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영 목사의 그리스 & 터키 학술탐사 ⑬
에베소(Ephesus)교회, 히오스(기오스섬), 그리스(Greece)
에베소(Ephesus)교회
요한 계시록에 첫사랑을 잃은 교회로 묘사되고 있는 에베소(Ephesus) 교회는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회복하라는 주님의 책망과 권고를 듣게 되는 교회이다.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소아시아 7대 교회를 볼 때 1세기 말엽 소아시아 지역에는 어느 정도 복음이 편만하게 전해진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복음전파는 사도 바울과 같은 복음 전도자가 있 때문에 가능하였으리라고 생각이 된다. 사도 바울은 3차에 걸친 복음전도 여행을 통해서 소아시아에 복음을 전했으며 특별히 이곳 에베소(Ephesus) 지역에서 3차 여행 때 2년 이상 머물기도 하였다.
에베소(Ephesus) 교회는 초대교회 쟁쟁한 믿음의 선진들이 많이 관계된 교회이다. 사도 요한, 사도바울, 디모데, 브리스 길라, 아굴라 등 그리고 특별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이곳 에베소에 와서 살았다고 전승되어 지는 곳이기도 한다.
그리고 교회사적으로는 주후 431년에 에베소(Ephesus) 종교회의를 통해 마리아의 신학적 위치에 대한 결정을 내렸던 도시이다. 에베소(Ephesus) 교회에 보내는 말씀 “내가 네 행위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2-3)
히오스(Chios, 기오섬)
그리스어 히오스섬(Chios)은 그리스의 섬 가운데 다섯 번째로 큰 섬으로 에게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소아시아 해안과는 7km 떨어져 있다. 이 섬은 강력한 상인 선적 공동체와 고유의 유향수지 및 중세 마을들로 유명하다. 이곳에 있는 17세기의 수도원인 네아 모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히오스섬(Chios)의 주요 도시이자 행정 중심지의 이름도 ‘히오스’(Chios)인데, 지역 주민들은 이 도시를 ‘호라’(문자 자체의 뜻은 땅이나 시골을 뜻하는데, 보통 그리스의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나 중심 도시에 붙는 이름)라고 부른다. 행정구역상 히오스섬(Chios)은 북부 에게주의 개별 현을 이룬다.
고대의 이 섬은 ‘오피우사’(뱀이 있는) 또는 ‘피튀우사’(소나무가 있는)라고 불렀으며, 수많은 해외 강국들의 지배를 받았던 중세 시대에는 ‘시오’(제노바 방언), ‘키오(이탈리아어)’, ‘사키즈’(오스만 투르크어)로 불렸다. 중심 도시는 ‘성’을 뜻하는 ‘카스트로’(Castro) 또는 ‘카스트론’(Kastron)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그리스(Greece)
그리스(엘라다)는 남유럽 발칸 반도 남쪽 끝에 있는 나라이다. 정식 명칭은 그리스 공화국이다. 음차 표기를 따라 희랍이라고도 한다. 수도는 아테네이며, 주요 도시로는 데살로니가, 파드라, 이라클리오, 라리사, 볼로스, 요안니라, 카발라, 로도스, 세레스가 있다. 남유럽의 발칸 반도에 위치한 국가로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공화국, 불가리아와 북쪽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동쪽 끝에는 터키와 국경을 접한다. 그리스(Greece) 본토의 동쪽과 남쪽으로는 지중해의 일부인 에게 해, 서쪽은 이오니아 해가 위치하며 1,400여 개에 달하는 섬과 바위가 흩어져 있다. 대표적으로 크레타, 로도스섬, 산토리니섬이 위치한 키클라데스 제도 등이 있으며 해안선 길이는 세계에서 11번째로 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3년 그리스 군사 정권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연평균 7%의 고속성장을 이루어 그리스(Greece) 경제 기적이라 불린다. 그 뒤 성장세는 꺾였으나 경제 성장률은 남유럽에서 높은 편에 속했으며, 1인당 국민 총생산도 1949년에는 프랑스의 40% 밖에 되지 않았으나 2008년에는 98%에 달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실제 국민의 소득은 크게 진보된 점이 없어 현재 최저 임금은 시간당 3.5 유로로 프랑스의 8.9 유로의 절반도 되지 않고 평균 소득고 절반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다. 현대 그리스(Greece)는 고대 그리스(Ancient Greece) 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비잔티움 제국 시대 그리스인들의 후손이다. 근대까지는 그리스인 대신 로마인이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현재에도 그리스에서 로미인들이라 함은 자기 자신들을 가리킨다. 민주주의와 서양 철학, 올림픽, 서양 문학, 역사학, 정치학, 수많은 과학적•수학적 원리, 희극이나 비극 같은 서양 희곡 등 서양 문명의 발상지이다.
-고대 그리스(Ancient Greece)
고대 그리스(Ancient Greece)의 문명은 에게 문명, 크레타 문명과 그 뒤를 이은 미케네 문명에서 시작되었다. 도리아 인의 침입으로 인한 암흑 시대를 거친 이후 아테나이, 스파르타 등 일종의 ‘도시국가’인 폴리스가 형성되었다. 대표적인 폴리스 중 하나인 아테네는 정치적으로는 민주 정치를 발전시켰으며 경제적으로는 상업과 해상무역에 주력했다. 또 다른 대표적인 폴리스 스파르타는 군국주의적 정치 체제를 취했으며 상업보다는 농업에 치중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페르시아 전쟁터였다. 기원전 5세기 초 오리엔트를 통일한 페르시아의 세 차례 공격을 모두 막아낸 뒤 전쟁 승리의 주역인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써 번영을 누렸다. 이를 마땅치 않게 여겼던 스파르타는 역시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은 뒤 아테네와 대립했다. 마침내 기원전 431년 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펠로폰내소스 전쟁이 발발하여 기원전 404년까지 약 30여 년간 이어졌다. 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고 스파르타는 그리스 지역의 패권을 차지했지만 오랜 전쟁으로 인해 쇠약해진 후였다. 스파르타는 결국 테바이에 패권을 내주었고 이후 오랜 전쟁으로 쇠퇴하게 된 그리스는 북방의 마케도니아에게 정복당하였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 폴리스들을 완전히 진압한 뒤 페르시아 원정에 착수하여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인더스강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 제국은 알렉산드리아가 33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 뒤 분열되고 말았다. 이후 휘하 장군들이 세 왕조들은 모두가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다.
-중세 그리스(Middle Age Greece)
그 후 비잔티움 제국이 그리스를 통치하였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하여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다. 오스만의 지배 직전에 그리스의 지식인들이 서유럽으로 이주하면서 고대 그리스의 지적 유산을 전해주면서 서유럽 르네상스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서 이슬람교 개종은 원칙적으로 자유 하였으며, 개종을 거부한 그리스도교도들은 비잔티움 시대의 농민이나 봉건제도하의 농노보다 조금 나은 생활을 감수해야 하였다. 그렇지만 오스만 제국의 밀레트 제도 덕분에 그리스 정교를 믿는 본토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타지 사람과 섞이지 않고 결속을 유지하며 이후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을 창출할 수 있었다. 1453년부터 독립할 때까지 그리스는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근대 그리스(Modern Greece)
1821년부터 1829년까지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운 그리스 독립 전쟁의 결과, 런던 의정서에 의해 신생 그리스가 독립을 인정받았다. 1827년에 이오니아 제도의 그리스 귀족 요안니스카포디스트리아스가 새 공화국의 통치자로 선축하였으나 그가 암살당하자, 강대국들은 1832년에 왕정을 세우고 바이에른 왕국의 오톤을 국왕으로 옹립하였다. 1843년에 입헌군주제를 요구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나자 오톤은 대의제 의를 승인했으나, 영국 등 열강에 기댄 나약 권위주의 통치자로서 결국 1862년 10월에 폐위되었다.(다음호에 계속)

윤석영 목사(히스교회 시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