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115)
레이몬드 벤자민 (벤) 스터만 (1946. 8. 2)
한국명: 변수민 선생, 부산 1972-77; 거제도 1977-78
벤은 장로교 목사(C. H. Skerman)의 아들로서 브리즈번에서 태어났고, 시드니 대학과 뉴사우스웨일즈 대학에서 공부했다. 그가 일신병원의 병원행정관/고문직에 지원했을 때, 그는 뉴사우스웨일즈 병원위원회 안에서 일하고 있던 때였다.
그는 1972년 8월 5일 한국에 도착했고 즉시 마산으로 가서 이명자씨와 두 달 동안 한국어 공부를 했다. 그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와 친숙해지기 위해 모든 기회를 사용했다.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벤은 병원에 새로운 회계제도, 저장제도를 도입했고, 특별히 한국인 직원들이 병원경영을 넘겨받도록 돕기 위해서 정기적인 관리와 직원미팅을 계획했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 한국인 직원들을 훈련하기 시작했다. 피트 마위크(Peat Marwick)와 미첼(Mitchell)은 재정 감사를 수행하였고 세금문제에 대해 조언했다.
그는 새로운 외래 진찰실들, 약국, 실험실, 엑스레이 룸, 두 개의 새로운 수술실, 수업 교실들, 회의실, 선임직원들을 위한 편의 시설을 제공하기 위해 병원의 많은 부분을 재건축하는 계획에 대해 병원과 독일교회 사이에 협상을 이끌었다. 그는 또한 새 건물들을 건축하는데 있어 병원과 건축자 (Gerhard Nomrowski) 사이에 연락원 역할을 하였다.
이 일은 1974년 오일위기 때에 발생했는데, 가격이 급상승해서 독일교회 해외개발원조처(EZE)와 재정을 재협상해야 했다.
1975년 행정자문관 벤은 경영구조와 재정제도를 발전시켰고 그가 훈련시킨 한국인 직원들에게 관리 이전을 촉진시켰다. 그는 건축문제에 대해서 주요 책임을 맡았고 병원에 큰 기여를 하였다. 1976년 한 해 동안 그는 일신에서의 직접적인 행적책임으로부터 서서히 물러났고, 고위직 직원들과 병원 이사회의 이사장에 대한 자문을 했다. 그는 이미 병원행정관을 훈련시켰지만, 또한 보조 병원행정관을 훈련시켰다.
벤은 부산진 교회의 성가 대원이었고, 대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교회 청소년들에게 영어성경을 가르쳤다.
그는 또한 비공식적 고문 자격으로 존 시블리 박사(Dr John Sibley)가 수년 전에 시작했고, 당시 대학공동체 건강 아카데미의 참여로 크게 확대된 거제 공동체 건강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977년 초, 벤은 거제 프로그램의 행정관직을 제안 받았다. 그는 재정과 시스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거제 프로젝트의 부국장으로 임명되었고 1977년 5월 9일에 일에 착수했다. 그해 6월 25일 그는 김양은과 결혼하였다.
벤은 이 프로그램과 관련된 재정적 결정의 많은 부분이 서울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1978년 5월까지 그에게 맡겨진 모든 임무를 완결하고 사임을 하였다. 그는 1978년 6월 집으로 돌아와서 호주에서 병원행정 일을 하였다.
정병준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