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샤먼과 대만 타이페이 & 한국 백제유적 방문기 (1)
필자는 지난 2025년 10월 15~31일 사이에 중국 샤먼 (Xiamen, 厦門 하문)과 대만 타이페이 (Taipei, 臺北 대북) 그리고 한국방문 일정으로 여행했다. 이중 중국 샤먼시와 대만 타이페이 방문중 인상깊었던 부분과 한국에서 방문한 백제유적 (공주, 부여)에 대해 몇 편 기록하고자 한다. _ 편집자 주.
중국 푸젠성 남부에 위치한 샤먼 (Xiamen, 厦門 하문)
10월 15일 샤먼항공편으로 가오치 국제공항 (Xiamen Gaoqi International Airport)을 통해 먼저 샤먼지를 방문했다.
사실 주요 목적지는 대만이었는데 샤먼항공에서 경유지 호텔을 제공해 즐겁게 샤먼시를 방문했다.

샤먼 가오치 국제공항 (厦门高崎国际机场, Xiamen Gaoqi International Airport)은 중국 푸젠성 샤먼시에 있는 샤먼 항공의 메인 공항이다. 푸젠성 (福建省) 샤먼시 후리구 (湖里區)에 있는 공항으로, 샤먼 도심과는 약 10km 떨어져 있다. 일제 점령기인 1941년에 군용공항으로 설립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47년부터 민간운항을 시작하였다. 1955년 재건축되었으며, 1982년 대대적인 확장 공사를 진행하여 1983년 10월 22일 공식 개항하였다. 1996년 11월 제3터미널을, 2014년 12월 제4터미널을 개관하였다.
약 20년 전 한창 2008년 올림픽을 준비하던 중국을 방문했던 터라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호기심에 샤먼시를 관통하는 버스로 이동하며 한참이나 밖을 내다보았다.
샤먼 (廈門, 하문)은 중국 푸젠성 남부에 있는 지급시로, 국제적으로는 아모이 (Amoy)로도 알려져 있다 푸젠성 내에서는 가장 큰 도시다. 중국의 5대 경제 특구 중 하나이고, 부성급 시로도 지정되어 있다.

개관
일찍이 도시의 이름은 ‘下門’ (하문)으로 쓰였고 “낮은 문”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아마 주룽강의 하구에 위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것으로 보인다. “下門”은 호키엔어 (민난어의 일종)의 장저우 방언로 ‘Ē-mûi’로 발음되는데 이것은 “아모이”라는 이름의 근원이 되었다. 이 방언은 여전히 도시의 서쪽과 남서쪽에서 사용된다. 샤먼은 조계시대 이후로 Amoy란 이름으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훗날 정부 당국은 下門이라는 이름이 세련되지 못하다고 하여 도시의 이름을 厦門으로 바꿨다. 이 이름은 만다린어로는 발음이 같지만 민난어로는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下門의 복건어로 발음되는 이름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원래 한적한 어촌이었으나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청나라에 요구한 개항장 중 한 곳이 되면서 지금의 샤먼시 중심지인 아모이 섬에 영국인 조계가 들어섰고 점차 발전하기 시작했다. 1933년 잠시동안 푸젠성에 존재하였던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공화국이 샤먼을 특별시로 지정할 정도로 이미 거대한 도시였다. 그러한 발전세는 1949년 중국 건국 후 꺾였으나 1981년에 선전시, 산터우시, 주하이시 등과 함께 경제특구로 지정되면서 다시 발전하기 시작했다.

현재 샤먼시는 중국 푸젠성 남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성 내 최대도시이자 부성급시이다. 인프라가 집중된 쓰밍구와 후리구의 샤먼섬 (厦门岛)과 육지부분인 지메이구 등 2개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은근히 구조가 홍콩섬, 구룡반도로 나뉜 홍콩과 비슷해 보인다.
총 6개의 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쓰밍구와 후리구는 샤먼 본섬 내에, 나머지 4개 구는 섬 바깥의 육지에 위치해 있다.
현지에서는 흔히 샤먼 본섬 지역을 도내 (岛内), 그 외 4개 구 지역을 도외 (岛外)라고 칭하는데, 사실상 도내는 샤먼의 도심, 도외는 외곽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인구는 행정구역 기준 4,010,000명, 도시권 기준 3,531,347명이다.
역사적으로 근대 시기 들어 홍차를 수출하는 무역항으로 성장했고, 19세기에는 개항장이 되었다. 특히 구랑위 섬은 과거 영국 조계지로 아름다운 유럽풍 건물이 많아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중국의 주요 경제 도시 중 하나이다. 킹롱 (진룽, 금룡), Yongshi (勇仕), 루이싱커피 등이 샤먼에 본사를 두고 있다.
과거 영국이 청나라와 무역을 할 때 홍차 (black tea)를 저장했던 곳이 샤먼이다. 차를 영어로 Tea라고 하는데, 그 어원이 민남어로 차 (茶)를 뜻하는 ‘테 (tê)’에서 유래된 것이다. 스페인어 te 역시 푸젠인들을 통해 중국을 처음 접했기 때문에 차를 뜻하는 단어도 똑같은 셈이다.
교육에 있어서 샤먼에는 샤먼대학 (厦门大学)과 화차오대학 (华侨大学) 등이 있으며 이 중 샤먼대학교는 중국의 명문 대학 중 한 곳이고 샤먼 섬인 쓰밍구 (思明区)에 있는데 캠퍼스가 아름다워 아름다운 캠퍼스 방문지로도 유명하다.

한편 샤먼시의 정확한 교회 수나 성도 수에 대해서는 공개된 자료가 없어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샤먼은 역사적으로 기독교 전파의 중심지였으며, 여전히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신앙 공동체가 존재한다고 전한다.
하지만 당국의 감시와 탄압으로 인해 일부 대형 가정교회들이 폐쇄되거나 활동이 제약받고 있으며, 실내 예배가 금지되기도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19세기 중엽 외국 무역항으로 개방되면서 개신교 선교가 활발히 이루어진 지역이었다.
현재도 가정교회 공동체가 활동하고 있으나, 당국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 유지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대형 가정교회가 폐쇄되거나, 실내 예배가 금지되는 등 당국의 압박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샤먼은 몬순 습윤 아열대 기후다. 여름은 덥고 습하며, 7~8월에는 평균 32 °C까지 올라가고, 겨울은 습하고 차며 1월에서 2월은 10 °C 에 이른다. 보통 5월에서 11월까지 4~5번의 태풍이 몰아친다. 가장 더울 때는 39 °C까지 기록하고, 가장 추운 겨울에는 2 °C까지 내려간다. 연간 평균 강수량은 1,300mm 정도로 강한 북동풍이 자주 분다.

역사
진나라 때는 진안군 동안현이었다.
송(宋)대 이후는 천주부(泉州府) 동안현(同安縣)에 소속되었다. 가화서(嘉禾嶼)라는 섬으로 불렸다.
명(明)대에는 1378년 하문성(廈門城)이 축조되고, 하문(廈門)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청(淸) 순치(順治) 7년, 남명(南明) 영력(永曆) 4년에 해당하는 1650년, 정성공이 근거지로 삼았다.
순치 12년(1655) 명나라를 생각한다는 의미의 사명주(思明州)를 설치하였다.
강희(康熙) 2년(1663), 사명현(思明縣)으로 격하되었다.
강희 19년(1680), 사명현이 철폐되었다.

강희 23년(1684), 민해관(閩海關)이 설치되었다. 또한 대하병비도(臺廈兵備道)가 설치되었으며 도윤(道尹)은 대만부(臺灣府) 관청에 주둔하였다.(옹정(雍正) 6년(1728) 대만부는 대만도(臺灣道)로 변경된다.)
강희 24년(1685) 5월, 정식으로 대외업무를 처리하였다.
강희 25년(1686), 하문해방동지(廈門海防同知)를 설치하였다. 천주부동지(泉州府同知)를 분리시켜 하문에 관아를 설치하였다.
강희 28년(1689) 영국동인도공사 화물선이 하문에서 여러 차례 직접 중국 차를 수입하여 영국으로 가져갔다.
옹정 5년(1727), 흥천도(興泉道) 관아가 천주에서 하문으로 이전하였다. 후에 흥천도는 흥천영도(興泉永道)로 바뀐다.
건륭(乾隆) 22년(1757), 광주(廣州) 일구통상(一口通商) 체제, 즉 캔톤 시스템(Canton system)이 실행되면서 하문을 포함한 여타 다른 해관들은 문을 닫게 되었다.
1841년 아편전쟁에서 영국군에 점령되어, 1842년 난징조약에 의해 외국에 개항을 하고, 1860년부터는 우롱차의 적출항으로 외국에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1862년 영국 조계가, 1902년에는 고랑서(鼓浪嶼, 구랑위) 공동조계가 설치되고, 외국 상사와 회사들이 진출하게 되었다. 그 후 아모이의 우롱차는 일본과 대만의 경쟁에 뒤처져 쇠퇴하게 되었다. 또 대만과의 무역도 일본의 대만 점유에 의해 쇠퇴하였다.
아모이에 대량의 이민지들이 생겨나 무역은 유지되게 되었다. 또 20세기가 되면서 동남아로부터 화교의 투자가 시작되었다.
1935년 아모이의 시제도가 성립되었지만, 1938년에 일본 해군에 의해 점령되게 되고, 해방이 될 때까지 지속된다.
그 후 국공내전으로 1949년 10월에 중국공산당에 의해 점령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1973년 동안현을 흡수하고 1997년 동안구가 되었다.
개혁개방정책에 의해 1981년에 경제특구가 설치되고, 주로 대만 연안의 자본을 모아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샤먼과 대만
푸젠성 남부의 구룡강 하구 부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모이섬이나 구랑위섬 (鼓浪嶼)을 포함한다. 다만 구랑섬에서 가까운 금문도는 중화민국 (대만)의 영토이다. 대만 해협을 건너 중화민국의 타이완과도 접하고 있다.
대만이 실효 지배하는 금문도 (진먼)가 말 그대로 샤먼 바로 앞바다에 있기 때문에 양안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긴장이 고조되는 곳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느껴지지 않지만 샤먼은 중국과 대만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곧바로 전방 지역이 된다.
특히 진먼다오 (金門島 금문도)와 매우 가까워 양안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긴장감이 돈다.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대만 방문 및 중국 군사훈련 사태 당시 중국군이 샤먼에 대거 집결하고 훈련을 벌여서 시민들이 불안에 떨기도 했다.
현재는 대륙에서 가장 가까운 대만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중국인들이 진먼을 찾으며 대만과 가장 가까운 중국 측 대도시인 데다 언어, 식문화 등도 유사해서 대만인도 샤먼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런 만큼 대만을 어필하는 상호들이 많다.
대만과 가깝기 때문에 식문화도 비슷한 부분이 많고 대만식 중국 요리를 파는 곳들도 많다.
대만에 못 가 본 사람들은 샤먼에서 밀크티 같은 대만 먹거리를 간접체험해 보기도 한다.

샤먼시는 대만교류시범지역이다.
중국 정부는 대만인에게 거주증을 발급하는 정책을 제일 먼저 샤먼시에 도입했다.
거주증이 있으면 대만인이어도 본토인이 누리는 공공서비스를 모두 누릴 수 있다.
대만인과 대만기업의 경제활동에 특혜를 주는 법들도 많다.
2025년 1월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서 중고주택 ㎡당 매매가 5위를 기록했다. ㎡당 약 820만원에 거래되었다. 베이징의 66% 수준이다.
샤먼의 구랑위 섬은 과거 영국 조계지로 아름다운 유럽풍 건물이 많으며 중국 본토인과 대만인 둘 다 많이 찾는다.
최근 들어 샤먼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대만 외에 푸젠성 고유의 특징을 강조하는 음식점이나 지역을 강조하는 상점들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샤먼과 대만은 서로 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적, 인적 교류도 많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중국공산당과 대만의 중국국민당 등 범람연맹 진영이 함께 모여 양안관계를 논의하는 양안해협포럼이 샤먼시에서 열리는 등 양안간 정치 교류의 장이 되었다.

관광
유명한 관광지로는 샤먼대학 (厦门大学), 중산로 (中山路), 남보타사 (南普陀寺), 르웨구온천 (日月谷温泉), 토루 (土楼), 구랑위 (鼓浪屿) 등이 있다.
남보타사는 푸젠 지역 남방 불교 중심지로 항간에는 이 절이 전설 속 남소림사라는 소문이 있기도 하다.
소림사가 정저우의 본찰 말고 지방에도 몇 개 더 있는데 그중 푸젠성에 있는 게 남소림사이며 어느 절이 남소림사인지에 대해 현재 의견이 분분한데 남보타사가 유력 후보로 올라 있다.
그리고 구랑위 섬은 샤먼 섬에서 유람선으로 갈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인데 과거 영국인들이 살던 조계지라 유럽식 건물들이 대거 남아 있다. (계속)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임운규 목사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