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공감능력’이 힘이다
– AI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
최근 네이처 지는 구글 딥마인드사가 새로 개발한 알파고 ‘제로’가 이세돌 9단을 꺾었던 알파고 ‘리’와의 대결에서 100전 100승을 올렸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개발자인 데미스 허사비스는 “‘제로’는 기존의 알파고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AI”라고 강조했습니다.
알파고 ‘리’는 인간의 기보를 바탕으로 프로 기사들의 대국을 먼저 익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바둑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로’는 바둑의 룰만 알려줬을 뿐 입력된 기보 없이 스스로 연습을 하면서 바둑을 터득했습니다. 그리고 독학한지 72시간이 지나자 ‘리’를 이겼고 이어진 99판 모두 ‘제로’가 승리했다고 합니다. ‘제로’의 기보를 본 바둑인들은 ‘신의 경지’라고 표현했답니다.
적어도 바둑에선 이미 AI가 ‘특이점(singularity‧인공지능과 같은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시점)’을 지난 것 같습니다. 인간의 것을 보고 따라 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던 것을 새로 ‘창조’해 내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더욱 놀랄만한 일입니다. 복잡한 계산이나 논리적이고 빈틈없는 사고를 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이제는 창의적인 부분까지 AI가 앞서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이라는 두 가지의 특징적 영역이 있습니다. 이미 이성적인 부분은 AI가 월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다른 동물과 인간의 존재를 구분하던 이성의 영역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AI가 인간의 모든 것을 대체할 때까지 넋 놓고 바라만 봐야 할까요?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1729-1790)가 쓴 ‘국부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당시엔 일종의 사회과학 서적이었지 경제를 전문적으로 다룬 책은 아니었습니다. 훗날 ‘국부론’은 근대 자본주의의 토대를 마련한 기념비적 도서가 됐지만 스미스가 살았던 18세기 영국에선 오히려 혁명서에 가까웠습니다. 절대왕권이 존재하는 왕정국가 시대에 그의 생각은 자본주의의 발전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우연한 기회에 쓰여지게 됩니다. 당시 귀족들 사이에선 ‘그랜드 투어’라는게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귀족 자제들이 지식인들과 함께 2, 3년씩 함께 여행을 다니며 세상을 배우는 일종의 과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40대 중반이었던 스미스는 중년의 삶을 여유롭게 보낼 겸 영국의 재무장관인 찰스 타운젠드의 아들과 그랜드 투어를 떠났습니다. 1764년 이제 막 유럽 일주를 마친 스미스는 프랑스에서 몇 달을 머물렀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곡물수출을 제한하거나 가격을 통제하는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하는 자유방임주의가 유행했습니다.
그랜드 투어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스미스는 국가가 개인의 경제 활동을 통제하지 않는 자유경쟁 상태를 가정하고 ‘보이지 않는 손’이란 개념을 만들어 냅니다. 이를 통해 사회의 질서가 유지·발전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후 ‘국부론’은 현대 시장주의 질서를 설명하는 근본 원리가 됐습니다. 경제사학자들에 따르면 기원전 1000년 인류의 평균소득은 1인당 150달러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부론’이 나온 18세기 중반까지도 평균소득은 200달러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7000달러가 넘습니다. 인간이 물질적으로 번영을 누리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닙니다.
스미스는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에는 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돌아가는 독립된 운영 원리가 있다는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이 원리를 도덕감정, 즉 ‘공감’으로 불렀습니다. 공감은 상대의 입장에서 동일한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신분이 높고 낮든, 교육을 받건 못 받았건 간에 인간이면 누구나 역지사지의 심성이 있기에 타인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감의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부론과는 반대적인 내용인 것 같은 이 같은 생각을 정리한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2016년 중앙일보가 시민 3061명을 대상으로 가장 매력적인 글로벌 리더를 조사했더니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1위로 뽑혔습니다. 시민들은 오바마의 가장 큰 매력을 공감능력으로 꼽은 것입니다.
2013년 당시 오바마는 ‘9·11 테러’ 이후 12년 만에 미국의 대(對)테러 정책의 변화를 발표하고 있었는데 한 반전 운동가가 계속해서 연설을 방해했습니다. 세 차례나 연설이 중단될 정도로 막무가내였습니다. 결국 오바마는 원고를 덮고 그에게 이야기합니다.
“당신이 주장한 많은 부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목소리는 충분히 들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기꺼이 말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반전운동가는 미국의 대테러 정책에 대한 온갖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후 영국 가디언지에 실은 칼럼에선 자신의 말을 들어준 오바마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이 일로 오바마는 미국의 정책을 반대하던 이들 사이에서도 신임을 얻게 됐습니다.
이처럼 공감능력은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역량 중 하나입니다. 사회가 다변화 되면서 다양한 생각의 차이를 조율하고 상대의 감정까지 헤아릴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 사회에선 공감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거라고 이야기 합니다.
얼마 전 영국의 BBC는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직업, 즉 공감능력이 필요한 일은 로봇이 인간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습니다. 2033년 일자리의 47%가 사라지고(옥스퍼드대), 10년 후 일자리의 60%가 로봇과 AI로 대체될 것(한국고용정보원)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공감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만큼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입니다.
또한, “인간의 얼굴과 목소리로 감정을 흉내 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지만 진정한 공감능력을 갖추긴 어렵다”고 했습니다. 대표적인 분야로 교육과 의료 분야가 꼽힙니다. 의료계에선 이미 AI 의사 왓슨이 병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데 인간 의사보다 월등합니다. 하지만 아픈 이들을 돌보고 그들의 감정에 공감해줄 수 있는 건 결국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는건 AI 교사가 할 수 있어도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감정을 나누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은 좀 더 인간다운 일에 집중할 수 있을 때 AI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인간다움의 가장 근본은 남이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 아닌가 합니다.
특별히,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공감능력을 상실한다면 더 이상은 인간성이 소중함에 대하여 깨닫게 되는 공간은 상실할 것입니다. 시즌2를 시작한 ‘알쓸신잡’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족들 간의 관계를 위해선 소파보다는 식탁에 돈을 써라. 소파는 개인의 편함을 위해서 존재하지만 식탁은 가족의 소통을 위해서 존재한다.”
어쩌면 공감능력을 위해서 실제적인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은 아닌지 살짝 고민해 봅니다.
임기호 목사는 다음세대와 문화사역을 위하여 ‘메시지 커뮤니티 교회’와 ‘메시지 스쿨’을 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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