는 ‘영화와 인생 그리고 인문학’이란 주제를 세 단락 ‘인생 그리고 인문학’ ‘인생 그리고 영화’ ‘인생과 영화 그리고 인문학’으로 나눴다.
먼저 ‘인생 그리고 인문학’에서 인문학의 사전적 정의를 통해 “인문학은 ‘자기성찰’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 실제 우리 삶에서 인간다운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이 인문학의 목표”라며 “편견과 판단이 판을 치고, 하나라도 더 가지기 위해 속이고 싸우고, 갖은 수단으로 이중삼중으로 가면을 쓰고,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위선의 페르조나속에서 현대인은 길들여진 인생 속에서 그렇게 피투되어 살아간다(하이데거는 인간을 피투된 존재, 즉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라 정의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고 어떻게 살아야 ‘인간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것은 계속 인문학교실에서 질문하고 성찰하고 고민해야 할 내용일 것”이라 했으며,
두 번째 ‘인생 그리고 영화’ 단락에서는 “인생은 영화와 같다(닐 게이블러, ‘인생은 영화다’). 삼류소설같은 이야기가 현실 세계에서 벌어질 뿐 아니라 실제 우리네 인생 이야기는 영화의 소재로 등장한다. 그래서 영화의 주요 장치는 내러티브, 즉 이야기이다. 영화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인물과 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즉 영화는 인간의 갈등과 인과관계를 통해 전개되는 인간의 심연을 보여주기도 하고 사건을 통해 인간이 무엇인지를 조명하기도 한다. 영화는 물론 동물이나 SF가 소재가 될 때도 있지만 98% 이상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인간의 삶을 채색하고 그리며 영화를 통해 인간을 규명하고 인생에 대해 조명한다. 즉 영화는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에 대한 스토리”라며 “우리 삶 주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이야기가 영화의 소재이고 인간의 본질적인 체험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motive)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 즉 인생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향연 슬픔과 기쁨, 인간의 희노애락은 인간 삶에서 매일 마주치는 일상이고 이 일상속에서 ‘인간으로서 도달해야 할 최선의 상태’에 대해 질문한다. 그래서 영화는 늘 인간을 소재로 한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인간은 치유도 되고 통찰력을 얻기도 하며 상상력의 세례를 받기도 한다”고 했다.
세 번째 ‘인생과 영화 그리고 인문학’ 단락에서는 “영화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스트레스를 풀거나 여가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 물론 영화의 역사 초기를 보면 영화의 대부분이 종교적인 주제로 사용될 때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초기의 영화는 전도자들에 의해 제작되기도 했다 … 하지만 오늘날의 시대는 이러한 요소와 함께 영화는 교육적으로 효과적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잘 만들어진 좋은 영화 한편을 보는 것은 그 어떤 교육내용을 받은 것 보다 훨씬 인생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실제적인 교육효과가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영화가 사람들을 한 쪽 방향으로 세뇌시키는 역할로 이용되어온 역사도 있다”며 “현대에 와서 영화는 곧 그 시대를 돌아보게 하는 문화적 콘텐츠이자 거울이다. 영화를 통해 현 시대를 비판하기도 하고 특정한 사건이나 사실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말을 걸기도 한다 … 심지어 영화는 사회의 정책을 바꾸기도 하고 정부를 대신해 정의를 행하기도 한다”며 “찰스 쿨리(Charles H. Cooley)는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인 동시에 ‘거울에 비춰진 자아’(looking-glass self)라고 강조한다 … 그러므로 영화는 인간 삶의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속에는 인간 삶의 모습과 여러 양태를 담겨져 있다. 그래서 영화는 인간에게 인간의 삶을 반영해 주는 거울의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이 렌즈를 통하여 인간의 역사와 삶과 인생들을 바라보고 추적한다. 그리고 렌즈를 통하여 인간의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을 들여다보고 성찰하게 한다”고 했다. “인문학의 중요한 목표는 바로 ‘자아성찰’이다. 이 자아성찰을 문학이나, 역사나 철학을 통해서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의 기능이다. 그래서 인문학하면 흔히 ‘문사철’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바로 ‘문학, 역사, 철학’의 준말인 것이다. 서두에서도 보았지만 인문학의 사전적 정의를 ‘인문학은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규정하는 것을 보았다. 영화는 ‘문사철’에 속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사실 ‘문학, 역사, 철학’을 종합하고 있는 종합 인문학이라 할 수 있다”며 결론부에서 “영화는 문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희곡이라고 해서 바로 ‘문학’의 주요한 장르이다. 또한 영화는 역사를 다루기도 하고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의 역사관을 반영한다. 어디 그뿐인가? 영화에는 영화라는 렌즈를 통하여 인간의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들을 관람자들에게 조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영화 한편을 잘 관람하는 것은 영화라는 인문학을 통하여 자신을 반추이고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를 조명해 볼 수 있는 인문학적 세례의 경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일반적으로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생과 삶에 대한 여섯가지 주제들에 대 하여 성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첫째는 삶과 죽음이다. 이 주제야 말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이 아니겠는가? 둘째는 사랑과 미움이다. 이 주제 역시 인간역사와 실제 삶에서 얼마나 자주 부딪히는 문제인가? 셋째는 생존과 발전 혹은 변화이다. 영화를 새로운 삶에 대해 용기를 가지고 변화를 추구했다는 말들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넷째는 권위와 불복종이다. 이것은 현실과 역사라는 대하 주제와 맞물려 있는 거대 담론이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들이 결국 인류의 물살을 바꾸는 중요한 테마가 되기도 한다. 다섯째는 현사회 질서에 적응 혹은 순응함인가? 아니면 그것에 역행할 것인가? 이러한 주제는 여섯 번째 주제와 맞물려 영화가 실제 우리 삶에서 인간의 정의를 이끌어내는 주요 원동력이 되어 왔다. 여섯 번째는 악의 편에 서는 것과 정의와 희생, 선의 편에 서는 것인가? 이다. 이처럼 우리는 영화라는 ‘세례’를 통하여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인식할 뿐 아니라 반성하고 자숙하고 성찰하며 성숙될 수 있는 것이다”라며 “일상에서 얻게 되는 신비는, 영화의 모든 소재가 일상의 삶을 초월의 삶으로까지 잇대게 하는 혜안을 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준다. 인생은 한 편의 영화이다. 그리고 그 영화에 기대어 자신을 성찰하고 인간으로서 최선의 상태가 무엇인지를 늘 고민할 때 ‘예기치 못한 기쁨’의 ‘세례’를 맛 볼 수도 있을 것이다”라며 마무리 했다.
시드니인문학교실은 2018년 후반기를 진행하며 “우리 시대 과연 사람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며, 함께 그 생각과 고민을 나누고 싶어 하는 분들을 초청합니다. 2월부터 5월까지, 8월부터 11월까지 1년 8달, 매달 첫째와 셋째 목요일 저녁 7시부터 함께 자리(1년에 모두 16번 모임)합니다”라며 초청했다.
– 시드니인문학교실 9월 모임안내
.일시: 9월 6일(목) / 9월 20일(목) 저녁 7-9시
.장소: LKS 한글사랑도서관(김동숙 관장)
454 Pacific Hwy, Lindfield
.문의: 주경식(0401 017 989, drjks709@hotmail.com)
임운규(0425 050 013, woon153@daum.net)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