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84)
에디스 골트(?-1961. 5. 23)
한국명: 고미옥 선생, 부산 1953-61

에디스 골트는 중국선교사의 딸이었다. 그는 간호사 교육을 받았고, 중국에서 매켄지 자매와 함께 있었다. 미국회중교회의 교인이었던 그녀는 1953년 1월에 일신병원의 직원으로 참여했다. 에디스는 교회세계봉사(Church World Service)에 근무하다 병원으로 옮겨왔고 그녀의 봉급은 본국 교회에서 담당했다.
에디스는 일신병원이 수행했던 그런 종류의 일에 대해 경험이 꽤 많았다. 그녀는 자신의 동료일꾼들, 한국인과 선교사 모두의 마음속에 영원한 자리를 남겨놓은 탁월한 조산사였고, 병원에서는 없어서 안될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모든 일들을 주님의 은총과 사랑으로 실천했고, 환자들과 직원들에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다. 그녀는 동료들에게 깊이 사랑을 받았다. 1957년 캐스 맥켄지가 휴가를 간 동안 에디스는 조산사 교육을 맡았다.
1960년 매주 산전(産前) 진찰실이 괴정에 있는 빈민촌에 문을 열었고 골트와 두 졸업생 조산사들이 이 일에 종사했다.

그녀가 일신병원으로 임지를 옮긴 것은 미국 회중교회 안에서 이 병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크게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는 단기임무를 띠고 왔으나 병원에서 성실하게 섬겼고, 소아마비에 감염된 이후 1961년 5월 23일 안타깝게 요절했다.
에디스는 조용하고 진지한 여성이었고 진정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행동 속에서 반사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했다.
그녀는 고학을 하면서 군대 간 친구의 연로한 어머니에게 3년 동안 매달 한 말의 쌀을 보내던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이야기를 즐겨 사용했다.
그녀의 신앙은 1955년 크리스마스에 썼던 이 시 안에 잘 반영된다.
성탄절
오래전 하늘을 가로질러
그 빛나던 별이 앞서 갔다.
동방박사들은 그 빛을 따라갔고,
그들의 얼굴은 그 광채를 향했다.
그들의 신앙은 그 빛의 의미를
간파하는 탐구심으로 확고했다.
오늘날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 빛을 찾으며,
세계의 도처에서 그들의 얼굴을 들고
위로부터 오는 광채를 찾는다.
권세를 능가하는 그 힘,
평화의 길, 형제애,
생명의 길, 사랑의 길을 찾는다.
일신병원의 간호사 기숙사가 에디스 골트를 기념하면서 헌정된 것은 아주 적절한 일이었다.1)
1) 1961년 9월 9일 고미옥 선생 기념 머리돌이 새겨졌고 기숙사는 1962년 4월 22일 낙성식을 하고 Miss Gault 기념관으로 명명되었다.
정병준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