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교육 칼럼
소주병과 참기름 병
어린 시절 우리는 가마솥이 걸려있고 아궁이가 있는 그곳에 나무를 넣어 불을 때야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그런 시설이 부엌에 있었지요? 볏 집을 넣어 불을 사르고 이어 불이 붙으면 나무를 넣어 불을 괄하게 하면 밥이나 국을 가마솥에 서 끓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하실 것입니다. 부뚜막이란 부분은 가마솥 언저리라고 말하는 그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항상 참기름 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 기억으로는 커다란 병에는 들기름이 들어있다고 말씀하시고 작은 병에는 참기름이 들어있다고 어머님께서 말씀하셨었습니다.
제가 글을 깨우치고 숫자를 헤아리며 초등학교에 입학을 할 때쯤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다른 친구 분들이 함께 대청마루에 앉으시고 어머님께서는 작은 두레 반상에 참기름 병을 올려놓으신 채로 얼마간의 간단한 먹을거리들을 가져다 놓으셨습니다.
아버님과 친구 분들이 참기름을 맛있게 드시더라구요. 얼마나 맛있게 “쫍쫍” 소리가 나게 드시던지 나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지요.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작은 병에 들어있던 것은 참기름이 아니라 소주라는 술이었습니다. 많은 어른들이 술을 드시지만 그 술은 적당히 가 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싸움의 발단이 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죄를 짓는 빌미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깨달아야 합니다. 소주병에 참기름이 담기면 더 이상 소주병이 아니고 참기름 병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에 그들 스스로 무엇을 담을 수 있게 부모나 어른들이 이끌어 주어야 할 것인가? 또한 인간의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한다면 우리 아이들의 가치관을 겉모습에 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속 사람에게 두어야 하는지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처럼 우리도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가치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를 가르칠 때에 아이들은 겉모습이 아닌 자신의 마음과 머릿속을 참으로 가치 있는 것들로 채우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겉모습을 텔레비전에 비쳐지는 그들의 모습으로 꾸미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잘못 판단하고 있는 중요한 부분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혹 어른들도 이렇게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예쁘게 생긴 사람이 가수가 되고 연기자가 된다.” 고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연기자들이 그들의 얼굴에 칼을 대고 성형수술을 하고, 또는 그들의 몸에서 일용할 양식 이상의 음식으로 저축되어진 비개덩어리들을 흡입하여 내는 것이겠지만요.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못생긴 가수 못생긴 연기자가 아주 많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수는 노래를 정말 잘해야 하는 것이지요, 연기자는 연기를 잘해야 하는 것이지요. 연기를 잘하는 연기자가 얼굴까지 예쁜 것이지요,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얼굴까지 예쁜 것이라니까요. 우리 아이들이 외모지상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그들의 가슴에 참 가치관을 지니도록 어른들이 책임지고 가르쳐야 합니다. 내 아이는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스승님인 어머니를 만나는 것이고 그 어머니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자신들의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니까요.
부모님들의 말 속에도 참기름을 담으시고요, 가정의 식탁에도 참기름을 담으시기 바랍니다. 여행 중에 있더라도 그 차안에 참기름을 부어 담아 가시기 바라구요, 아이들이 사용하는 말 중에 소주가 튀어 나오는 경우에 즉시 참기름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시기 바랍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습니다. 세 살 이전에 우리 아이들의 가슴에 참기름을 담아주시고 아이들의 머리에 참기름이 들어 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주셔야 합니다. 그런 노력이 선행되어져 있다면 그 아이는 매를 맞지 않고 학교에 다녀도 올바른 학생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려서 세 살 이전에 참기름으로 준비되지 못한 어린 아이들도 물론 있을 것입니다. 이 어린이들을 더욱 세심하게 보살펴야 합니다. 부모님이, 학교 선생님이, 동네 어른이, 교회 장로님들이 왜냐 하면 우리 어른들의 눈에는 그들의 잘못된 심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자라서 세상에게 야단맞으며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야 할 것 같은 아이들을 분별해 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라고 하지 않습니까? 화초를 화분에 기를 때에 하루만 물을 주지 못하면 화초는 힘을 잃고 축 늘어지거나 누런 잎을 달고 물을 필요로 한다는 표현을 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모든 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인간들이나 여타의 생명체들이 생존하는 방법이니까요.
이제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하는 일이 확실해 졌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잘 관찰하여 건강하지 못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목숨 걸고 전도하는 일도 같은 맥락에서 일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종필(아름다운교회 안수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