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호주 선교사 에이미 스키너와 통영 – 한호선교 130주년 기념도서
에이미 스키너 저 / 서상록, 양명득 편저 / 동연출판사 / 2019년 4월 29일
에이미 스키너(Amy G M Skinner)는 비치워스(Beechworth)에서 의사의 딸로 태어나 거기서 자랐다. 그녀가 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멜번 대학 일학년 때 학생자원운동(SVM)의 회원이었던 친구들의 영향을 통해서였다. 그 후 수 년 동안 선교사로서 가야한다는 확신이 증가했고, 학생기독운동 대회들 안에서 확고해졌다. 그녀는 자원자 서원 카드에 서명했다. 그녀는 PWMU에 지원했고 디커니스 훈련소에서 일정한 훈련을 받은 후에 한국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엘리자베스 에버리와 함께 여행을 떠났고 1914년 9월 9일에 부산에 도착하였다.
그녀는 거창에서 언어를 배우면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뛰어났다. 그녀는 1916년 4월까지 소녀들을 위한 작은 학교의 책임을 맡았고 마산의 맥피 선교사가 휴가를 떠난 사이 의신 여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학교에서 실재로 가르치는 일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녀는 1920년 휴가를 떠날 때까지 교장 직을 수행했다. 그 시기에 그녀는 또한 야간학교의 책임을 맡았고, 지역 여성 주일학교와 어린이 주일학교를 도왔고, 여러 차례의 지역 방문을 하면서 사역회에서 가르쳤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서 스키너는 통영에 배속되어 교육사업의 책임을 맡았다. 그 후 19년의 대부분을 통영에서 지내면서 그녀는 여성들, 소녀들, 유치원 어린이들을 위한 다면적인 교육 프로그램들을 운영했다.
그녀는 유치원을 지도하면서 그것이 훌륭한 전도기관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유치원 어린이들은 자신들의 부모를 교회로 인도하였다. 그녀는 또한 준 초등학교(sub-primary school)의 교장, 낮에 학교에 올 수 없는 소녀들과 여성들을 위한 야간학교의 교장으로 섬겼고, 시골학교의 교사들을 훈련시켰다.
그녀는 여성 프로그램들을 운영했고, 여성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많은 여성들이 교회의 세례교인이 되도록 준비시켰다. 그녀는 산업학교를 보살피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 했는데 그 학교는 1935년에 동래로 이사했다. 이 프로그램은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수예품 등의 생산품을 만들어 팔아 자활할 수 있게 하고, 오후에는 공부하여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왔다. 그녀는 5년 과정의 성경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새로운 지도자들을 준비시키는 과정을 운영했다. 게다가 그녀는 연간 사경회에서 가르치고 전도부인들을 지도하면서 통영 선교지부의 전도사역에서 한 몫을 담당했다.
에이미 스키너는 한국에서 26년을 섬긴 이후에 1940년에 휴가를 떠났고 전쟁이 발발하여 돌아올 수가 없었다. 그녀가 섬기는 기간 동안 줄 곳, 그녀는 경제적 불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자신을 내어주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독신 여성사역자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1944년 뉴헤브리데스로 갔고 빌라에 있는 이리리키 지역 학교(the Iririki District School)에서 6년간을 가르치며 소녀들의 교육을 발전시켰다. 그녀는 또한 뉴헤브리데스 교회의 여성 프로그램도 발전시켰다.
스키너는 1954년 7월 9일에 멜번에서 사망했다.
목차
축하의 글 / 인명진
축하의 글 / 강석주
추천의 글 / 이상규
격려의 글 / 박형균
발행의 글 / 서상록
편저자의 글 / 양명득
1장 에이미 스키너의 선교와 일생
2장 에이미 스키너 선교사의 글 모음
3장 에이미 스키너 선교사를 추모하며
4장 호주교회의 통영 선교
5장 통영 호주선교부의 근대 교육과 의료 활동
6장 호주 선교사와 통영 항일 민족운동
저자 및 역자소개
– 저자: 에이미 스키너
한국명 신애미, 1889-1954.
호주 빅토리아주 비치워스에서 출생
멜본대학교 학사 졸업, 교육학 수료
호주빅토리아장로교총회 파송 선교사
1914-1916년, 1927-1928년 거창 선교
1916-1920년 마산 선교, 의신여학교 교장
1921-1940년 통영 선교, 진명유치원, 진명여학교 교장
1940년 호주로 귀국
1944년 남태평양 뉴헤브리디즈 선교사
1954년 호주 멜버른에서 사망
– 편저 : 서상록
1937년 경북 경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상 정규 중.고등학교 과정을 밟지 못했으나 고려대 정외과에 합격했다. 운영하던 회사가 어려워져 빚잔치를 하고는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 벼룩시장에서 각설이 타령으로 새둥지의 기틀을 마련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부동산 회사를 세워 교민사회의 재력가로 성장했다.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이 돈은 많지만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하원의원에 세 번 도전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 후 삼미그룹 부회장으로 발탁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1997년 말 삼미그룹이 부도를 내자 경영인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고 사표를 냈다. 그러고는 인생 눈높이를 낮추어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인 웨이터 구직 신청서를 내는 파격적인 선택을 해 화제를 모았다. 롯데호텔의 ‘쉔브룬’에서 웨이터로 일하다 노권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받았다. 그 후 서울외국어대학교대학원 부총장으로 재직했으며 지금은 대학과 기업체, 지방자치단체에서 강연을 하며 인생을 즐기고 있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중시하여 개인 홈페이지 www.suhsangrok.com과 네이버 카페 ‘대통령제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작으로 ‘호주 선교사 에이미 스키너와 통영’, ‘미쳐야 청춘이다’, ‘한국의 명강의’ 등이 있다.
– 편저: 양명득
다문화 교육가와 컨설턴트로 지난 10여 년 동안 호주의 여러 민족을 대상으로 교육과 워크숍을 진행해 왔으며, 호주연합신학대에서 다문화 관련 과목들을 강의하고 있다. 또한 그는 다문화 사회, 교육, 신학, 그리고 교회에 대한 수권의 책을 한글과 영문으로 출판였는데 ‘호주이민 한인교회 30년’, ‘하나님이 보내신 땅에서’, ‘호주한인 50년사’, ‘중국 선교는 지금’ 등이 있다. 호주 시드니 대학, 호주 연합신학대학,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호주 찰스스터트대학에서 다문화 신학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최근작으로 ‘호주 선교사 찰스 맥라렌’, ‘호주 선교사 에이미 스키너와 통영’, ‘다문화 사회 다문화 교회’ 등이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