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누구나 알아야 할 진실’
작년 12월 28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열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위안부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갑작스런 발표에 당사자들롸 국민들은 어리둥절 했습니다.
영화 귀향은 1943년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손에 이끌려 가족의 품을 떠나야 했던, 열네 살 정민(강하나 분)을 비롯한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지난달 미국 LA·애리조나·코네티컷대·브라운대·워싱턴·뉴욕 등에서는 해외 후원자를 대상으로 한 귀향의 시사회가 진행됐던 것입니다. 귀향 측은 “지난달 22일 미국 LA에 있는 JJ그랜드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현지 언론의 뜨거운 취재가 이어졌다”며 “이튿날인 23일 진행된 시사회에는 전미 한인협회장, LA 한인협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전석이 가득 찬 채 시사회를 마쳤다”고 전했습니다.
지난달 24일 애리조나 시사회에 함께한 유명 아트 딜러 조이스 태쉬는 “현재도 세계 곳곳에서 여성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생각한다면, 이 영화의 상영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이 영화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어 이러한 참상을 멈출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여성인권에 대한 참담한 일들을 알리는데 이 영화가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또한, 할리우드 특수분장사 짐 D 칼데스는 “촬영, 조명, 분장 등 기술적인 부분이 훌륭하다”며 “앞으로도 이와 같이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 영화를 계속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28일 코네티컷대학 시사회에 참석한 알렉시스 더든 역사학과 교수도 “이번 상영회는 스마트한 움직임이었다”고 평가했으며 조정래 감독을 수업에 초청해 학생들과 함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며 영화의 의미를 되새겼다고 합니다. 같은 날 브라운대학에서는 150여 명의 현지 학생·교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시사회가 열렸는데 사무엘 페리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페이스북 페이지를 이용해 영화 귀향을 지속적으로 알리겠다”고 전했다고 합니다.
이어 지난달 29일에는 워싱턴의 한 교회에서 약 120명이 참석한 가운데 ‘워싱턴 정신대문제 대책위원회’와 공동주관한 시사회가 진행됐으며, 이튿날인 30일 뉴욕에 있는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마지막 시사회를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귀향 측에 따르면, 영화를 본 후원자들은 시사회가 끝난 뒤 눈물을 흘리며 조정래 감독과 포옹을 나눴으며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접한 몇몇 학생들은 조정래 감독에게 “제가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시작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소중한 영화를 포기하지 않고 제작해 주신 감독님, 배우, 스태프들께 존경하고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한 번 전하고 싶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귀향>측은 “특히 한 일본인 학생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열하며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가까운 미래에 일본에서도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는 소감을 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말 이런 일이 일어 난다면 역사왜곡의 철장에 갖힌 일본이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귀향>은 전쟁과 군국주의라는 엄청난 격변 앞에서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모조리 빼앗긴 십대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가 활개를 치던 1940년대에 성노예로 끌려간 강일출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일본의 파렴치한 부정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략적으로만 따져도 당시에 끌려간 꽃 같은 이 땅의 소녀들이 2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살아 돌아온 소녀는 불과 몇 백에 불과합니다.
당시 소녀들은 대부분이 능욕과 학대로 인한 질병과 폭력으로, 그리고 이른바 ‘소각명령’으로 차디찬 이국의 땅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잔인무도했던 일본은 지금도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 전쟁광의 망령은 현재에도 ‘독도망언’과 ‘교과서 왜곡’ 등으로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습니다.
192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신 강일출 할머니는 16살의 나이에 보국대를 뽑는다고 집에 순사가 찾아와 납치되듯 끌려갔습니다. 중국 심양을 거쳐 장춘, 그리고 목단강 위안소에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며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 장티푸스를 심하게 앓아 부대 밖으로 이송되어 다른 병든 소녀들과 함께 불구덩이에 던져 지려할 때 조선 독립군들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탈출하였습니다. 이후 중국에서 생활하시다가 2000년 영구 귀국하시어 지금까지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시고 계십니다.
<귀향>의 조정래 감독은 2002년에 경기도 퇴촌에 있는 나눔의 집에 계신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를 위해 봉사공연활동을 하면서 참혹했으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위안부문제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2002년, 강일출 할머니께서는 미술심리치료과정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십니다. 바로 당신의 절대 절명의 순간을 담은 ‘태워지는 처녀들’이었습니다. 이 그림이 조정래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조정래 감독은 할머니들을 알아가면서 무려 20만 명(일본교수가 계산한 수치-최고 50만 명이 끌려갔다는 학자도 있습니다)이 넘는 어린 여성들이 강제로 납치되거나 취업을 미끼로 끌려가서 모진 생활을 견디지 못해 대부분 객지에서 돌아가신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초경도 안한 소녀들이 하루에 이삼십 명의 병사를 상대하면서 병으로, 구타 고문으로 죽어갔으며 일본군이 퇴각하기 전에 소각명령에 의해 불태워지거나 처형되었으며 퇴각한 후 그대로 현지에서 버려져 죽음에 이른 사례가 부지기수였습니다.
그 이후 조정래 감독은 <귀향>을 10여 년 동안 준비합니다. <귀향>은 과거 역사 속에서 상처 받았던 위안부피해자 할머니(영옥)와 현재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한 소녀(은경)의 고통을 병치시키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 아픔을 함께 직시하고 치유하는 내용의 영화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일본을 비난하자는데 목표가 있지 않습니다. 일본 군국주의가 만든 고통의 역사를 고발하면서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감히 ‘과거’가 아닌 모두를 위한 ‘미래’를 담은 영화라 말하며 과거의 아픔을 함께 직시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힐링 영화’ 라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