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 안식일 식탁에서 발견하는 모습

아버지는 집을 짓고 어머니는 가정을 만든다
[창세기 2:23 ]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유대인 여성들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가정에서 차지하는 엄마의 위상은 남달라보입니다. 그것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매주 맞이하는 안식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안식일이 되면 유대인 가정은 자녀들과 더불어 온 집안을 청소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엄마는 음식을 준비하고 아버지는 아내의 음식 장만을 돕고, 안식일 예배를 위해 가족 수대로 촛대를 준비하고 노래와 시편 문구가 담긴 책자 등을 준비합니다. 안식일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신에게 감사와 기도를 드린 후 자녀들을 축복하는 것보다 앞서, 먼저 엄마를 향해 아버지와 자녀들이 잠언 31장 ‘현숙한 여인’의 노래를 부르고 감사를 전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자녀를 축복하는 것은 어느 종교에서도 자주 확인해 볼 수 있지만, 아버지가 아닌 엄마에게 하나님 다음으로 감사와 축복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특이해 보입니다. 랍비에게 그 의미를 물었더니”안식일에 아내를 먼저 축복하는 것은 창세기의 고백을 매주 반복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처음 보고 한 말이 성경 문학의 첫 번째 시 (詩)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갈비뼈에서 취했다는 것에 대해 토라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발에서 취하지 않은 것은 밟히지 않도록, 머리에서 취하지 않은 것은 지배하지 않도록, 심장 가까이 갈비뼈에서 취한 것은 늘 가슴 가까이에서 사랑받도록… 탈무드는 “남자는 자기 몸보다 자기 아내를 더욱 존중해야 한다” (힐코스이셔스 15:19-20)고 가르칩니다. 이웃 사랑의 제일 우선순위가 아내라고 말합니다.
❝ 아버지는 집을 짓고,어머니는 가정을 만든다. 아버지가 가장이라면, 어머니는 가정의 중심 곧 마음의 중심이다. _ 탈무드 ❞
탈무드는 “어머니의 위상은 성전의 위상과 같다”고까지 표현합니다. 성전이 있을 때 세상이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했듯이,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사랑과 지혜로 가정을 채울 때 그 가정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공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 저녁마다 랍비가 아내를 향해 노래를 부르는 모습 속에, 단순한 유대인의 전통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머니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복되게 하시는 지에 대한 원리적인 선언을 들여다 본 것 같았습니다. 이는 엄마가 가정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게 할 뿐만 아니라, 온 가족으로부터 존경과 남편의 사랑 이상의 지위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시간입니다. 이를 보며 아들은 엄마의 위상과 여성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딸도 자신이 여자로서 아들과 동등할 뿐만 아니라 존귀한 존재와 더욱 소중한 역할을 부여받은 인식을 스스로 확인하며 자라게 합니다.

*가정의 중심
정신분석학의 선구자인 지그먼트 프로이트는 “내가 위대한 인물이 되려고 노력한 것은 오직 어머니가 나를 믿어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고, 아인슈타인은 “너는 남들과 다른 더욱 특별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한 엄마의 인내와 슬기로움이 그의 성공의 기초가 되었음을 고백했습니다. 모두 가정에서 비롯된 여성의 사랑과 감성이 능력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유다 지파의 다윗과 메시야의 계보를 이룬 인물로 다말과 라합과 룻과 밧새바의 여성의 이름이 당당하게 등장합니다. 얼마나 여성의 위상이 분명하게 인정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합니다.
❝ 아버지는 집을 짓고, 어머니는 가정을 만든다. 아버지가 가장이라면, 어머니는 가정의 중심 곧 마음의 중심이다. _ 탈무드 ❞
많은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고 감사해 하면서도 좀처럼 표현하지 못하는 어색함에 젖어 삽니다. 아내를 먼저 축복하고 엄마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챙긴다면, 유대인 여성들처럼 아내의 자존감과 위상이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에 대한 자녀들 스스로의 인식도 달라질 것입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미국이고,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유대인이고,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아내라고도 말합니다. 에베소서 5:25에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권위가 아니라 희생의 언어입니다. 내가 양보하고자 하면 가족 모두의 위상이 높아지고 더욱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 되리라 생각해봅니다. 샬롬!

정원일 목사 (호주 이스라엘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