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46)
데이지 호킹(?-1971. 6. 10), 한국명: 허대시(許大是)
부산(1916, 1918-20, 1923-31, 1934-41), 마산(1917-18; 1921-23), 통영(1932-34)
데이지 호킹은 1914년 9월 한국선교사로 승인되었다. 그녀는 그 해에 에 디커니스 훈련소에 들어가 18개월 동안 훈련을 받은 후 디커니스 직분을 받고 한국에 전도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녀는 1916년 3월 초에 한국에 도착해서 부산으로 배치되었다.
1917년 초반에 간호사 나피어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일을 하는 동안에 호킹은 스키너와 함께 마산으로 이전했다. 호킹은 한국어 교사와 함께 비기독교 가정의 어린들을 위해 일했고, 스키너와 함께 시골 사경회에 참여했는데 이것은 훈련의 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부산에서 3년을 일했는데 전도부인들의 도움을 받아 여성들 사이에서 교육하는 일과 전도하는 일의 책임을 맡았다. 그녀는 또한 어린이 성경학교와 타종교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주일학교들을 운영했다.
그녀는 휴가를 다녀와서 마산으로 갔고 그후 2년 동안 그 지역의 여성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설교했다. 그녀는 성경학원에서 가르쳤고 교회들을 순회했고 여성을 위한 지역사경회에서 가르쳤다.
1923-31년 사이 호킹은 부산진에 근거를 두고 여성들 사이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육하는 책임을 맡았다. 김해, 양산, 동래, 거창지역을 순회했고, 여성들을 위한 사경회를 조직하고 지도하였고, 전도부인들을 감독했으며, 성경학원에서 가르쳤다. 그녀는 주일학교들을 조직했고, 마을학교 교사들의 활동을 지도했고, 전반적으로는 여성들 사이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 여성들의 신앙지식과 신앙적 삶의 훈련이 성장하도록 도왔다.
1932-34년 사이 그녀는 통영에서 비슷한 활동을 했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이전의 일을 다시 맡았다. 1941년 일본이 전쟁에 돌입하게 되면서 호킹은 다른 여선교사들과 함께 철수 했다.
호주로 돌아온 이후, 디커니스 호킹은 공립학교에서 수 년 동안 기독교교육을 가르쳤고, 한국의 프로그램들을 지원하기 위해 재정을 모으는 일을 계속했다. 그녀는 1971년 6월 10일에 사망했다.
정병준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