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62)
아미 프란시스(Amy Francis, ?-1945)
한국명: 방란서(方蘭西) 선생, 마산 1924-26; 통영 1927-29
아미 프란시스는 퀸즐랜드 출신이다. 그녀가 선교 사역에 대한 소명을 받았을 때는 은행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그녀는 직업을 버리고 멜번에 와서 디커니스 훈련소에 들어왔다. 그녀는 1923년 말에 과정을 마쳤고 1924년 9월 한국에 도착했다. 그녀는 퀸즐랜드 장로교소녀친교회(Presbyterian Girl’s Fellowship)의 후원을 받았다.
아미 프란시스는 첫해의 대부분을 서울의 한국어 학교에서 보냈다. 그녀의 첫 임지는 마산이었고 2년간의 한국어 공부 이후에 한 명의 전도부인과 함께 여러 차례 순회를 했다.
그녀는 1927년에 통영으로 이전했고, 거기서 불우한 소녀들과 여성들을 위해 자립하면서 배우는 기회를 제공하는 산업학교의 책임을 맡았다. 또한 그녀는 한동안 유치원과 준 초등학교(sub-primary)를 보살피는 책임을 맡았다. 그 산업학교는 그녀가 1929년 휴가를 떠날 때까지 그녀의 책임 아래 있었다.
1929-1930년의 휴가 동안 아미 프란시스는 윌리엄 홀과 약혼을 했고 두 번째 임기에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한국선교협의회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감사를 표시했다.
아미 프란시스 양은 특별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리고 자기가 임명 받은 산업학교에서 일하는 것이 어울렸다. 그녀가 소녀들과 젊은 여성들과 만나는 것은 특별히 기쁘고 열매가 풍부한 일이었다.
프란시스는 1945년 오클랜드에서 사망했다.
정병준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