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세계대전중 폴란드의 바르샤바 봉기 (Warsaw Uprising, 1944년 8월 1일 ~ 1944년 10월 2일)
바르샤바 봉기 (Warsaw Uprising, 폴: powstanie warszawskie)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바르샤바를 독일 제3제국군에게서 해방시키기 위해 폴란드 국내군이 일으킨 일제 봉기이다. 당시 소련 붉은 군대가 독일군을 몰아내며 바르샤바 동부 외곽으로 접근하던 것과 시기를 같이했다. 그러나 소련군은 바르샤바 코앞에서 진격을 멈추었고, 그 사이 독일군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폴란드 봉기군을 진압했다. 외부의 도움이 전혀 없는 63일동안 바르샤바는 독일군의 잔혹한 진압 아래 파괴되었다. 바르샤바 봉기는 제2차 세계 대전 저항운동사에서 최대 규모의 단일 군사행동이다.

– 바르샤바 봉기 (Warsaw Uprising)
.날짜: 1944년 8월 1일 ~ 1944년 10월 2일
.위치: 폴란드 바르샤바
.피해: 폴란드 국내군 – 병력 45,000여 명, 피해 16,000여 명 전사 또는 실종, 15,000여 명 포로, 민간인 200,000여 명 사망, 바르샤바의 85% 이상 파괴 / 나치 독일 – 병력 39,000여 명, 피해 3,000명 전사, 9,000명 부상
봉기는 1944년 8월 1일 시작되었다. 폴란드 지하국은 소련 육군이 바르샤바로 진격중이던 것 (루블린-브레스트 공세)과 보조를 맞추어 폴란드 전역에서 봉기를 일으키려 계획했으며 (폭풍우 작전), 바르샤바 봉기는 이 상위 계획의 일부였다. 폴란드 저항운동가들의 목표는 우선 첫째로 독일 점령군을 도시에서 몰아내어 독일과 추축국이라는 거악에 맞서는 싸움에 힘을 보태는 것이었고, 둘째로 소련군이 바르샤바를 “해방”시키기 전에 자기들 손으로 바르샤바를 해방시켜 소련의 괴뢰집단인 폴란드 민족해방위원회에 대한 정통성 면에서의 우월성을 점유하려 한 것이었다. 또한 독일군이 사지 멀쩡한 폴란드인들에 대한 집단검속을 개시했고 모스크바에서 봉기를 독촉하는 등의 단기적 위협들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봉기 초기 단계에서 폴란드인들은 바르샤바 중심가 대부분을 점령, 해방구로 삼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소련군은 폴란드인들의 무전 접촉을 무시하고 바르샤바 경계 밖에서 대기만 하고 있었다. 이윽고 전열을 정비한 독일군과 폴란드인 사이에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9월 14일 소련군 휘하의 제1폴란드군이 비스툴라 강 동안에 도착했으나, 이들 중 강을 건너 바르샤바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1,200 명에 불과했다. 또한 붉은 군대는 이들을 증원하지도 않았고, 공중지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정황은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반공적인 폴란드 지하국 소속 저항운동가들이 독일군에게 분쇄되기를 바라고 고의적으로 그들을 방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원인이 되었다. 아서 쾨슬러는 바르샤바의 소련군의 태도를 일컬어 “후세 역사가들은 리디체의 일과 더불어 이것을 이 전쟁에서 가장 끔찍한 오명 중 하나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윈스턴 처칠은 스탈린과 루스벨트에게 영국에 소재한 폴란드 망명정부를 도와줄 것을 항변했으나 전혀 통하지 않았다. 처칠은 소련군의 공중지원 없이 왕립공군, 남아프리카 공군 및 영국 고등사령부 지휘하에 있던 폴란드 공군을 동원해 200개 이상의 저수준 보급품을 투하했고, 이후 소련군이 공중 교통을 정리한 이후에 미국 공군이 프랜틱 작전의 일환으로 대규모의 공중 투하를 한 차례 실시했다. 그러나 소련군은 서부전선의 미국 폭격기가 폴란드인들에게 보급품을 투하해준 뒤 소련 공군기지에 착륙하는 것을 불허했다.
바르샤바 봉기 때 발생한 사상자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폴란드 저항군 중 16,000 여명이 죽고 6,000 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또 폴란드 민간인이 150,000 ~ 200,000 명 죽었다,. 독일군의 가택수색으로 일부 폴란드인들이 보호해 주고 있던 유대인들이 노출되기도 했다. 독일군 사상자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해서 8,000 명 이상이고 부상자는 9,000 여명이었다. 시가전을 거치면서 바르샤바의 건물 4분의 1이 파괴되었다. 폴란드 저항군이 항복한 뒤에도 독일군은 남은 도시의 35%를 또 파괴했다. 1939년 폴란드 침공 때 발생한 피해에 1943년 바르샤바 게토 봉기 때 발생한 피해까지 더하여 바르샤바는 1945년 1월 독일군이 바르샤바를 방기하고 퇴각할 때까지 전쟁 이전의 85%가 파괴되었다. 바르샤바 봉기의 주도세력인 폴란드 국내군과 지하국은 봉기 실패로 완전히 와해되었을 뿐 아니라 독일군이 버리고 떠난 바르샤바를 소련군이 접수한 이후 그 지도부는 NKVD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수용소로 끌려갔다.
– 종전후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폴란드 인민 공화국에 의해 바르샤바 봉기에 대한 정보는 검열, 폐기되었으며 폴란드 국내군 (Armia Krajowa) 단어의 사용은 금지되었다.
1989년 폴란드 민주화 운동으로 폴란드 인민 공화국이 해체되고 폴란드 제3공화국(폴란드 공화국)이 성립되면서 바르샤바 봉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2004년 8월 1일 바르샤바 봉기 60주년을 맞아,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추모식 기념비에 헌화를 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1970년에 반나치의 인사 중 한 명이었던 빌리 브란트 총리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빌었었다.
이봐, 친구들아, 총검으로 무장하자
(Hej, chłopcy, bagnet na broń)
기나긴, 머나먼 길로, 뜨거운 가슴에
(Długa droga, daleka przed nami, mocne serca)
손에 카빈소총을 들고, 총검을 들고 포탄 속으로 가자
(A w ręku karabin, Granaty w dłoniach i bagnet na broni)
여명이 밝아온다, 바람이 불어온다
(Jasny świt się roztoczy, wiatr owieje nam oczy)
폐가 펌프질하고, 피가 뜨거워진다
(I odetchnąć da płucom i rozgrzać do krwi).
노래가 우리사이로 퍼져나간다
(I piosenkę, jak ręczę, nad nami roztoczy)
앞으로 전진 하는 행군 속에. 하나, 둘, 셋
(W równym rytmie marsza: raz, dwa, trzy)
(머리 위로)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Ciemna noc się nad nami roziskrzyła gwiazdami)
긴 밤과 낮 동안, 흰 견장은 먼지 길 위에 있다
(Białe wstęgi dróg w pyle, długie noc i dni)
새로운 폴란드의 승리가 우리에게 달려있다
(Nowa Polska Zwycięska jest w nas i przed nami)
앞으로 전진하는 행군속에. 하나, 둘, 셋
(W równym rytmie marsza: raz, dwa, trzy)
이봐, 친구들…
(Hej, chłopcy…)
바르샤바 봉기 당시 봉기군이 불렀던 노래
‘이봐, 친구들아, 총검으로 무장하자(Hej, chłopcy, bagnet na broń)’ – 폴란드어 원문 및 노래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