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
아르헨티나의 시인 후안 헬만 (Juan Gelman, 1930 ~ 2014)의 시 모음
후안 헬만 (Juan Gelman, 1930년 5월 3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2014년 1월 14일, 멕시코 La Condesa)은 아르헨티나의 시인이다.

– 묘비명
새 한 마리 내 안에 살았다
꽃 한 송이 내 피를 떠돌았다
내 마음은 바이올린이었다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
나를 사랑해 주었다. 봄,
맞잡은 두 손, 행복함에 나도 즐거웠다.
내 말은 사람은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새 한 마리 눕는다.
꽃 한 송이.
바이올린 하나.)
– 고탱 (Gotan)
그 여자는 “결코”라는 말과 닮아 있었지.
목덜미에서부터 독특한 매력이 솟아났어,
두 눈에 담긴 걸 간직해 둔 일종의 망각이랄까,
그 여자가 내 왼편 옆구리에 자리를 잡았어.
주목 주목 내가 주목하라고 외쳤지만
그 여자는 사랑처럼, 밤처럼 밀려 왔어,
내가 가을에게 보낸 마지막 신호들이
그녀 손의 물결 아래 평온히 잠들어 있었지.
내 안에서 성마른 소음이 터져 나왔고,
분노, 슬픔이 조각조각 떨어져 내리는데,
고독 속에 멈춰 선 내 뼈 위로
여자는 감미롭게 비가 되어 내렸어.
여자가 가 버렸을 때 난 사형수처럼 벌벌 떨었어,
거친 칼로 내 목숨을 끊었지,
여자의 이름을 품고 누워 죽음을 다 지나쳐 버릴 테야.
그 이름으로 마지막 한 번 내 입을 움직일 거야.
– 현혹당한 자
희망은 종종 우리를 실망시키지만
슬픔은, 절대 아니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지
알려진 슬픔이
알려지지 않은 슬픔보다 낫다고.
희망은 환상이라고 믿는 사람들
슬픔에 현혹당한 사람들.
- 마지막 (Final)
남자 하나 죽었다
사람들은 그의 피를 숟가락으로 담고 있다
친애하는 후안 결국 넌 죽음에 이르렀구나
부드럽게 젖은 너의 조각들도 이젠 너에게 소용없구나
바늘구멍 사이를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었니
네가 도망치지 못하게 아무도 손가락으로 막질 않았구나
사망전후,
그는 그의 뼈에 기댄 채
슬프게 울고 있었다
이제 너를 내려놓는다, 동생아
너로 인해 땅이 떨고 있다
우린 지켜볼 것이다
불멸의 광기에 밀려서
어디로 네 손들이 다시 튀어 나올 것인지를
– 내 사랑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Mi Buenos Aires querido)
밑 빠진 의자 모서리에 걸터앉아
정신없이, 아픈 몸으로, 거의 살아있는 상태로
내가 태어난 도시를 위해
먼저 울음 운 시들을 쓴다
그 많은 시련 속에서도
내 사랑하는 아들들이 여기서 태어났다고
저항하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아름답게, 달콤하게
……써야만 한다
도망치거나,
남거나,
하질 않고 저항하는 법을……
더 많은 시련, 형벌, 망각이 있을지라도
저항하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써야만 한다
– 어느 실업자의 기도 (Oración de un desocupado)
아버지, 하늘에 계신,
이제 그만 내려오슈
불쌍한 할머니가 가르쳐준 주기도문도 잊어버렸소
불쌍한, 지금은 잠든,
씻을 필요도 없게 된,
옷을 얻기 위해 거리를 헤맬 필요도 없게 된,
부드럽게 투덜대며
밤 새워 당신에게 먹을 것을 구하던
아버지, 하늘에 계신,
이제 그만 내려오슈
잠시 내려와
이 모퉁이에서 굶어 죽어가는 날 좀 보슈
무슨 소용으로 태어났는지
직장도 없이,
빈털터리 손을 바라보는 날 좀 보슈
잠시 내려와 보시라니깐요
이 낡은 구두를,
이 텅 빈 창자를,
이빨을 위한 빵도 없는 이도시를,.
몸은 불덩이처럼 열이 오르고
쏟아지는 빗물 아래 파고드는 송곳추위.
한번 내려 오슈, 제발
내 영혼을 만져주고 가슈, 제발
난 훔치지 않았어요
죽이지도 않았어요
마냥 어린애였어요
하지만 날 때려요, 때린다구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계신다면 내려와 보슈, 제발
아님,
공수병에 걸릴래요
전염시킬래요
목에 피가 솟도록
소릴 지를래요
– 기록 Ⅰ (Nota Ⅰ)
네 이름을 부르리
밤이나 낮이나.
난 너와 잠자리를 함께하리
난 네 그림자와 성교하고
난 네게 내 미친 심장을 보여주리
난 널 미치광이처럼 짓밟을 것이며
난 파코와 함께 널 죽일 것이며
로돌포와 함께 널 죽일 것이며
아롤도완 너를 죽여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며
내 아들과는 너를
내 아들의 아들과는 너를
디아나와 함께 난 너를
호떼와 함께 난 너를
너를 일백 번 죽이기 위해
사랑하는 얼굴이 필요치 않으리
네가 죽을 때까지
난 너를 죽이리
내가 너를 죽이리
– 기록 Ⅱ (Nota Ⅱ)
난 이미 내일 죽었거든
난 그저께 죽을 거야
날카로운 칼로
76을 파버릴거야
파코의 뿌리를 깨끗이 하기 위해
파코의 잎새를 깨끗이 하기 위해
망가진 노새처럼 땅에 박힌
날 도와주려했던 사람들,
후에 77이 되고
로돌포의 눈들을 만나기 위해
지금은 텅 빈 시선들,
뼈를 씻어야할 거야
사라지는 그림자완 거래를 하지 않을 거야
가슴, 뼈 위에 뿌려지는 흙,
차가운 땅바닥에 누인
친구들이여, 용기를 다오
그림자들이 주위를 날아다니는구나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 몸 어느 부분을
멈추게 할 순 없지
심장도
낱말도
낱말, 심장도
친구들이여
– 의견들 (Opiniones)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난폭하게 요구한다
몇몇 이들은 그 광경을 좋지 않다고 여기고
한 남자, 미치도록 날고 싶어 하고
몇몇 이들은 그를 이상하다, 아프다 생각하고
한 남자, 혁명을 갈구하고
마른 벽을 오른 뒤,
가슴을 열고선 심장을 꺼내
헌병대의 의견에 반대하며
한 여인을 향해 마구 흔들어대고
마침내 한 남자
세상의 지붕 위를 정신없이 날자
사람의 마을은 불타오르기 시작하고
‘고탱(Gotán)’의 깃발,
타오르기 시작하고

*후안 헬만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다 중퇴하고 청년공산당에 가입한다. 이후 ‘딱딱한 빵’이라는 동인을 결성, 시낭송회를 열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3년 동안 숱한 나라들을 전전하며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에 저항한다. 파블로 네루다 문학상, 세르반테스 문학상을 수상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