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전 (兩班傳) _ 연암 박지원 저
‘양반전’ (兩班傳)은 조선 정조 때 박지원이 지은 한문소설이다. 내용은 양반의 무능, 허례, 특권의 가면을 벗기고 풍자한 것으로 ‘연암외전’ (燕巖外傳)에 실려 전한다.
– ‘양반전’ 개요

.작가: 연암 박지원
.창작년도: 조선 정조 연간
.갈래: 한문 소설, 단편 소설, 풍자 소설
.성격: 풍자적, 비판적, 사실적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조선 후기, 강원도 정선
.제재: 양반 신분의 매매
.주제: 양반들의 무능과 위선적인 태도, 허위의식 풍자, 맹목적인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 비판
.특징: 몰락하는 양반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풍자함,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보여 줌
.출전: “연암집”중 ‘방경각외전’
.작가: 연암 박지원
○ 저자소개 : 박지원 (朴趾源, 호: 연암)

조선 후기의 문호이자 실학자로,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그밖에 공작관·무릉도인武陵道人·박유관주인薄遊館主人·성해星海·좌소산인左蘇山人 등의 호를 사용하였다. 『열하일기』를 저술하여 당시 중국의 정세를 살피고, 그 선진 문명을 소개하는 한편, 조선에 대한 심도 있는 내부 비판을 시도하였다. 1786년 음직으로 처음 선공감 감역이라는 벼슬을 지냈으며, 이후 여러 말단 벼슬을 거쳐 1792년 안의 현감에 임명되었고, 1797년 면천 군수가 되었다. 1800년 양양 부사에 승진,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홍대용과 함께 조선의 주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 위에서 이용후생의 실학을 모색했으며, 창조적이고 성찰적인 글쓰기를 통해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이 갖고 있던 미망과 편견, 허위의식과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새로운 사유와 미의식의 지평을 몸소 열어 나갔다. 문집으로 『연암집』이 전한다.
박지원은 18세기 지성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자, 문체반정의 핵심에 자리하게 된 『열하일기』를 통해 불후의 문장가로 조선의 역사에 남은 인물이다. 박지원은 노론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이라는 코스에서 벗어나 이덕무, 홍대용, 이서구, 백동수 등과 어울려 수학하였다. 1780년에 삼종형 박명원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열하일기』라는 저서를 남겼다. 그는 69세에 “깨끗이 목욕시켜 달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운명을 달리했다.
○ 줄거리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이 조선 양반들을 비판하기 위해 쓴 소설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임진왜란 후 몰락한 양반들이 늘어난 때, 한 몰락한 양반과 그 신분을 사려는 돈 많은 상민의 이야기를 다룬다.
옛날 강원도 정선에 한 양반이 있었다. 그는 신임 군수가 한 번씩 그를 방문하는 것이 관례일 정도로 인격이 높고 책을 즐겨 읽었으나, 경제 능력이 없어 관청의 쌀을 빌어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방을 순찰하던 관찰사가 양반의 빚이 천 석이나 되는 것을 보고 감옥에 가두라고 명을 했다. 그러나 가난한 양반은 천 석을 갚을 길이 없고, 군수도 이를 알았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마을의 평민 부자가 그 소식을 듣고, 그 양반의 빚을 대신 갚아 주고 그 대신 양반의 직위를 사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고을 군수는 양반이 될 문서를 만들어 주었는데, 첫번째 문서에는 양반이 지켜야 할 온갖 형식적인 조건들이 있었으며, 두번째 문서에는 허례적인 양반의 특혜들이 적혀 있었다. 부자가 이것을 보고 양반이란 알고 보니 허례와 구속뿐이고 또한 월권이 강도의 짓이 아니냐 하면서, 드디어 양반이 될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 인물 소개
양반 _ 학식과 인품을 지녔지만 현실에 대한 대응 능력이 없는 양반의 전형을 보여 주는 인물이다.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여 결국 자신의 신분을 팔게 되는 무능력한 인물로, 풍자의 대상이 된다.
부자 _ 조선 후기 신흥 부유층으로 경제력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을 꾀하는 인물이다. 돈으로는 양반 신분을 사려고 하지만 양반의 실상을 알고는 양반 되기를 포기한다.
양반의 부인 _ 현실적 생활 능력을 중시하는 인물로, 무능한 양반을 비판하는 작가 의식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군수 _ 표면적으로 양반과 부자의 신분 매매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나, 결국 부자로 하여금 양반 되기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인물이다.
○ 주제
양반전에 대해 박지원은 ‘방경각외전’의 자서에서 천작을 팔고 산 정선 양반과 상인인 부자를 풍자한 것으로 허위와 부패를 폭로하는 것을 저작 경위로 밝히고 있다. 양반전에서는 양반의 형식주의를 비판하면서 양반의 비인간적인 수탈을 구체적이고 희화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양반전을 양반의 위선적인 가면을 폭로하고 봉건계급 타파를 주장한 소설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임진왜란 후 신분제는 크게 동요되었다. 몰락한 양반들이 늘어났고 반대로 의병으로 참가해 양반이 된 상민들도 늘어났던 것이다. 그 중 관가에서 쌀을 빌려먹으며 간신히 살고있던 한 몰락 양반이 있었다. 그리고 옆집에는 돈이 많은 부농 한명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풍족했던 부농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상민 계급이었으므로 양반에게 굽신거리고 천대받는 처지였다. 그러던 어느날 가족을 다 불러다놓고 옆집 양반이 가난하여 관가에서 진 쌀들을 아직 갚지 못하고 있으니 ‘이 참에 양반 계급을 사서 내가 양반 행세를 해야겠다’라고 말하고 몰락 양반에게 가서 계급을 사고 관가에 가 확인을 받았다.
그 덕분에 몰락 양반은 상민이 되었고 부농은 양반이 되었다. 관가의 수령은 양반이 지켜야 할 규율을 알려주기 시작했는데 다음과 같다.
“그러나 양반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으니, 이것을 어겨서는 안 되느니라. 양반은 절대로 천한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옛사람의 아름다운 일을 본받아 뜻을 고상하게 세워야 하느니라. 새벽 네 시가 되면 일어나 이부자리를 잘 정돈한 다음 등불을 밝히고 꿇어앉는데, 앉을 때는 정신을 맑게 가다듬어 눈으로 코끝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두 발꿈치는 가지런히 한데 모아 엉덩이를 괴어야 하며, 그 자세로 꼿꼿이 앉아 『동래박의』를 얼음 위에 박 밀 듯이 술술술 외워야 하느니라.”
(후략)
너무 당연하거나 시시콜콜한 규율만 늘어 놓는다. 점점 규율을 듣다가 진절머리가 난 부자가 좀 더 그럴듯한 건 없냐 묻자 수령은 문서를 다시 써주었는데, 그 문서의 내용이 다음과 같다.
“하늘이 민(民)을 낳을 때 민을 넷으로 구분했다. 사민(四民)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사(士)이니 이것이 곧 양반이다. 양반의 이익은 막대하니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않고 약간 문사(文史)를 섭렵해 가지고 크게는 문과(文科) 급제요, 작게는 진사(進士)가 되는 것이다. 문과의 홍패(紅牌)는 길이 2자 남짓한 것이지만 백물이 구비되어 있어 그야말로 돈자루인 것이다. 진사가 나이 서른에 처음 관직에 나가더라도 오히려 이름 있는 음관(蔭官)이 되고, 잘 되면 남행(南行)으로 큰 고을을 맡게 되어, 귀밑이 일산(日傘)의 바람에 희어지고, 배가 요령 소리에 커지며, 방에는 기생이 귀고리로 치장하고, 뜰에 곡식으로 학(鶴)을 기른다. 궁한 양반이 시골에 묻혀 있어도 무단(武斷)을 하여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자기 땅을 갈고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자기 논의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너희들 코에 잿물을 들이붓고 머리 끄덩을 희희 돌리고 수염을 낚아채더라도 누구 감히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이 문서를 듣고는 경악한 부자는 읽는 것을 중지시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그냥 양반으로 안 살겠다며 도망친다.
이 이야기는 허례허식인 양반들을 비판했으며 조선 후기의 상황을 반영했다. 아마 이 글을 읽은 양반들은 처음에는 웃다가 후반에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판본에 따라서는 코믹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자만 넣는 경우가 있고 교훈성을 강조하기 위해 후자만 넣는 경우가 있다.
○ 이해와 감상
‘양반전’은 조선 후기 양반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한 단편 소설로, 연암의 작가 의식을 잘 드러낸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연암은 양반 신분을 팔고 사는 과정이 드러난 이 작품을 통해, 무능력하게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면서 평민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양반을 통렬하게 비판·풍자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양반의 특권 의식을 선망하여 신분 상승을 노리는 평민 계급에 대한 비판 의식도 드러내고 있다.
연암의 이러한 비판에는 양반 계층이 몰락하고 신분 질서가 흔들리던 당시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자 하는 투철한 실학 정신과, 양반의 참모습을 찾고자 하는 절박한 심정도 담겨 있다.
○ ‘양반전‘의 주된 풍자 내용과 비판 대상
연암이 ‘양반전’에서 풍자하고자 한 주된 대상은 양반으로, 이러한 풍자 의식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이 바로 양반 매매 증서이다. 1차 매매 증서에는 양반이 지켜야 할 덕목과 의무를 나열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양반의 무위도식하는 비생산성과 위선적인 허례허식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2차 매매 증서에는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나열하여 양반의 권리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는 양반의 수탈과 횡포를 풍자·비판하고 있다.
한편 이 작품에서 연암은 평민 부자에 대한 비판 의식도 드러내고 있다. 돈이면 양반도 살 수 있다는 부자의 배금주의 가치관을 보여 주면서 진정한 양반이 되려 하기보다는 특권 의식을 지향하는 부정적인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 1차 매매 증서
양반이 지켜야 할 덕목과 의무
양반의 비생산성과 허례허식 비판
-“2차 매매 증서
양반이 누릴 수 있는 특권
백성에 대한 양반의 수탈, 횡포 비판
○ ‘양반전‘에 나타난 근대적 성격
– 신분제의 동요
돈으로 신분을 사고 파는 세태를 보여 줌으로써 신분제가 점차 붕괴되며 이러한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 지배층의 허위에 대한 비판
관념적이고 허례허식에 찬 양반 계층의 삶을 비판하고 있다.
– 새로운 계층의 등장
평민 부자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시민 계급의 대두라는 사회 구조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 양반전‘의 시대적 · 사회적 배경
‘양반전’은 조선 후기 신분제의 동요와 새로운 평민 계층의 등장이라는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상은 농업 기술과 상공업의 발달에 따른 것으로, 이를 통해 새롭게 부를 축적한 부농층, 신흥 상공인 계층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자, 점차 신분 상승을 꾀하였다. 이런 평민 계층의 성장과 달리 양반 계층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점차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나라에서는 부족한 국가 재정을 마련하기 위하여 새롭게 성장한 신흥 부자인 평민들에게 돈을 받고서 양반으로 신분을 올려 주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이러한 신분제의 동요와 양반의 몰락이라는 사회 현실을 통해 양반층의 허위의식과 부패상을 풍자하면서,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양반전‘을 통해 본 연암의 선비 정신
연암은 ‘양반전’을 통해 양반의 행동 규범이 얼마나 형식적이고 무용(無用)한 것인지를 보여 주고, 양반의 부정부패와 부당한 특권을 드러냄으로써 당시의 신분 질서를 비판하고 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그는 ‘하늘과 땅이 아무리 오래되었다 해도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하고, 해와 달은 아무리 오래되었다 해도 그 빛은 날마다 새롭다.’라고 하여 과거의 권위보다 현실 인식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양반전’은 양반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더불어, 양반들이 이익만 추구하는 삶의 자세를 버리고 밝은 세상을 이룩할 수 있는 선비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양반으로서의 권리에만 집착하고 선비로서의 의무는 뒷전에 두던 당시의 집권 계층인 선비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역설한 것이다.
○ ‘양반전‘의 창작 동기
“선비란 것은 곧 천작 (天爵, 하늘에서 받은 벼슬)이므로, 선비의 마음은 곧 지 (志)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뜻이란 어떠한 것인가. 첫째 세리 (勢利)를 꾀하지 말 것이니, 선비는 몸이 비록 현달하더라도 선비에서 떠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몸이 비록 곤궁하더라도 선비의 본분을 잃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지금 소위 선비들은 명절 (名節, 명분과 절의)을 닦기에는 힘쓰지 않고 부질없이 문벌 (門閥)만을 기화 (奇貨)로 여겨 그의 세덕 (世德, 대대로 쌓아 내려오는 미덕)을 팔고 사게 되니, 이야말로 저 장사치에 비해서 무엇이 낫겠는가. 이에 나는 이 ‘양반전’을 써 보았노라.” – ‘방경각외전’ 자서(自序)
○ 세부 내용
조선 정조 때에 박지원 (朴趾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 작자의 문집인 『연암집 (燕巖集)』「방경각외전 (放璚閣外傳)」에 실려 있다. 저작연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지은이의 초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선에 한 양반이 살고 있었다. 어질고 독서를 좋아하였다. 군수가 도임하면 반드시 그를 찾아가 예를 표하였다. 그러나 집이 가난하여 해마다 관곡을 꾸어 먹은 것이 여러 해가 되어 1,000석에 이르렀다. 관찰사가 군읍을 순행하다가 관곡을 조사해 보고 크게 노하여 그를 잡아 가두라고 명하였다. 양반의 형편을 아는 군수가 차마 가두지 못하였고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양반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갚을 길이 없었다. 그의 아내는 “당신이 평소에 글 읽기를 좋아하였으나 관곡에는 소용이 없구려! 어이구 양반! 양반(兩半)은 커녕 한푼어치도 안 되는구려!” 하고 푸념하였다.
그 마을의 부자가 “양반은 비록 가난하여도 늘 존귀하고 영화로우나 나는 비록 부유하여도 비천하니 참으로 욕된 것이다. 지금 양반이 가난하여 관곡을 갚을 수 없으므로 양반을 보전하기가 어렵게 되었으니 내가 사서 가지겠다.”고 사사로이 의논을 하였다. 드디어 양반을 찾아가 관곡 갚기를 청하자 양반은 기뻐서 허락하였으며, 부자는 그 자리에서 관곡을 실어 보냈다.
군수가 놀라 몸소 가서 그 양반을 위로하고 관곡 갚은 경위를 물어보려 하였다. 그러자 양반은 전립에 짧은 옷을 입고 땅에 엎드려 소인이라 자칭하며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경위를 알게 된 군수는 짐짓 부자의 행위를 야단스럽게 기리고 나서, 이런 사사로운 매매는 소송의 단서가 되므로 문권 (文券)을 만들어야 한다고 명하고, 관아로 돌아와 모든 고을 사람들을 불러놓고 문권을 만들었다. 문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륭 (乾隆) 10년 9월 일 명문 (明文)은 양반을 팔아 관곡을 갚으니 그 값이 1,000곡 (斛)이다. 양반을 일컫는 말은 선비·대부(大夫)·군자(君子) 등 여러 가지이다. 네 마음대로 하라. 더러운 일은 하지 말고 옛일을 본받아 뜻을 세운다. 오경 (五更)에는 항시 일어나서 유황을 뜯어 기름불을 켜고 눈은 코끝을 보면서 발꿈치를 모아 꽁무니를 괴고 『동래박의 (東萊博議)』를 얼음에 박밀듯이 외우고… 소를 잡지 않고 노름을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온갖 행동이 양반에 어긋남이 있거든 이 문권을 가지고 관가에 나와 바로잡을 것이다.”
정선군수가 문건에 수결을 하고 좌수·별감이 증인으로 서명한 뒤에 통인이 문권 가운데에 관인을 찍었다. 호장 (戶長)이 읽기를 마쳤다. 부자는 슬픈 기색으로 “양반이 신선 같다고 들었는데, 참으로 이와 같다면 한쪽은 너무 이익이고 한쪽은 너무 손해니, 이익이 될 수 있도록 고쳐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다시 문권을 만들었다. 다시 만든 문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이 백성을 낼 때, 그 백성이 넷이고, 사민 (四民)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선비다. 이것을 양반이라 일컬으니 그 이익이 막대하다. 농사도 하지 말고 장사도 하지 말고 대강 문사(文史)나 섭렵하면 크게는 문과에 오르고 작아도 진사는 된다. 문과 홍패 (紅牌)는 두 자 (尺, 척)밖에 안 되지만 백물이 갖추어져 있는 돈주머니이다… 궁사 (窮士)가 시골에 살아도 오히려 무단(武斷)을 할 수 있다. 이웃집 소로 먼저 밭을 갈고, 마을 일꾼을 데려다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를 홀만하게 여기랴. 네 코에 잿물을 붓고 머리끝을 잡아돌리고 수염을 뽑더라도 감히 원망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자는 문권의 이 대목에 이르러는 혀를 빼물며 “그만두시오, 그만 두시오, 맹랑합니다. 장차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이오?” 하고 머리를 흔들고 가서 죽을 때까지 양반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양반전」에 대하여 박지원은 「방경각외전」의 자서 (自序)에서 다음과 같이 그 저작 경위를 밝히고 있다 “사 (士)는 천작 (天爵)이니 사 (士)와 심 (心)이 합하면 지 (志)가 된다. 그 지 (志)는 어떠하여야 할 것인가? 세리 (勢利)를 도모하지 않고 현달하여도 궁곤하여도 사 (士)를 잃지 말아야 한다. 명절 (名節)을 닦지 아니하고 단지 문벌이나 판다면 장사치와 무엇이 다르랴? 이에 「양반전」을 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천작을 팔고 산 정선 양반과 상인인 부자를 풍자한 것으로 허위와 부패를 폭로한 것이다.
「양반전」에서 처음 만든 문권에 나타나는 것은 양반의 형식주의이다. 두 번째에 만들다가 만 문권에서는 양반의 비인간적인 수탈 등이 매우 구체적이고 희화적 (戱畫的)으로 서술되고 있다. 이 점에 착안하여 「양반전」은 양반의 위선적인 가면을 폭로하고 봉건계급 타파를 주장한 소설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작품을 분석하여 얻은 결론은, 치부를 한 뒤 신분상승을 꾀하여 양반이 되고자 하는 정선의 한 부자가 마침 어느 몰락양반이 당면한 극한 상황을 계기로 그 양반을 사 가지는 사건을 두고, 같은 양반 계층인 군수가 기지를 써서 이 매매행위를 파기시켜버린 골계소설이라는 것이다.
그 까닭은 최초에 설정하였던 관곡 보상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뒤에 군수가 새로 이 사건에 개입한 점, 문권의 내용은 양반이 상인 (常人)이 되어 지켜야 할 일들이 제시된 것이 아니고 상인이 양반이 되어 지켜야 할 것만을 요구하는 일방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첫째 문권은 양반이 행하는 일들의 골계적인 표현이며, 둘째 문권은 계약 파기의 적극적인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견해는 작가가 가진 철저한 계급의식을 감안할 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양반전」은 부농이 등장하여 경제력에 의한 양반신분획득의 가능성이 나타난다. 그리고 관료사회의 부정이 깊어졌으며, 몰락양반의 비참한 모습이 드러나는 등의 조선 후기의 역사적 상황이 작가의 간결한 필치로 잘 그려진 작품이다.
또한 사이사이에 끼여 있는 교묘하고 익살스러운 표현은 독자의 웃음을 유발한다. 속된 표현이라 하여 당대에 많은 비난을 받았던 이 작품은 도리어 그 표현 때문에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할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작품
– 작자 미상, ‘배비장전’ (裵裨將傳)
‘배비장’의 훼절을 다룬 소설이다. 배비장이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세워 방자와 내기를 하고, 방자에게 속아 망신당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배비장의 위선과 교만을 풍자하고 있다. 당대 지배층인 양반의 무능과 부패를 풍자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반전’과 관련지을 수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