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늘
1642년 12월 18일, 아벌 타스만 (아벨 태즈먼)이 서양인으로서 처음으로 뉴질랜드에 상륙
1642년 12월 18일,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 (아벨 태즈먼)이 유럽인으로서 처음으로 뉴질랜드를 발견했다.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당시, 원주민들은 그들을 적대적으로 대했고, 이 결과 선원 4명이 죽고 마오리족 1명이 산탄총에 맞았다. 유럽인들은 이후 뉴질랜드를 방문하지 않았고, 1769년이 되어서야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이 뉴질랜드의 해안선 대부분을 지도로 그렸다.

쿡 이후 수많은 유럽인들과 북아메리카 사람들이 포경선, 물개잡이 배, 그리고 무역선을 이끌고 뉴질랜드를 방문했다.
그들은 유럽산 음식과 금속 도구, 무기와 기타 제품들을 목제, 마오리 음식, 공예품, 물 등으로 교환했다.
감자와 머스킷의 도입은 마오리족의 농업과 전쟁을 뒤바꿨다. 감자는 믿을만한 식량 보충원으로 제공되어 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했다.
이 결과 벌어진 머스킷 전쟁에서 1801년부터 1840년까지 600회 이상의 전투가 발생했고, 3만 명에서 4만 명 사이의 마오리족이 사망했다.
19세기 초, 기독교 선교사들이 뉴질랜드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마오리 인구가 기독교로 개종했다.
한편, 마오리족의 인구는 19세기 동안 약 40% 감소했는데, 질병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 (Abel Janszoon Tasman)의 생애
1603년 네덜란드 흐로닝언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163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입사해 근무 도중 1639년 ~ 1641년 필리핀, 타이완, 일본 연안의 여러 섬들을 발견하고 탐험하였다.
1642년 ~ 1643년의 항해에서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태즈메이니아 섬과 뉴질랜드, 뉴기니 섬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1644년 ~ 1648년에는 다시 대륙 연안을 탐험했고 통가와 피지, 비스마르크 섬들을 이 방면에 관한 많은 지리학 지식을 넓혔다. 그러나 당시 향료 무역에만 열중하던 네덜란드 당국자들의 무관심으로 그가 발견한 지역은 방치되었다.
1659년 10월 22일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에서 병사했다.

○ 뉴질랜드의 어원
아벌 타스만 (아벨 태즈먼)은 1642년 뉴질랜드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네덜란드 의회의 스타텐헤네랄을 기려 “스타텐란트”라고 명명했다. 타스만은 “이 땅이 스타텐란트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라고 적었다. 여기서 말하는 스타텐란트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남쪽 끝에 위치한 같은 육지로, 야코프 러 메러가 1616년 발견한 땅이었다.
1645년, 네덜란드 지도학자들이 네덜란드의 주인 제일란트주의 이름을 따 “노바 제일란디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이 노바 제일란디아를 영어화하면서 “뉴질랜드”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길고 하얀 구름의 땅”으로 자주 번역되는 “아오테아로아”는 뉴질랜드를 가리키는 현대 마오리어 이름이다. 이 명칭이 유럽인이 정착하기 이전의 뉴질랜드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인지, 아니면 북섬만 가리키는 단어인지는 불분명하다.
마오리인들은 2개의 섬을 가리키는 여러 개의 전통적인 명칭이 있었다. 북섬의 경우에는 마우이의 물고기라는 뜻을 가진 테이카아마우이로 불렀고, 남섬의 경우에는 푸나무의 물이라는 뜻인 테와이푸나무, 또는 아오라키의 카누라는 뜻인 테와카오아오라키라고 불렀다. 초기 유럽 지도에서는 북섬을 노스, 남섬을 미들, 그리고 스튜어트섬을 사우스라고 표기했다.
1830년 지도 제작자들은 뉴질랜드의 가장 큰 2개의 섬을 나타내기 위해 노스와 사우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1907년 이것은 표준으로 받아들여졌다.
2009년 뉴질랜드 지리국은 북섬과 남섬이라는 이름이 공식화되지 않았음을 발견했고, 2013년 표기를 공식화했다.
이후 북섬은 북섬 또는 테이카아마우이로 표기하고, 남섬은 남섬 또는 테와이푸나무로 표기했다. 각각의 섬은 영어나 마오리어 중 하나를 선택하여 쓰거나 둘을 병기해도 된다.

○ 뉴질랜드 개요
뉴질랜드 (New Zealand) 또는 아오테아로아 (Aotearoa)는 태평양 남서부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주권국이다.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 그리고 600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뉴질랜드의 총 육지면적 268,000제곱킬로미터이다.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태즈먼해를 사이에 두고 2,000km 정도 떨어져 있고 뉴칼레도니아, 피지, 통가와 같은 태평양 도서와는 남쪽으로 1,000km 이상 떨어져 있다.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뉴질랜드는 인간이 정착한 마지막 땅이 되었다.
또한 오랜 고립 기간 동안, 뉴질랜드에서는 독특한 생물적 다양성이 발전했다. 뉴질랜드의 다양한 지형과 높은 봉우리들은 화산 폭발과 육지의 융기로 인해 형성된 경우가 많다. 뉴질랜드의 수도는 웰링턴이고,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오클랜드이다.
1250년과 1300년 사이에 뉴질랜드의 섬에 폴리네시아인이 정착하였고, 독특한 마오리 문화를 발전시켰다.
1642년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 유럽인으로서 처음으로 뉴질랜드를 발견했다. 1840년 , 영국의 대표와 마오리족의 수장들이 와이탕이 조약을 체결하였고, 뉴질랜드의 주권이 영국에 있음을 선언했다.
1841년 뉴질랜드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907년에는 자치령이 되었으며, 1947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지만, 영국의 군주가 국가원수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뉴질랜드의 인구는 총 490만 명으로, 이 중 대다수가 유럽계이다.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소수민족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시아계와 태평양 섬사람들이 그 다음으로 많다.
뉴질랜드의 문화는 마오리 문화와 초기 영국 정착인들의 문화에서 기여된 것이 많지만, 뉴질랜드로의 이주가 증가함에 따라, 문화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뉴질랜드의 공식언어는 영어와 마오리어, 그리고 뉴질랜드 수화인데 영어가 가장 많이 쓰인다.
뉴질랜드는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또한 삶의 질, 보건, 교육, 시민자유의 보호, 경제적 자유와 같은 국가 성과에 대한 국제적 비교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뉴질랜드는 1980년대 주요 경제적 변화를 겪었고, 경제 역시 보호주의에서 자유 무역으로 선회했다. 뉴질랜드의 경제에서 서비스업이 다수를 차지하며, 산업과 농업이 그 다음으로 많다. 관광은 뉴질랜드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뉴질랜드 의회는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뉴질랜드의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행정기관의 역할을 한다. 현재(2020년) 뉴질랜드의 총리는 저신다 아던이다.
뉴질랜드의 행정 구역은 11개이며 지방자치를 목적으로 한 67개의 지역 당국이 있다. 뉴질랜드 왕국은 뉴질랜드의 속령인 토켈라우, 뉴질랜드와 자유연합 관계인 니우에와 쿡 제도, 그리고 뉴질랜드가 남극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로스 속령이 포함된다.
뉴질랜드는 유엔, 영국 연방, ANZUS, 경제협력개발기구, ASEAN 플러스 6,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태평양 공동체, 태평양 제도 포럼의 회원국이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