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117)
스티븐 빅터 라벤더 (1951. 2.13)
한국명: 나병도 선생, 서울 1976-78

스티븐 라벤더는 링우드 고등학교와 멜번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대학에서 상업(commerce)을 공부하는 동안, 그는 학생기독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그 후에 한동안 회계사로 일했고 인종착취에 반대하는 운동에 지원자로 참여했다. 그는 영등포산업선교에서 일하기 위해 한국에 갈 사람을 찾는 에큐메니칼 선교와 국제관계부(BOEMAR)의 홍보를 보고 응답했다. 그는 아래의 임무를 하도록 임명되었다.
귀하는 큰 산업도시인 영등포에서 장로교 산업선교 팀과 함께 일하게 될 것입니다. 이 팀은 함께 공부하고 실천하며, 상호격려하기 위해 만나고, 매달 지원하는 약 200팀의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지원하고 세계 그리스도인의 연대를 표현하기 위해 함께 일할 외국인을 요청하였습니다. 귀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공부하고 실천하는데 완전히 참여하면서 그들의 문제와 열망에 대해 응답해야 합니다. … 귀하는 영등포에서 도시산업선교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스티븐은 1976년 6월 7일에 서울에 도착했고, 그 후 9개월간 파트타임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오후와 저녁에는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UIM)에서 일했다. 당시 한국정부는 노동자의 인권은 고려하지 않고, 산업생산 증대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저임금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영등포 산업선교회는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었다. 그는 산업선교회를 노동자 소그룹들의 일부를 지원하면서 그 모임에 참여했다. 그는 특별히 외국인이 소유한 회사의 노동자들과 함께 일했고 그 회사가 속한 나라에 노동자들의 곤경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영등포 산업선교회는 그 자체가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집회 장소였고, 그들이 서로를 강하게 할 수 있는 장소였고, 프로그램이있었기에, 정부의 탄압의 대상이었다. 그 후 2년 동안 정부는 산선을 고립ㆍ파괴시킬 여러가지 조치를 취했다. 우선 산업선교회를 용공으로 몰아서 교회와 사회공동체로부터 고립시키려고 했다. 산업선교회의 목적으로 왜곡한 책자들을 만들어 배포했다. 영등포 산업선교회 책임자였던 인명진 목사가 구속되었다. 그리고 주로 스테판 라벤더에 의해 공급되었던 해외의 연결 고리를 단절하려는 조치를 취했다. 1978년에 정부는 그의 비자 갱신을 거부했고, 6월 20일까지 한국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교회와 스테판은 이러한 사실상 추방의 근거를 확인하려고 시도했으나 법무부의 유일한 답변은 라벤더가 종교활동 보다는 정치 활동에 종사했기 때문에 그가 선교사 비자를 가질 권리를 취소했다는 것이었다. 스테판은 그의 입장을 진술하였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보여주신 모범을 따르기 위해 시도하던 중에 나의 신앙때문에 나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따르려 했던 예수님의 경우처럼, 스테판의 행동은 그것에 의해 도전받는 정책을 세운 사람들이 볼 때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라고 평가되었던 것이다.
스티븐은 1978년 6월 말에 호주로 돌아왔다. 그가 추방당한 사실은 어쩌면 그의 행동보다 더 호주사람들이 한국의 상황을 훨씬 더 잘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정병준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