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라이프 – 한글날 특집
한글, 알고 계셨습니까?
10월9일은 ‘한글날’이다. 한글이 반포된 지 567주년이다. 한글날은 1991년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올 해 다시 법정공휴일로 재지정 되었다. 그래서 다른 해보다 다채로운 한글날 행사가 펼쳐졌다. 고국을 떠나 호주에서 살아가는 이민세대들에게 있어 ‘한글날’이 직접적인 실감은 덜 되겠지만 호주에서 맞는 한글날을 계기로 ‘한글’에 대해 좀 더 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세계가 인정하는 한글
《훈민정음 해례본》서문을 쓴 조선시대 학자 정인지는 “지혜로운 사람이면 훈민정음을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한글은 쉽고, 과학적이며 독창적이다. 한글은 무려 1만 1000여 개의 발음을 적을 수 있다. 일본 300여 개, 중국 400여 개에 비교해보면 얼마나 뛰어난 글자인지 짐작할 수 있다. 가히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자랑할 만하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약 78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모국어 사용자 기준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약 6900여 개 언어 중 세계 13위다. 언어별 인터넷 사용자 수 순위에서는 세계 10위에 올라 있다.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처럼 유엔 공용어가 아닌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순위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단어 수는 51만 개. 1920년부터 2010년까지 90년 동안 발간된 국어사전은 12종이나 된다.
한글은 15세기에 만들어졌지만 과학적 표기체계를 갖춘 21세기형 문자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2007년 아홉 번째 국제특허 공개어로 채택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 우수성에 비해 너무 늦은 감이 있다.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은 세계유산이다. 유네스코(UNESCO)는 1997년 10월 한글을 세계기록유산에 등록했다.
지난 해 9월 방콕에서 열린 제2차 세계문자올림픽에서 한글은 문자의 기원과 구조, 유형, 결합능력, 독립성, 응용력 등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아 27개 언어 중 당당히 1위인 금메달을 받았다.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등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동시에 미국 UCLA 의과대학에서 생리학과 지리학을 가르치고 있는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 교수는 최근 기사에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한글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책을 집필 중에 한글이 세계 최고의 문자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어떤 언어의 문자보다 배우기 쉽고 읽기도 쉬워 세계 모든 언어를 통합하기 위해 하나의 문자 체계를 고르라면 한글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강의에서 ‘한글은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도 아닌 외국인이 이렇게 한글에 대해 말하는 것이 낯설지만 듣고 있으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한글에 대한 자긍심이 느껴진다. 이렇게 해외에서 찬사를 받고 있는 한글, 과연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글은 누가, 언제, 왜 만들었을까?
훈민정음은 세계 최고의 알파벳 한글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한글은 조선의 성군 세종대왕(1397~1450)이 창제했다. 《세종실록》에는 세종이 뛰어난 언어학자였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여러 군데 나온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 소리는 한글을 의미한다. 세종은 훈민정음 서문을 통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었다. (중략)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매일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이전부터 우리말은 존재해 왔으나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중국 문자인 한자를 빌려 썼다. 이 때문에 모든 말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말과 글이 다른데다가 한자는 어려워서 일반백성들이 배우고 사용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이 지배층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기반이 되기도 했다. 지배층만이 한문을 배워서 과거 시험을 볼 수 있었다. 과거시험은 양반 관료로 편입되어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기반이었다. 지배층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한자가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서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이런 때에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훈민정음은 한글이라고 부르는 ‘글자’의 이름이기도 하고, ‘책’의 이름도 된다. 훈민정음은 해례본(한문)과 언해본(한글) 등 2가지가 전해온다. 한글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 것은 1446년(세종 28).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 3년 만이다. 애초 28개의 문자였지만, 닿소리 4개와 홑소리 1개가 점점 쓰이지 않더니 없어졌다. 현재는 자음 14자, 모음 10자를 합해 24자의 자모만 쓰인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주시경(1876~1914) 선생이 처음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한글날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원래 한글날의 이름은 ‘가갸날’이었다. ‘가갸거겨’ 할 때의 ‘가갸’를 빌려와 이름으로 삼았던 것이다. 가갸날이 처음 제정된 1926년에는 11월 4일이 ‘가갸날’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훈민정음》이라는 책이 완성된 것은 1446년 음력 9월이다. 정확한 날짜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는 음력 9월의 마지막 날인 29일을 한글을 기념하는 날로 정했다. 그해(1926) 음력 9월 29일에 해당하는 날짜가 바로 11월 4일이었다. 가갸날은 1928년부터 한글날로 이름이 바뀌었다. 1931년 무렵부터 많은 사람들이 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한글이 반포된 1446년 음력 9월 29일을 양력으로 환산해보니 1931년에는 10월 29일이 한글날이 됐다. 이후 정확한 양력 환산법(그레고리력)을 적용해 1934년부터는 하루 앞당겨 10월 28일을 한글날로 기렸다.
그런데 1940년 7월 경상북도 안동에서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훈민정음 원본(해례본)이 발견됐다. 그 책의 기록에 ‘9월 상한(상순)’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상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바꾸면 10월 9일이 된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는 광복 후 1946년부터 현재까지 10월 9일을 한글날로 삼고 있다. 반면 북한은 다르다. 훈민정음을 만든 날을 기준으로 한다. 1443년 음력 12월을 양력으로 환산해 1월의 한가운데인 1월 15일을 훈민정음 창제일로 기념하고 있다.
한글이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까닭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자는 대부분 알파벳이나 한자 등 이웃한 선진국의 문자를 빌려다가 자기 나라에 맞게 고쳐 사용한다. 하지만 한글은 다른 나라 문자의 영향을 받아 만든 것이 아니라, 발음기관과 천지인(天地人)의 모양을 본떠 독창적으로 만든 문자이다. 자음의 경우에는 발음기관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에 글자의 모양만 보고서도 그 글자의 소리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여 같은 계열의 문자를 파생해 내는 방법(ㄱ-ㅋ-ㄲ)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이다. 모음은 하늘의 둥근 모양을 본뜬 ‘·’와 땅의 평평한 모양을 본뜬 ‘ㅡ’,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본뜬 ‘ㅣ’를 결합하여 만들었다. 예를 들어, ‘ㅏ’는 ‘ㅣ’와 ‘·’를 결합하여 만들었다.
한글, 단순한 문자가 아닌 삶과 정체성
해외 이민세대들 중 영어권 나라에 정착한 교민들은 영어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호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영어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자녀들에게도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해 소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른 언어권의 사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세대가 바뀌고 시간이 흐를수록 젊은 한인 부모 사이에 한글교육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단순히 집에서 사용하는 말과 글 수준이 아니라 전문적인 수준으로서의 우리말, 우리글을 사용하려는 노력들이 있다. 한국학교나 한글학교를 통해 말과 글 뿐 아니라 한국문화에 대해 함께 배운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통해 한국어자격을 갖추기도 한다. 한국에서 유학을 하거나 한국기업체, 공공기관에 취업하려면 한국어능력시험을 요구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영어만 잘하는 재외동포로는 인정받기가 어렵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말과 글은 삶이고 문화이고 정체성이다. 비록 몸은 타문화권에 살고 다른 언어를 주요언어로 사용한다고 해도 자기의 뿌리가 한국인이상 한국어와 한글을 떼어 내어 살 수는 없다.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재외동포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한글 보급, 한국문화전파들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호주에도 이런 기관들이 있다. 현재 호주 내의 한국어보급과 한글학교지원을 맡고 있는 시드니한국교육원(www.auskec.org)도 그 중 하나이다. 한글과 한국문화에 관심이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은 이곳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문자를 넘어 우리의 삶이고 정체성인 한글, 그래서 더욱 고맙고 귀한 우리의 유산이다.
에듀라이프 편집국
*‘초등국어개념사전’(자랑스러운 한글), ‘의심많은 교양인을 위한 상식의 반전101’(한글편)을 인용하여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