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구 목사의 목회단상

“성경은 원본이 없고 사본만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
현대인들이 종교와 성서에 대해….
위 질문들은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중에 핵심이었다
지금도 현대인들이 종교와 성서를 향해
던지는 중요한 질문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역사비평과 과학, 종교학,
정통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과 해석,
철학적 전제가 뒤섞여 있다는 문제와 한계도 분명하다.
핵심을 명제와 질문 형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명제
“성경은 원본이 없고 사본만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
질문
원본이 없다는 사실은
곧 내용 전체가 거짓이라는 뜻인가?
설명/
역사비평학은 성경 원본(autograph)이
남아있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리아드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각 국가
고대 문헌 대부분은 원본이 없다.
반기독교적 비난의 자료도 원본이 없는
작가적 상상력으로 작성된 자료나 역사 아닌가?
모든 상상력을 통하여
가설을 설정하여 추론해 나가는 것이 과학이 아닌가?
오히려 성경은 수천 개의 사본을 비교하여
원문을 복원할 수 있는 자료가 매우 풍부한 편이다.
따라서 “원본이 없다.” 와
“그러므로 거짓이다.” 는 논리적으로 동일하지 않다.
2. 명제
“성경은 짜깁기와 편집의 산물이다.”
질문
편집되었다는 사실은 신앙적 가치가 없다는 뜻인가?
설명/ 역사비평은 성경이 여러 전승과 편집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창세기 는 여러 전승이 결합되었다고 보고,
이사야 도 여러 시대의 편집층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공동체가 하나님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전승했는가”
를 묻는 것이다.
역사비평은 진위를 판정하는 학문이라기보다,
본문이 어떤 역사와 공동체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3. 명제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왜 인간의 언어와 필사를 사용했는가?”
질문
전능은 반드시 초자연적 방식으로만 나타나야 하는가?
설명/ 이 비판은 사실
“신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내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는 철학적 전제를 포함한다.
그러나 정통 기독교는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 역사 안으로 들어오셨다.라고 주장한다.
이를 신학에서는 성육신 사건이라고 부른다.
예수도 아람어를 사용했고
배고픔을 느꼈으며, 고통을 겪었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즉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의 언어와 역사를 통과한다.
는 것은 기독교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중심적인 주장이다.
4. 명제
“기독교는 과학이 발전할 때마다 후퇴한다.”
질문
종교와 과학은 반드시 경쟁 관계인가?
설명/ 현대 과학철학에서는
과학과 종교를 단순히 적대관계로 보지 않는다.
과학은 어떻게(How)를 묻는다.
종교는 왜(Why)를 묻는다.
예를 들어
과학은 우주가 어떻게 팽창했는가?를 연구한다.
종교는 왜 존재가 있는가?
인간은 왜 선과 악을 고민하는가?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는가?를 질문한다.
두 질문은 서로 다르다.
5. 명제
“신화는 과학 이전 시대의 무지한 상상력이다.”
질문/ 신화는 거짓말인가?
설명/ 현대 종교학은 신화를
거짓 이야기(false story)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언어라고 이해한다.
예를 들어
루돌프 불트만 은 성경의 신화적 언어를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실존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폴 틸리히는
“신화는 궁극적 실재를 상징하는 언어”라고 말했다.
즉
신화는 과학 교과서가 아니라,
존재의 깊이를 드러내는 상징의 언어다.
6. 명제
“Holy는 인간이 권위를 위해 덧씌운 허구다.”
질문/ 거룩함(Holy)은 인간이 만든 개념인가?
설명/ 종교학은 거룩함을 객관적으로 증명하지도,
거짓이라고 단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왜 거룩함을 경험하는가?”를 묻는다.
10여년 전에 [시드니 기독교연구소]가 주관하던
학술 세미나에서 한 주제이기도 했던
루돌프 오토의 저서[The Idea of the Holy]에서
종교의 핵심 경험을(Numinose, Numinous)라고 했다
오토는 거룩함(Holiness)을 단순히 윤리적 선함이나
도덕적 완전성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 또는 절대적 실재 앞에서
경험하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감정이라고 보았다.
그가 가장 유명하게 표현한 말이 바로
“거룩함을 두렵지만 매혹적인 경험”
(Mysterium Tremendum et Fascinans)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아름다운 자연,
죽음 앞의 침묵, 사랑과 희생,
우주의 경이 앞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초월적 감정을 경험한다.
종교는 그 경험을 “거룩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7. 심리학적 비평에서
질문/ 왜 사람들은 종교를 비웃는가?
설명/ 종교 비판은 때로 건강한 질문이다.
그러나 조롱과 냉소가 섞일 때는
다른 심리도 작용할 수 있다.
1)권위에 대한 반발
2)종교로부터 받은 상처
3)절대적 진리에 대한 거부감
4)인간 이성에 대한 강한 신뢰
반대로, 종교인도
모든 의심을 죄로 여기거나
과학을 적으로 만들거나
문자주의에 집착할 때
건강한 신앙을 잃을 수 있다.
8. 가장 중요한 질문은?
“성경이 과연 오류가 없는 책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과학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가?
사랑과 희생, 죽음과 희망은 실험실에서 증명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증명의 대상인가?,
아니면 인간 존재가 끝없이 질문하게 되는
궁극적 실재인가?라는 질문이다.
역사비평은 성경의 형성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과학은 우주의 작동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
종교학은 인간의 종교 경험을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묻는다.
왜 우리는 진리를 갈망하는가?
그리고 기독교는 그 질문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라고 대답한다.
반면 회의론은,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조롱이 아니라 질문이며,
성숙한 신앙과 성숙한 회의주의는 서로를 비웃기보다,
인간 존재의 깊이를 함께 탐구하는 데서 시작된다.
P/S
이 글을 시드니 인문학모임에서
주장하는 하나의 담론을
필자는 반론으로 작성한 글임을 밝힌다

전현구 목사 (시드니조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