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교육 칼럼
마음의 문을 열고 스스로 움직이는 아이
우리 어른들은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해결 하고 있습니까?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라도 혼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은 아닌지요? 아니면 어른이 되어서도 어떤 일들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어른들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것쯤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을 것 입니다. 하지만 요즈음 창의적인 인재들을 사회에서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우리아이들을 창의적인 인재로 키울 수 있는가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 일 것입니다. 창의적인 인재는 어떤 사람을 일컫는 말일까요? 우리나라 옛말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무지한 사람을 빗대놓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영특한 아이를 일컫는 말도 있습니다. 전자는 창의적이지 못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창의적인 인재를 말하는 것이지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은 배우지 않은 것은 알려고 노력해 보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사람은 배우지 않아도 해결책을 생각(연구)하는 사람인 것이지요.
일전에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해 본 내용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떤 5학년 아이가 선행학습으로 중학생들이 배우는 수학 문제를 척척 푼다고 하여 ‘영재’대접을 받고 있었습니다. 또 한 아이는 같은 5학년 인데 창의교육을 받으며 자기 학년의 수학 문제들을 모두 풀어내는 정도의 ‘우등생’이었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한 가지 실험을 하였습니다. 고등학생들의 대입 수능 시험에 나오는 수학 문제를 풀어보라고 제시하였습니다. 문제를 읽어본 ‘영재’는 문제를 풀어 보려는 노력도 해 보지 않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는 이런 문제 아직 배우지 않았어요.” 라고 말입니다. 헌데 ‘우등생’은 문제를 끌어안고 풀어 보려고 낑낑대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푸는 것이지?”라고 꼼꼼히 생각하며 말입니다. 두 아이를 비교할 때 어떤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이렇게 대비되는 성적우수자(?) 들이 사회에 나와서 대접받는 쪽은 ‘우등생’쪽인 것이지요. 문제해결능력이 있는 사람을 원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을 문제해결능력이 있는 창의적 인재로 키우려면 우리 부모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부모님들 꼭 있습니다. 아침에 자고 있는 아이를 “ooo야! 일어나라.” 아이가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명령을 합니다. 겨우 잠에서 깨어난 아이를 향하여 연이은 명령이 떨어지죠. “ooo야 세수하고 밥 먹어라.” 이 상황에서 심지어는 목청을 높이고 야단을 치는 부모님들 꼭 있습니다. 아이의 마음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식탁에 와서 앉은 아이에게 “빨리 밥 먹어라 학교 늦는다.” 등등의 명령조의 잔소리가 이어지는 거죠. “준비물이 뭐니?” “챙겼니?” “이빨은 닦았니?” 계속해서 명령은 이어집니다. 옷은 이거 입어라, 저거 입어라, 학교 가자, 끝나면 전화해라, 학원에 늦으면 안 된다. 등등 이렇게 시작한 하루가 저녁에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씻어라, 게임은 30분만 해라, 숙제 했니? 등 이제 자라! 까지 하루 종일 아이에게 쏟아진 명령들을 수행하느라 우리 아이들은 자기 머리를 자기가 사용하지 못하고 또 하루를 지나게 되는 것이지요. 마음 문을 굳게 닫은 아이가 얼굴에 밝은 표정이 나올 수 가 없는 것이 당연하고요. 말투가 퉁명스러워 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이러한 날들을 보내며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가고 성적은 유지가 되지요, 엄마가 원하는 만큼의 성적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아이들은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회사에 입사하여 어떤 일이든, 어떤 상황이던지 지시하지 않으면 스스로 해결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자녀들이 위와 같은 꼭두각시가 되어 일어나라 해야 일어나고 먹어라 해야 먹는 그런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바꾸셔야 합니다. 아이 스스로 판단하여 일을 해 나가도록 말입니다.
제 어릴 적 기억을 하나 들추어 내면 이렇습니다. 제게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에 다닐 때 입니다. 어제 아이들과 늦게까지 동네 골목을 뛰어다니며 ‘숨바꼭질’과 ‘서로치기’라는 놀이를 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 아주 늦게까지 잠을 잔 것이지요 항상 그러셨지만 그날도 어머님은 저를 깨우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전 10시쯤 해서 일어난 저를 데리고 학교 앞으로 가셨습니다. 그 때 저는 깜짝 놀랐지요 “이상한데,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없지? 길거리가 조용하네!” 매일 아침 학교에 등교하면서 느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말소리와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 등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날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지요. 학교에 가니 운동장에 아이들이 뛰놀며 체육 수업을 하고 있었어요. 나는 왜 학교 담장 밖에 있고 아이들은 안에 있는지 어리벙벙하였답니다. 그것이 늦잠을 자고 학교에 제 시간에 가지 못한 즉 지각과 결석이라는 엄청난 상황인 것을 느끼고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제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절대로 정말로 절대로 늦잠을 자본 일이 추후론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몇 시에 일어날 것인지 생각하며 잠자리에 드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그런 습관이 생긴 것입니다. 문제 해결 능력은 아이들이 이런 실수를 통하여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시간을 주셔야 만들어 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제안 드립니다. “아이는 스스로 크게 놔 두자! 내가 키우는 아이는 내 능력 이상이 되기 어렵고 우리들이 스스로 크는 아이라 함은 하나님이 양육하시는 아이라는 것을 알고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하고 실행에 옮긴 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그런 창의적인 인재로 키우자” 라고요. 그리고 이것은 비밀인데요 이렇게 스스로 크게 놔두는 것이 훨~씬 쉬워요. 그리고 훨~씬 잘 커요. 그런데 그게 쉽지는 않아요. 좁은 길이예요. 왜냐하면 남들이 하지 않는 그런 길이기 때문이지요.
우종필(아름다운교회 안수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