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구 목사의 초대시

고별과 석별 사이에서
아들아,
나는 아직도 너를
과거형으로 부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너는 내게 한 번도
“있었다”가 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너는 여전히
새벽의 적막 속에서
내 기척 소리를 먼저 듣고,
문틈 사이로 흐르던 불빛처럼
내 기억의 복도 끝에 서 있다.
눈물과 고통의 서른여섯 해였다.
누군가는 그것을
짧은 생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내게 그 시간은
한 인간이 자기 존재의 심연과
끝없이 씨름하며
하루하루를 통과하던
거대한 우주의 사건이었다.
너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나 세상은
치열한 영혼의 울음을
늘 다른 시선이나
침묵으로 오해하곤 했다.
나는 안다.
네가 얼마나 오래
자기 자신이라는 감옥 안에서
벽을 두드리며 살아왔는지를……
사람들은 네 웃음을 보았지만
나는 그 웃음 뒤에
칼날처럼 떨리던 외로움을 보았다.
사람들은 네 침묵을 보았지만
나는 네 안에서
무너지는 가슴의 소리를 들었다.
아들아,
우리는 참 오래
눈으로 서로를 견디며 살았다.
말보다 먼저 눈빛이 울던 시간들.
네 눈은 늘 내게 물었다.
“아버지,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그러면 차마 대답하지 못한 채
너의 눈을 바라보는
일밖에는 할 수 없었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언제나 무력했다.
자식을 대신하여 아파 줄 수도 없고,
대신 무너져 줄 수도 없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수도 없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끼인
낡은 다리처럼 흔들렸다.
네가 고통 속에서 밤을 지새우던 날들,
나는 방문 밖에 기대어
숨조차 조심하며 기도로 울었다.
혹시라도 내 울음이
너를 더 외롭게 만들까 봐.
아들아,
너는 나의 신학이었다.
너를 통해 새롭게 신학을 배웠다
책 속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 속에서 피 흘리는 존재를 통해
나는 인간의 존엄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를 배웠다.
너를 통해 나는 알았다.
인간은 단순히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끝없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물으며
상처 입는 존재라는 것을……
하이데거가 말한 불안도,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절망도,
니체가 외치던 심연도
너의 눈동자 앞에서는
한낱 차가운 문장에 불과했다.
너는 철학보다 더 깊은 곳에서
삶과 씨름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싸움을 지켜보며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기를
수천 번 기도했다.
그러나 끝내
나는 너를 대신 살아줄 수 없었다.
그 사실이 오늘도 나를 찢는다.
아들아,
마지막 응급실에서 너를 안는 순간
따뜻한 온기가 절박함으로 밀려올 때
나는 깨달았다.
죽음은
사람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 안에서
끝없이 되살아나는 일이라는 것을……
네가 떠난 자리
나는 식탁에서
무심코 네 자리를 비워 둔다.
문득 어떤 찬양이 흐르면
“아, 이 노래을 좋아했지…”
혼잣말을 하다가
이내 숨이 무너진다.
며칠 전 전화가 왔다
“아버지 어디세요?”
“교회야”
“왜? 무슨 일이 있니”
“아니에요”
“아버지 일찍 오세요”
세상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말하지만,
시간은 결코 사랑을 지우지 못한다.
오히려 시간은
그리움을 더 정교하게 만든다.
나는 이제 네가 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아들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너는 실패한 삶이 아니다.
너는 끝까지
자기 영혼과 싸운 사람이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아무 질문도 없이 살아가지만,
너는 끝내 인간 존재의
깊이를 외면하지 않았다.
나는 네가 얼마나 외롭게
삶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었는지 안다.
그래서 더욱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하다.
조금 더 안아 줄 걸.
조금 더 들어 줄 걸.
조금 더 오래
네 곁에 앉아 있을 걸……
이제야 나는 안다.
사랑은
무엇을 해결해 주는 능력이 아니라,
끝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곁에 함께 울어 주는 일이라는 것을……
아들아,
만약 인간의 눈물을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면,
너의 눈물은 반드시
별처럼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조금은 평안하여라.
너무 오래
너는 스스로를 심판하며 살았다.
이제는 자신을 용서하며 쉬어라.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 침묵의 강을 건너게 되면,
그때 우리 다시
아무 말 없이 오래 눈을 맞추자.
이 생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눈물 없이 나누자.
그때는 아버지가 꼭 먼저 말하마.
“아들아, 미안하다”
‘원아, 수고 많았다”
*20260519 교회 서재에서
匍越의 [음악편지] 중에서

전현구 목사 (시드니조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