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칼럼
위에서 주지 아니 하셨더라면?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했던가? 그래서인지 오늘날 인간들의 행태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빌리자면 그 악독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죄악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최고의 지성과 이성이라고 자만하고, 스스로를 절대지존으로 생각하며 향방 없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처럼 그런 모습으로 서 있다.
이번 주간은 기독교 절기 가운데 고난주간으로 정하고 지키는 아주 의미 있는 기간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골고다의 오르셔서 죽임을 당하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의 승리를 거둔 승리를 위한 기간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땅이 혼돈되고 공허할 때, 말씀으로 질서를 만드신 분이시다. 그런데 그 질서 속에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인간이란 존재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바 되지 않았다면 여누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짐승에 불과할 것이다. 단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그 사실이 인간을 인간으로 서게 하는 근거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라 자처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영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의 흐름에 주도권을 빼앗긴 채 부활을 통해 승리의 이벤트를 만들어 가는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 땅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이제 그만 그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어가는 사조들.
그 한 가운데 서 있는 자녀세대들.
인생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물 흐르는 대로 떠밀려가는 현 세대들.이 시점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들은 우리의 잃어버린 자리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를 뛰어넘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세대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의 상이점을 찾아내어 회복하고 제대로 전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지 않으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고 말 것이다.
디지털 시대는 현란하고 화려하다. 우리의 아이들은 바로 그런 환경에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현란하고 화려함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먼저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상에서 함께 다음 걸음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그저 보여 지는 것에 열광하고 그것이 최고인 것처럼 살다가 그 화려한 조명과 관심, 그리고 인기가 사라지면 자신의 정체성도 사라지는 것으로 알고 이내 삶을 포기하는 세대들. 보여 지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내야 할 시기인 것이다.
보지 못하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우리들은 보여 지는 세상이 가장 아름답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상상의 세상이 더 아름답다고들 한다. 일전에 치료를 받기 위해 눈을 가리고 병원에 입원했던 환우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귀로만 듣던 세상의 현상들은 제한받지 않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고 그 세계는 눈으로 만들어 낼 수조차 없는 또 다른 천상일 것이다. 그런데 눈을 뜨게 된 후 보지 못했던 답답함은 해소되었지만 깨어지는 상상의 세계로 인해 낙담하는 경우를 접했던 적이 있다. 생각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보여 지는 것보다 보여 지지 않은 세계로의 여행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사고할 수 있도록 하는 깨우침이 필요한 것이다. 요한복음 19:10절에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할 때 11절에“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라고 말씀하고 있다.
인간의 존재가 바로 그렇다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신다면 우리들은 존재할 수 없는 티끌 같은 존재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말씀처럼 우리 아이들이 본래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삶이 인간다운 삶으로 세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자녀 세대들에게 많은 희망을 걸고 있다. 하지만 그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는 먼저 우선되어져야 한다. 그 환경에서 희망이라는 새로운 세대가 세워지기 때문이다.
윤석영 목사(히스교회 시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