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부활절과 연관된 이런저런 긍금증을 풀어 봅시다.
의미있는 부활절을 기대하며
부활절의 기원은 그리스도교가 시작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 베다(Bede)에 따르면 부활절, 즉 이스터(Easter)는 앵글로색슨족의 봄과 다산의 여신 이스터(Eostre)에서 나왔는데 4월은 원래 이 여신에게 바치는 달이었습니다. 이스터 여신의 축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에 행해졌습니다. 초기 영국교회에서는 지역 고유의 전통을 새 달력에 통합하면서 이스터를 이 축제일의 이름으로 정했다고 함니다. 이스터의 기원은 독일의 ‘오스테르'(Oster)에서도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 외 기독교 국가에서는 과거 히브리 민족의 뿌리와 연관된 축제일의 이름을 붙였는데, 프랑스의 빠스끄(Paque),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빠스꾸아(Pascua)는 모두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인 파스카(pascha)와 관련이 있는 이름들입니다.
부활절 날짜는 매년 달라지며 빠르면 3월 넷째 주일이나 늦으면 4월 넷째 주일에도 올 수 있습니다. 초기 교회는 유월절을 기준으로 해서 부활절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A.D 4세기 히브리력의 유월절에 따라 부활절을 정해야 한다는 교단들과 이에 반대하는 교단들 사이에 대립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325년 니케아공의회는 ‘파스칼만월'(Paschal full moon), 즉 당시 춘분이었던 3월 21일 이후 첫 보름 다음의 주일을 부활절로 정했습니다. 파스칼만월이 일요일일 때는 그 다음주 일요일이 부활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5년은 4월 5일이었지만 2016년에는 3월 27일이 되고 2017년에는 4월 16일이 부활절이 되는 겁니다.
부활절하면 부활절 달걀이 떠오름니다. 부활절에 달걀을 먹는 습관은 게르만족 문화에서 전해진 것입니다. 게르만족은 ‘오스테르’를 위한 봄축제 때에 빵을 고기와 달걀을 곁들여 먹는 전통이 있었으며 부활절로 바뀐 이후에도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서양사람들이 부활절에 고기와 달걀을 먹는 습관도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십자군 전쟁을 겪은 한 가족의 일화에서 시작되었다는 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남편이 십자군 전쟁으로 집을 떠나자 혼자 남게 된 한 아내가 마을사람들의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 달걀에 색을 칠하고 가훈을 적어 나눠줬는데, 이 달걀을 받은 한 소년이 산에서 군인을 만나 달걀을 건네주고 그 군인은 달걀에 씌어진 가훈을 보고 아내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그 후에도 남편을 찾을 수 있게 해준 달걀을 이웃에게 나눠줌으로써 부활절 달걀의 유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부활절에 특별한 행사들을 한다고 합니다. 일명 ‘달걀 굴리기’입니다. 미국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아내 ‘돌리’는 국회의사당에 아이들을 초대하여 잔디밭에서 달걀 굴리기 이벤트를 했는데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긴 스푼 모양의 막대기로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 가장 멀리 가장 빨리 굴리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었습니다. 지금은 백악관에서 열리고 있으며, 남북전쟁 때를 제외하고는 해마다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합니다. 12세 이하의 아이들만 참가하고 어른들은 아이들과 동반했을 때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다른 행사는 달걀 찾기입니다. 부활절 아침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많은 달걀을 곳곳에 숨겨두었다가 아이들에게 찾게 하는 이벤트로 단체나 마을단위로 이루어집니다. 달걀을 가장 많이 찾은 아이는 달걀 모양의 초콜릿을 상품으로 받기도 합니다. 또한, 부활절 페레이드도 있습니다. 부활절 아침 사람들이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교회에 다녀온 후에 마을을 돌게 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뉴욕시 5번가 퍼레이드가 가장 유명한 퍼레이드로 꼽히고 합니다. 미국에선 부활절이 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 어머니날 다음으로 카드를 가장 많이 보내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밖에도 부활절날 유럽의 가정에서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삶은 달걀에 초콜릿을 녹여 코팅한 후 표면에 풍경이나 자신의 소망 등을 담은 그림을 그려넣는 행사를 갖기도 합니다. 이는 종교적 의미뿐 아니라 그 동안 이야기하지 못했던 일들을 그림을 그려서 보여줌으로써 친분을 더욱 돈독히 해나가는 좋은 소통방법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부활절과 관련된 교회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초대교회는 주일을 ‘안식후 첫 날’ 로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기뻐하는 축제처럼 성찬을 행하고 예배했습니다. 그들은 주일 외에 특별한 절기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단지 2세기 경부터 교회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를 일 년에 한 번씩하면서 전통이 만들어졌고 중세 때에는 더 많은 축제일들을 만들어 매년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종교 개혁가들은 그 모든 연례행사와 교회의 축제일을 폐지했습니다. 방종주의자들이 득세하던 시기에 제네바 의회가 칼뱅과 파렐을 쫓아내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기독교 축제날을 없앴기 때문이었습니다. 방종주의자들이 의회를 집권한 후 네 개의 절기(성탄절, 할례의 날, 마리아가 천사의 소식을 들은 날, 승천일)를 다시 지키도록 결정했고 이 날은 일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칼뱅이 다시 복귀하면서 이 모든 것들은 폐지되었습니다. 그 후 네덜란드 개혁교회도 도르트레흐트 노회가 1574년 기독교 연례 절기 행사를 모두 취소하고 주일 하나면 충분하다고 결정했고 단지 성탄절과 부활주일, 그리고 성령 강림주일에 그에 관한 설교를 하는 것은 좋다고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보통의 주일보다 더 나은 어떤 특별한 축제로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개혁가 츠빙글리(Zwingli)는 로마 카톨릭과는 다르게 사순절 기간에 고기와 소시지를 먹을 수 있다고 파격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츠빙글리는 교회의 과도한 규칙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구속할 뿐만 아니라 복음을 왜곡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성경에서 명령하신 것만 행해야지, 우리 스스로 경건의 열심과 열정으로 이것저것 규칙을 만드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율법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로마 카톨릭이 국교인 나라에는 사순절을 엄격하게 지키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카니발’이라는 축제가 생겨났던 것입니다. 40일 동안은 고기도 먹지 못하고 즐기지도 못하기 때문에 ‘사육제’(carnival) 라는 축제를 열어 1주일 정도 고기와 소시지와 술을 마음대로 먹고 마시며 흥청망청 즐기게 되었습니다. ‘카니발’은 ‘carne’, 즉 ‘고기’(meat)라는 단어에서 왔고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이 곧 축제였던 것입니다. 개혁가들은 성경에 없는 그런 절기를 만들어 고기와 맛난 음식을 먹지 못하도록 한 것은 믿음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이번 주간은 고난주간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그 고난을 흉내 내기도 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십자가 형틀을 지고 실제로 자신의 손과 발에 못을 박게 하는 의식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비슷한 고행을 한다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고난주간이 되면 고난에 동참하는 여러가지 행사들이 생겨납니다. 이런 행사들에 동참하며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리한 행사나 일정들을 만들어서 이 일에 동참하는 사람은 믿음이 큰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는 문화가 있다면 그것은 옳지 않을 것입니다.
고난 주간을 보내며 나름대로 몇 가지 결단을 했습니다. 이런 결단을 실행에 옮기면서 무언가를 이룬 것 같은 자만심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지는 준비를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십자가에 달리면서까지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고난 주간을 살았다면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심령에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의 생명이 넘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한복음 11: 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