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의 이민 삶 나눔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왜 이걸 이해 못하는 거야? 벌써 몇 번째 설명하고 있잖아?”
“알았어 엄마. 다시 해볼게..
수학을 가르치면서 내가 어느새 내 어릴 적 우리 엄마의 모습처럼,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도 이해 안 가던 힘들어 하던 내 모습을 내 아이에게서 발견했다.. 나도 보통 아이였는데… 왜 날 닮은 내 아이에게 이리 소리를 지르고 있는 걸까?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난 내 아이에게 미안하고, 또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하던 내 자신에 대한 약속이 깨지는 걸 느끼면서 내가 싫어지는 것을 느낀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아이를 갖고, 도저히 한국에서는 사교육에 넘쳐나는 상황을 이길 수도 없고, 또 아무것도 안 시키다가 혹시나 내가 아이를 바보 만들고 있지 않는 건지 하는 혼란에 빠지기 싫어서 아이와 나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호주로 돌아왔다. 허나 지금 나의 모습은 내 안에서 누군가에게 마구 흔들리며 아이를 다그치는 보통 한국엄마가 돼있었다. 과연 내가 그리 심지가 굳지 않은 걸까? 아니면 정말 나는 나쁜 엄마인가?
나는 얼추 10년이 되는 기간 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성향이고, 어떤 장단점이 있고,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속된말로 연식이 좀 되어서야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가르치는 내 자신의 모습은 정말 실망 그 자체였다.
다른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화도 안 나고, 기분도 안상하고, 그냥 웃으면서, 재미나는 놀이를 추가해 가면서 이성적으로 대하면서, 어째서 내 아이에게만 이리 혹독할 수 있을까? 내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자식에게 제일 잘해주고 다독거려주고, 웃으면서, 교육을 놀이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라고 머리에선 지시가 내려오지만, 가슴에 도달하면 이내 울긋불긋 색을 바꾸는 내 자신. 과연 내 안에 누가 들어와 나를 흔드는 건지… 뽑아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예전에 친구가 우스개 소리로, 자식을 제일 잘 키우는 방법은 내 상사의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한 기억이 난다. 상사의 자녀이기에 화를 낼 수도 없고, 될 수 있는 대로 존중하고, 이해해주고, 또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탈 필요 없이 그렇게 성심성의 것 잘 대해주면 정말 최고의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 했는데, 난 내 자식을 너무 내 소유격 사유재산으로 망각하고 이렇게 대하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남에겐 가능한 일이 내 자식, 내 식구에겐 가능하지 않은 건지…
아마도 내 자식은, 남보다 더 잘하길 바라고, 힘든 일도 덜 겪길 바라고, 내 분신이니 내가 아는 것을 바로 이해해주길 기대하고, 나는 못했던 공부를 잘해주기를 바라는 심정이 아닌가 싶다. 누가 내 아이를 울리거나, 속상하게 대하는 것에 내가 더 마음 상해하고, 나보다 더 좋은 것 입히고, 먹이고, 좋은 곳 데려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의 부작용이리라. 자꾸만 나를 돌아보고, 고치고, 소유욕을 내려놓고, 그저 아이가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 그리고 원하는 것을 지원해주고, 응원해주고,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것을 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켜주어야 아이와 가장 이상적인 관계가 될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내가 상담을 해주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듯, 내 아이에게도 한없이 넓은 이해심으로 바라봐주리라.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 강한 엄마로써 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 되어주리라.
요즘 호주 사는 한국엄마들의 고민 중 하나가, 한국에선 중고등학교에 가야 학원 다니며 힘들게 공부하는데, 호주에선 셀렉티브 고등학교를 보내기 위해 이르면 킨디부터, 적어도 3학년부터 학원에 보내고 아이를 닦달하는 상황이 과연 한국보다 나은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정말 답이 없는 걸까?
나는 호주까지 와서 그렇게 아이를 혹사시키지 말고, 그저 아이가 원하는 것을 찾아주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물론 나도 수학, 정확히 말하면 산수를 가르치면서 화를 내기도 하지만, 나는 절대 내 아이를 셀렉티브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저 숙제를 도와주다가, 매번 같은 문제인데도 헤매는 아이를 보고 잠시 열을 내는 것이지, 선행학습을 한다거나, 내가 강요로 아이가 원치 않는 교육을 시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딸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으며, 아이가 원할 때에만 추가적인 도움을 얻지, 지금껏 내가 시켜서 하는 것은 한가지도 없다. 그것만은 중심을 잡고 살고 있다.
2000년 초반, 한국에선 ‘아이러브 스쿨’ 이란 웹사이트가 대박이 났었다. 졸업 후 연락이 끊긴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돼서 다들 친구들과 재회하는 사회적 센세이션이 일어났던 것이었다. 덕분에 나도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또 만나고 싶지 않은 친구들을 만나는 부작용도 경험했었다. 그때 느꼈던 것은, 전교 1등을 하던 아이들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 넉살 좋고, 친구 많고, 자기 개성이 강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알고 그 분야에 진출한 친구들이 훨씬 잘됐다는 것이었다. 이건 비단 나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부분이었다. 더 이상 공부만 잘해서 인생역전이 일어나는 세상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성교육보다 인성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증거라고나 할까?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다시 한번 나에게 다짐한다. 아이를 호주에서 교육 시키기 위해 내가 원했던 것을 다시 기억하라고. 마음껏 뛰어 놀고, 하고싶은 것 잘하는 것을 하게하고, 내가 제지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응원과 사랑을 보여주기로…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이제 나가서 다시 들어오지 마시게. 나는 중심잡고 흔들림 없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노력할 터이니, 함부로 나에게 들어와 나를 흔들지 말고 떠나가주오. 그대와는 다시 인연 맺고 싶지 않으니…
엘리자벳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