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의 이민 삶 나눔
뭐가 그리 궁금해?
“저 사람은 왜 저런 촌스러운 옷을 입고 있대? 저 집 아이가 이번에 상 탓대요, 저 집은 셀렉티브 보낼려고 아이를 들들 볶아, 저집 아빠는 술을 너무 마시더라..”
사람 둘셋만 모이면 뭐 그렇게 할 남의 이야기가 많은 건지 모르겟다. 요즘 무엇이 어떻다더라, 누구 집이 어떻더라, 어느 집 애가 뭘 했다더라, 뭘해서 돈이 많다더라, 어느집 부부 사이가 어떻다더라… 남의 이야기로 주변 이야기로 수다가 끝이 없어보인다. 그러다가 결국엔 말을 옮기네 헐뜯네 하며 다투고 사이가 안좋아지고.. 셋만 모이면 편을 가르고 싸움을 한다던 옛말이 하나도 그른게 없는 것 같다. 호주 같이 한인사회가 좁은 나라에서 하나건너 하나면 다 아는 사람들끼리 왜 그렇게 남의 집 숟가락 숫자에 관심이 많고, 남의 집 자식 잘 되고 안되는 것에 관심많고, 미주알 고주알 남의 인생사에 관심들이 많은 건지 모르겠다.
친한 사람이라 믿고 속이야기를 했는데 뒤돌아서서 다른사람에게 그 얘기를 전하고, 또 새로운 사람이 오게 되면 그사람과 다른 사람에 대해 얘기를 하고, 사이가 소원해진 사람에 대해 얘기를 하고,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인생에 관심이 지대한걸까? 왜 자꾸 우리는 아무런 득도 없는 남의 이야기를 자주 하면서 살고 있는 걸까?
물론 나도 인간이기에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의 일에 일부러 알려하거나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가끔 과하다 싶으면 그만하자고 제안한다. 그저 들리니 듣는것뿐이고, 들리는 정도만 듣고 흘리지 누가 금송아지를 가지고 있던 그 자식이 상장을 받아오건말건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하면서 스친다. 그런 잡담으로 인해 내 끼니가 풍성해지는 것도 아니요,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한 사람은 분명 다른곳에서도 내 이야기를 할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내가 열심히 내 나름의 기준으로 노력을 하며 사는 것에 더 관심이 있고, 다른 사람 입에 오르내리기 원치않는다. 한마디로 뜨신밥 먹고 남의 이야기로 에너지 낭비하기싫다.
우린 왜 남의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하는 걸까? 한국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는 교육을 예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창시절 학교에는 소지품검사라는 것이 있었다. 아니 내가 가방에 무엇을 들고 다니던 다른 사람이 무슨 권리로 가방을 뒤져 검사를 하고, 도시락 검사를 하고, 건강이라는 목적으로 내 배설물까지 검사를 하고…. 왜 이렇게 남의 일에 관심이 많고 무슨 생각으로 감시 체제를 교육의 일부로 여겨 왔던 것일까? 심지어 우리 손으로 뽑은 반장이나 부반장이 뽑아준 친구들을 감시하고 관리하고 선생님께 보고하는 이런 아이러니한 교육이 남의 이야기를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원인이 된것은 아닐까?
감시체제에서 사는 사람들은 서로를 헐뜯고 믿지못하는 성향이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친구도 적이 될 수 있다는 잠재의식속에서 또 그걸 당연히 받아들이면서, 우리 마음속에는 나에게 가까이 있는 누구나 나를 감시하고 헐뜯고 곤경에 빠트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은연중에 남의 삶을 판단하고 이야기 하는것이 괜찮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교육은 우리가 원하는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교육을 하는 주입식 교육, 이를테면 수동적인 교육방식이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터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여 아이에게 장난감을 골라서 놀 수 있는 권리 또는 자유를 중요시하고 있다. 원하는 것을 고를 자유가 주어졌을 때 가장 집중할 수 있으며, 놀이를 통하여 얻는 배움이 가장 좋은 결과를 나타낸다는 것을 여러 가지의 연구 및 삶의 결과를 통해 얻은 바, 이를 0세부터 5세 아이들의 교육에 가장 중요한 바탕으로 삼고 있다. 선택은 주어지지 않고 감시와 제재만이 존재하던 내가 한국에서 배운 교육방식과는 너무나도 다른 것이다.
나는 호주에서 사는 지금도 21세기 우리 아이들에게 19세기에 통하던 교육을 시키는 많은 부모들을 주위에서 보곤한다. 그럴때마다 그런 부모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좋은 부모가 되려면 나부터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지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내가 지금 가르치는 학생들의 대부분도 자신이 아이를 키웠을 때 몰랐던 것들을 이제서야 알게 됐다면서 내가 왜 진작 이 공부를 하지 못했을까 하는 말을 내게 하곤 한다. 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그리고 동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 시키기 위해서, 그것은 어찌보면 현재 이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 모두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기어다니지 못한 아이는 근육발달이 제대로 되지않아 걷기를 시작하면서 균형을 잃고 넘어질 수 있듯이,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되어 사회의 일원이 되었을때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지, 그리고 혹여나 그릇된 판단으로 이어졌을경우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과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된다.
나는 한국과 국민에 대한 애정을 가진 한국계 호주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국이나 호주 양국의 아이들 교육에, 국가의 미래에 지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있다. 그러기에 호주인이든 한국인이든 남의 인생에 관심둘 여유가 있다면, 그 시간을 내 인생에 상관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며 낭비하느라 부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지 말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드는 좋은말 한마디, 또는 다른 사람의 배울만한 장점을 찾아보는 긍정적인 버릇을 키우는게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는 내 삶의 질을 높이는 활력소가 될 수 있으며, 이를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반드시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확신한다.
남 이야기 하는것이 재미있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수는 있겠지만, 나와 남 이야기에 열을 올렸던 그사람이, 내가 없는 다른곳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로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 상상만으로도 달갑지 않다면, 남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버릇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 그 시간에 머리가 안돌아서 영어가 안된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없애고자 영어로 된 어린이 책 한줄이라도 읽는 노력을 하는건 어떨까? 부모의 노력하는 모습이 부모 자신에게도 또 그걸 보는 아이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이리라!
부모가 삶의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들도 분명 조금이라도 더 자기 삶의 질을 높이는 노력을 할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니까.
나의 소중한 아이들이 자신의 귀한 삶을 다른사람 이야기로 허비하는 것을 보고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노력하자. 나이에 상관없이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는 멋진 모습을 상상하는것 만으로도 나는 여러분을 응원한다. “님 좀 짱인듯!!!!”
엘리자벳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