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 터키 학술탐사 ②
이스탄불 (콘스탄티노플, 비잔티움)
Istanbul – Constantinople, Byzantion
역사적으로 이곳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은 비자스(Byzas)라는 지도자와 그의 추종자들이 주전 667년 메가라에서 현재 세라글리오 포인트(Seraglio Point)라 불리는 엄지 모양의 땅을 점령하여 비잔티움(Byzantion)으로 불렸다. 후에 비잔틴(Byzantine)의 주민들은 이곳 이름을 주후 330년년 로마의 황제 콘스탄틴(Constantinus, 272-337년)의 이름을 따라 도시의 이름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라 바꾸었다.
십자군이 점령한 1204-1261년을 제외하고 1100년 동안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고 서방 문명의 본보기였다. 모슬렘 터키인 슐탄 메흐메트 2세(II. Mehmet, 1432년 3월 30일 – 1481년 5월 3일)가 1453년 이 도시를 점령하면서 오토만(Ottoman)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수도를 앙카라(Ankara)로 옮기며 수도의 역할은 끝났지만 그 영향력은 여전하다.
주민들은 이교도, 혼합종교 등으로 복잡한 성향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탄불은 동서양을 이어주는 다리역할 뿐만 아니라, 교량역할을 해오고 있다. 고대도시는 5세기의 성벽으로 둘러져 있으나 현대도시는 아시아 쪽까지 포함하는 넓은 지역을 포함한다.
먼저 이스탄불(Istanbul)은 비잔틴(Byzantine)시대와 오토만(Ottoman) 터키 시대를 거치면서 지리적, 역사적으로 4개의 지역으로 구분한다.
첫째, 성벽으로 둘러있는 고대도시.
둘째, 황금나팔의 북쪽 보스포러스(Bosphorus)의 유럽인 쪽에 놓은 “신도시”
셋째, 마르마라(Marmara) 바다와 보스포러스(Bosphorus)를 따라 북쪽으로 펼쳐진 칼드큐이(Kad kuy)를 포함한 아시아쪽 이스탄불(Istanbul).
넷째, 마르마라(Marmara) 바다에 있는 공주 섬이다.
또 하나의 분류법은 7개의 언덕으로 나누기도 한다.
첫째, 소피아 성당(위 사진, Hagia Sophia)과 톱카프 궁전(Topkapı Sarayı), 블루 모스크(Blue Mosque).
둘째, 덮혀진 바잘(Covered Bazar) 불탄 기둑과 투루오스카니에 카미이(Nuruosmaniye Camii)가.
셋째, 이스탄불 대학(Istanbul Uni)과 슐레이만 대제(Süleyman the Magnificent)의 사원 부속 건물들.
넷째, 슐탄 메흐메 2세(II. Mehmet)의 신앙 사원.
다섯째, 세림 2세(II. Selim)의 사원.
여섯째, 도시 성벽의 에딜레 문.
일곱째, 한 때 주방 정원이었던 장소.
좁은 보스포러스(Bosphorus)의 양쪽을 오가는 페리들은 동서양을 오가는 배들로 세계에서 가장 바쁜 부두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마르마라(Marmara) 바다의 공주 섬과 이스탄불(Istanbul) 북쪽의 흑해 도시들은 우명한 해수욕장이 있다. 이스탄불은 아주 독특하다. 다른 어느 곳도 역사 속에서 그런 굉장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없는 지정학적 위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 거대한 대륙이 만나는 중요한 전략적 위치 때문에 이스탄불(Istanbul)은 군사, 종교, 상업, 문화적으로 세계 역사의 초점이 되어 왔다.
기원전 600년 명성을 날리던 메가리아인(Megarian)인 바자스(Byzas)에 의해 창건되어, 그의 이름을 딴 비잔티움(Byzantion)은 보스퍼러스(Bosphorus) 해협을 관장하는 훌륭한 자연 항이다.
서기 330년에 로마의 유명한 콘스탄틴(Constantinus) 대제가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Byzantion)으로 옮기고 ‘콘스탄틴의 도시’라는 뜻에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개명했다. 콘스탄티 대제는 이곳에서 편안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로마처럼 이 도시도 7개의 언덕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4년 후 그는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하고 그 자신이 서기 337년에 세례를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콘스탄티노플은 융성했고 서기 395년의 로마제국의 분열로 인해 동로마 또는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의 수도가 되었다.
13세기 십자군 전쟁 무렵인 1240년 경 비잔틴(Byzantine)은 많은 보물을 십자군들에게 약탈당했다. 또한 1453년에는 자랑거리이던 난공불락의 성벽들이 슐탄 메멧(Sultan Mehmet) 2세의 포위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서구의 기독교가 흔들릴 고대 제국의 수도 시민들은 콘스탄틴의 멸망을 환영했다.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의 최후 영도자였던 노타리스 대공은 가톨릭과 그리스정교 간의 수세기에 걸친 반목을 언급하면서 ‘누가 추기경의 모자보다 터키 터반을 더 좋아하지 않겠는가’라고 공공연히 기뻐할 정도였다.
이 도시는 세워진 후 1000년이 지났을 때 오토만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이 되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웅장한 성소피아 성당은 모스크로 변모되었다. 알려진 대로 정복자 메멧(Mehmet)은 귀중한 모자이크 작품을 파괴하기 보다는 그 위에 석회를 덧 바름으로써 그대로 보존시켰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메멧(Mehmet)은 부의 극치를 이룬 토카프 궁전을 건립하였다. 1465년에 완공된 이 보물로 치장된 복합 구조물에는 하렘까지 있어 약 400년간 오토만 제국의 중심이 되었다. 또하나의 경외가믈 일으키는 건축물로는 블루모스크라 불리는 사원이다. 톱카프 궁 근처에 슐탄 메멧(Sultan Mehmet) 1세에 의해 1609년부터 건립되기 시작한 이 모스크는 6개의 웅장한 철탑을 가지고 있으며, 기둥과 돔 벽에 명암이 있는 99가지의 푸른 타일을 사용하므로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국적인 것으로 가득한 이스탄불에는 대규모 바자르, 향신료 시장, 즐비한 상점들, 2층으로 된 갈라타 다리, 흰 대리석으로 장엄하게 건립한 중세의 탑, 은빛 넘실거리는 보스포러스(Bosphorus) 해협을 높다랗게 가로지른 현수교 등등.
도시 구석구석에는 화려함과 웅장함도 있었지만, 역사의 현장을 직접 확인하면서 살아 꿈틀거리는 역사의 숨결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이 곳을 통해 이루어졌던 복음의 역사 속에 나타날 하나님의 손길을 마음껏 기대하며, 이제 다음시간부터 바울의 선교여정과 그 속에 남겨진 복음의 흔적들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윤석영 목사(히스교회 시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