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구 목사의 걷는기도

걷는 기도 (14)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 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말하지 못한 진실을
침묵의 온도로 보존하는 일입니다
해는 늘 같은 자리에서 떠오르지만
나는 매번 다른 그림자로
당신을 따릅니다
해바라기는 고개를 들어
다만 빛의 방향으로
자기 존재를 전부 기울일 뿐입니다
사랑이란 소유가 아니라
향하는 습관
떠나도 돌아오는 각도
비가 와도 흙은 해를 기억하고
어둠이 길어져도
씨앗은 빛의 이름을 잊지 않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 묻어둔 채
당신이 오지 않는 저녁에도
나는 피어 있는 연습을 합니다
기다림이 시들지 않도록
기다림을 삶으로 바꿀 때마다
혹시 바람이 당신의 이름을
흩뜨려 놓아도 괜찮습니다.
해바라기는
바람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저 다시 해를 찾습니다
사랑이 끝난 자리에도
방향은 남아
나이 들게 하더라도
조용히 나를 살게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
말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한 줌의 향기로……
20251216
匍越의 [걷는 기도중에서]

전현구 목사 (시드니조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