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영 목사의 그리스 & 터키 학술탐사 ⑮
피레우스(Piraeus) 항구, 아덴(Athens, 아테네), 아레오바고(Areopagus), 아크로폴리스(Acropolis)의 파르테논(Parthenon) 신전
터키의 일정을 은혜가운데 강행군 한 후, 그리스를 향했다. 아테네(Athens) 중심부에서 남서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피레우스 시는 그리스에서 세 번째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사로니코스 만에 자리 잡고 있는 피레우스는 유럽에서 승객이 가장 많은 항구이다.
피레우스(Piraeus) 항구, 아덴(Athens, 아테네)
피레우스(Piraeus)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에서 지리적 이점 덕분에 중요한 역을 맡았다. 도시로 발전하면서 항구도 함께 발전하였다. 기원전 5세기경에 아테네(Athens)의 항구 역할을 맡으면서 크게 발전하였으며, 기원후 4세기 이후부터 점차 쇠퇴하였다가, 19세기 들어서면서 그리스의 수도로 아테네(Athens)가 정해지면서 성장하였다. 현대의 피레우스(Piraeus)는 번잡한 대도시로 수도 아테네 도시권의 일부분을 이루어 그리스도에서 가장 큰 항구이며, 거대한 해운 및 상공업 중심지이다. 아덴(Athens, 아테네)은 현재 희랍의 수도인 아테네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산실로 잘 알려져 있다. 아덴(Athens, 아테네)은 그의 역사성과 문화에 끼친 영향 때문에, 구리고 현재 올림픽의 발상지였으며 고대 앗타카 지역의중요한 성읍이었다. 뿐만 아니라, 고대종교에 있어서도 중요한 중심지였다. 특히 사도 바울이 방문했던 곳이기도 하다(행 17:17-18). 바울은 그 때 아덴(Athens, 아테네)의 한 언덕에 올라가 학자들과 많은 시민들 앞에서 설교했으며 많은 개종자들을 얻기도 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디오누시였는데 그는 아덴(Athens, 아테네) 최초의 감독이 되었으며 동시에 복음 전파에 혼신의 힘을 다 쏟아 일하다가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행 17:15-34)
아레오바고(Areopagus)
아레오바고(Areopagus) 언덕 위의 파르테논 신전은 아덴의 신을 예배했던 곳이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447-432년에 걸쳐 세워졌는데 전형적인 도리아식 건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파르테논 신전은 터키의 공격으로 파괴되었으며 지금은 기둥만 남아있을 뿐이다. 아레오바고(Areopagus)는 아크로폴리스(시장)의 서쪽에 위치한 이 언덕 위에서는 아덴의 원로원과 중요한 재판들이 열리기도 하였다. 또한 사도 바울은 일찍이 이곳에서 아덴의 철학자들과 변론을 하면서 우상이 온 성에 가득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동시에 종교성이 온 성읍에 풍부하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부호라에 이르는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였다고 한다.
BC 447-438 페리클레스에 의해 조각가 피아디아스가 감독하고 건축가 익티노스와 칼리크라테스가 완성한 건축물로 현재 유네스코 고적 1호 기둥이 46개이며 도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세계적인 건물이다. 아드리아누스 문 바로 뒤에 있는 제유스 신전 터, 예전의 신전은 총 104개나 되는 코린토식 기둥이 실로 아름다우며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그 기둥이 15개만 남아있다. 이 신전은 2세기 때 로마 황제 아드리아누스 시대에 완성을 보았다. 그러나 사실 이 신전건립의 역사는 훨씬 오래 되어서 기원전 515년에 아테네의 참주 ‘페시트라토스’가 첫 공사를 시작했으나 그의 실각과 동시에 공사가 중단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기원전 2세기경에 다시 공사가 재개 되었는데 그때도 역시 공사추진자가 사망함으로 신전 건립이 또 한 번 좌절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아레오바고(Areopagus) 언덕 남쪽에는 디오니소스 극장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일년 내내 계속하여 음악과 연극 등 훌륭한 공연과 연주가 펼쳐졌다고 한다. 아덴의 역사는 기원전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덴도 다른 로마제국의 여러 나라들처럼 바비리안 족속의 잦은 침입으로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49년에 있었던 바울의 아덴방문은 6세기까지 줄기차게 계속된 많은 철학자와 철학학파 그리고 그들 학교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아덴에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큰 전기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아크로폴리스(Acropolis)의 파르테논(Parthenon) 신전
아테네 중심인 신타그마 광장 뒷편에 위치한 근대 올림픽 경기장 플라카에서 좀 떨어진 리오포로스 올가스 거리에서 바실리스 콘스탄티누 거리로 빠지는 막다른 곳에 있다. 1896년에 여기서 제 1회 근대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기원전 331년에 판 아테네 대축제 경기장으로 지어진 것이 시작이다. 그 무렵은 객석이라는 것은 없고 구경꾼은 제방의 경사면에 서 있었다고 한다. 로마시대의 대부호 “이로테스 아티쿠스”가 대리석으로 만든 객석을 기증했으나 지금은 그 자취가 남아 있지 않다. 현재의 경기장은 제 1회 근대 올림픽이 열리기 얼마 전에 알렉산드리아의 부호 “아베로프”의 후원을 힘입어 고대 경기장에 가까운 형태로 복원된 것이다. 스타디움 앞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좌석은 대리석으로 50,000명이 들어갈 수 있다. 독특한 것은 트랙이 요즈음 것들과 달리 말굽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테네 시내에서 가장 먼저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신 중의 신 ‘제우스’신전이다. 시내 중심인 플래카 광장 가까운 곳에 길이 110m, 폭 44m의 거대한 신전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엔 기둥이 104개나 될만큼 아주 거대한 신전이었지만 지금은 어두운 전쟁역사의 흔적으로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쓸쓸히 아테네를 지키고 있다.
‘높다’는 뜻의 아크로와 ‘도시’라는 의미의 폴리스가 합쳐져 ‘높은 곳에 있는 도시’라는 뜻의 아크로폴리스(Acropolis)는 기원전 6세기쯤에 건설되었다. 아크로폴리스(Acropolis) 입구에는 기원전 437-432년 사이에 지어진 ‘프로필라이아(지븡이 덮힌 입구로서 중앙 누각은 도리아식, 좌우 날개는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만들어진 건물)가 있는데 이곳에 들어서면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프로필라이아를 지남과 동시에 눈앞에는 페리클레스가 여신 아테나를 위해 만들었다는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이 너무나 장엄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과거 그리스는 로마와 터키의 지배를 받으며 많은 시련을 겪었던 나라다. 이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은 페르시아 전쟁으로 파괴된 지 50년 만에 새롭게 건축된 건물로 지난 2천년의 세월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역사 속의 삶을 늠름하게 지탱하고 있다. 파르테논(Parthenon) 신전 옆으로 전쟁과 세월의 힘에 부서진 아테나 신전과 에레흐테온이 그리스의 슬픈 역사를 증명해 주는 듯 하다. 특히 에레흐테온의 기둥 중 하나인 여인상 ‘카리아티드스’는 이곳의 것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현재 영국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니, 이들이 얼마나 타민족에게 시달림을 당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윤석영 목사(히스교회 시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