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의 이민 삶 나눔
내가 가장 사랑해야 하는 사람
얼마 전 지인의 친구분이 연락을 해 오셨다. 호주 영주권이 있는데 입국가능기간이 10개월 정도 남아있고, 영주권 취득 후 남편과는 이혼을 한 상태이며 두 아이의 양육은 엄마가 맡고 있다고 했다. 엄마는 현재 정년퇴직이 가능한 직장에서 10년 근속 재직중이며 아이들은 초등학교 1, 3학년이라고 했다. 그분은 영주권 입국마감일이 끝나기 전에 호주로 오려는 생각을 가지고 이것저것 문의했다. 허나 현 상태에서 이민을 고려하기엔 상황이 너무 열악했다. 영어도 잘 안되는 상태에서 아이들의 미래만을 위해 자신의 안정적인 직장까지 그만두고 호주에 와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민 1세대들의 피나는 노력과 어려움을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영어도 잘 안되는 상황에서 40대 중반의 나이에 호주로 무엇을 위해서 이주하려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조언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를 희생해서 자식에게 더 밝은 미래를 열어주고 싶다는 그분의 생각을 정말 존경하고 또한 그 용기에 박수를 드리고 싶다. 허나 내 자식을 위해 내 삶을 버리고 희생만 하는게 과연 잘하는 일일까? 우리 부모세대가 그랬다고 해서 우리도 자식을 위해 모든걸 헌신해야만 좋은 부모가 될까?
물론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그 의견에 손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부모인 나 자신이 행복하고 여유가 있어 아이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며 또 부모 개인의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푸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부모도 사람이다. 내 인생을 버리고 자식을 위해 살다가 그 자식이 성장해 내 곁을 떠나가면 그땐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그렇게 헌신적인 것이 요즘 아이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건가?
요즘 아이들은 우리의 어린 시절과는 너무나 다른 환경과 삶을 살고 있다. 자고나면 변하는 IT문화와 개인주의적 사고방식, 주위사람과 따뜻함을 전하는 신체접촉이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반금기시 되고 자식 개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기에,
상호작용에 대해 어려움이 있고 또 부모가 자식을 키워낸 헌신에 대해 당연한듯 받아들이거나 당당히 요구하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다. 물론 마음으로는 감사하고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효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면 오산이다. 그저 잘 자라준 것에 감사하고 때가 되면 자기 짝을 만나 알콩달콩 가정을 꾸려 잘 살아 주는 것이 최상의 보상인 것이다. 그런데 지인의 친구분과 같이 부모의 일방적인 자기 헌신의 경우, 과연 두 자식을 헌신으로 키워낸 심적 기대감과 보상에 대해 초연할 수 있을까?
인간은 누구에게나 베푼 후에 답례를 기대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크고 예민하게 작용한다. 그렇다면 그 엄마가 느끼는 허탈함과 자괴감은 과연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자식들이 과연 엄마의 그런 희생을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받아 들일 수 있을까?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내 삶을 잘 살아 주는 것이 자식에게도 본인 자신에게도 더 좋은 결과를 불러오지 않을까?
필자도 사춘기 이민 온 1.5세대이다. 이민 1세대인 우리 부모님이 한국에서 중산층의 삶을 져버리고 이곳 호주에 와서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지켜보았고 또 그걸 보면서 크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물론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이민을 결정해 주신 것에 감사하고 또 기회의 땅에 정착하여 우리의 미래에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신 것은 그 무엇으로도 다 갚을 수없는 헌신적인 사랑이라 믿고 또 감사한다. 허나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쳐야하는 것은 희생과 책임뿐만이 아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삶을 즐길 줄 아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가르침이다.
세상을 살면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내가 사랑하는 내 자신을 보살펴주는 모습을 통해 자녀들은 부모에 대한 존경심과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나를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아무런 인생목표가 없이 산다면 자식 또한 그렇게 자신을 소중히 다루는 법을 모른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자식이 자신을 포기한 채 자식만을 위해 살길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내 자식이 본인의 삶을 그렇게 살라고 가르치고 느끼게 하고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본인의 인생을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킨다. 자신의 롤모델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삶을 그대로 답습할 수 있기에 그런 것이다.
나의 지인은 본인이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예쁜 그릇에 담아 정갈한 식사를 한다. 하여 그의 남편분도 아내의 밥상을 차려줄땐 항상 같은 방식으로 준비해준다. 나의 가치는 남을 위해 희생을 하면 자연스레 배우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내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야지만 나의 가치는 존중받고 더 나아가 나의 자식도 그런 존중받는 인격체로 클 수 있는 것이다.
부모도 부모이기 전에 한명의 사람임을 잊지 말고, 본인의 삶과 자식의 삶을 부담과 희생만이 존재하는 삶으로 만들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부모가 행복해야 어린 자녀도 행복한 법이니까.
엘리자벳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