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太祖實錄)
조선전기 제1대 왕 태조의 재위 기간 동안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룬 실록이다.

내용
1392년 7월부터 1398년 12월까지 태조의 재위 6년 6개월간의 국정 전반에 대한 역사를 싣고 있다. 15권 3책.현전의 정족산본 (鼎足山本)은 필사본이고, 태백산본 (太白山本)은 인본 (印本)이다. 정식 이름은 ‘태조강헌대왕실록 (太祖康獻大王實錄)’이다.
태조가 재위 7년만에 정종에게 양위한 뒤 상왕 (上王) · 태상왕 (太上王)의 지위에 있다가 1408년 (태종 8) 5월에 죽자 이듬해 8월에 태종이 영춘추관사 (領春秋館事) 하륜 (河崙), 지춘추관사 (知春秋館事) 유관 (柳觀), 동지춘추관사 (同知春秋館事) 정이오 (鄭以吾) · 변계량 (卞季良) 등에게 명해 『태조실록』을 편찬하게 하였다.
이에 춘추관기사관 (春秋館記事官) 송포 (宋褒) 등이 조선에 있어서 실록 편찬이 처음일 뿐만 아니라 시대가 멀지 않고, 또 당시에 활동했던 인물들이 대부분 살아 있으므로 지금 『태조실록』을 찬수 (撰修)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하여 후일을 기다리자고 건의하였다.
그러나 태종은 찬수의 뜻을 굽히지 않고 태조 원년부터 정종 2년까지의 사초 (史草)를 제출하도록 각 사관 (史官)에게 명하였다.
그러나 서울 거주자 10월 15일, 지방 거주자 11월 1일로 정해진 제출기한이 지나도록 사초가 잘 들어오지 않자, 사초를 제출하지 않은 자에 대해 자손을 금고 (禁錮)하고 은 20냥의 벌금을 징수하도록 하는 처벌규정을 만들어 사초 제출을 독려하였다.
그리하여 1410년 정월부터 하륜 · 유관 · 정이오 · 변계량 등이 주축이 되어 춘추관기주관 조말생 (趙末生) · 권훈 (權壎) · 윤회 (尹淮), 기사관 신장 (申檣), 외사관 (外史官) 우승범 (禹承範) · 이심 (李審) 등과 함께 『태조실록』 편찬에 착수해 1413년 3월에 완성하였다.편찬 완료 직후 출판하려 했으나 정부에서 번란중복 (繁亂重複)된 기사가 많다 하여 개수 (改修)를 주장해 출판하지 않았다.
그 뒤 1438년 (세종 20) 변계량이 지은 헌릉 (獻陵) 비문 (碑文) 가운데 1398년 (태조 7)의 제1차 왕자의 난과 1400년 (정종 2)의 제2차 왕자의 난에 대해 사실과 어긋나게 기록한 내용이 있다는 논의가 있자 세종은 이를 개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당시 편찬 완료된 『공정왕실록』 (정종실록)과 『태종실록』도 아울러 개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4년 뒤인 1442년 춘추관 감관사 신개(申槩), 지관사 권제 (權踶), 동지관사 안지 (安止) 및 집현전학사 남수문 (南秀文) 등의 주관으로 실록개수가 이루어졌다.
그 뒤 1448년에 지춘추관사 정인지 (鄭麟趾) 등이 다시 증수 (增修)하고, 1451년 (문종 1) 고려의 폐왕 (廢王) 우 (禑)를 신우(辛禑)로 고치는 간단한 개수를 거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태조실록』은 1431년 (세종 13)에 『태종실록』이 완성되자 『공정왕실록』 · 『태종실록』과 함께 고려시대의 실록을 보관해둔 충주사고 (忠州史庫)에 봉안하였다.

그러나 얼마 뒤 이것만으로는 영구 보존이 어렵다는 지적이 있자 1445년까지 위의 삼조실록 (三朝實錄) 3부를 더 필사해 춘추관과 충주 및 신설한 전주·성주 사고에 각각 1부씩 봉안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된 정족산본의 태조·정종·태종의 삼조실록은 이 때 필사해 전주사고에 봉안한 것이다.
『태조실록』은 태조가 즉위 이후 1398년 (태조 7) 12월 말일까지 6년 6개월 간에 있었던 정치·외교 · 국방 · 경제 · 사회 · 문화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이 연월일순에 의해 편년체 (編年體)로 서술되어 있다.
태조는 제1차 왕자의 난 직후인 1398년 9월 5일에 세자에게 양위했으므로 재위 기간은 실제로 이때까지지만, 『태조실록』에서는 그 해 말까지 수록범위로 삼았다.
이 시기는 조선 개국 초기로서 신왕조가 사대정책 · 억불숭유정책·농본정책을 기본정책으로 내세우는 한편, 고려 왕족과 신하들을 제거하는 동시에 한양 (漢陽)으로 도읍을 옮겨 국가의 면모를 새롭게 하고 제도개편을 착수해 기반을 조성해나간 시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왕자 사이에 왕위계승을 둘러싼 혈투가 벌어지는 등의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와 같은 개국 초창기의 사실 (史實)은 물론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 기본적인 자료가 된다. 1920년대 이후 조선 역대왕 (태조∼철종)의 실록이 여러 차례 영인될 때, 이 실록도 함께 영인, 간행되었다.
1972년에 모두 2권의 번역본 『태조강헌대왕실록』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출간하였고,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번역본과 원문을 공개하고 있다.
(http://sillok.history.go.kr/)


참고 =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