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멘토인가요? 스승인가요?
‘길잡이’ 또는 ‘길라잡이’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새로운 곳을 찾아 갈 때 길을 인도해 주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에도 길잡이가 있습니다. 인생의 길잡이 역활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멘토’ 나 ‘스승’ 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럼, 여러분은 인생의 길잡이 역활을 해 주시는 ‘멘토’ 나 ‘스승’이 있으신가요? 요즘은 ‘스승’이라는 단어 보다는 ‘멘토’ 라는 단어가 더 ‘대세어(요즘 가장 잘 사용되어지는 언어)’가 되고 있습니다만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멘토’ 와 ‘스승’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멘토’와 ‘스승’에 대하여 나누고 싶습니다.
먼저, 멘토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옛날 트로이 전쟁때 그리스 연합국 중에 소속돼있던 ‘이타카’의 왕인 오디세우스가 있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전쟁에 나가면서 자신의 어린 아들을 친구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면서 이 아들이 훌륭한 왕이 될 수 있도록 잘 돌봐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왕의 아들을 맡은 친구의 이름이 바로 ‘멘토’였습니다. 왕이며 친구인 오디세우스의 부탁을 받은 멘토는 왕의 아들을 친아들처럼 정성을 다해 훈육하면서 키웠습니다.
멘토는 왕의 아들에게 때론 엄한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때론 조언자로 또한 자상한 선생도 되었습니다. 이런 멘토의 노력으로 인하여 왕의 아들은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왕의 아들에게 있어서 멘토는 더할 나위 없이 커다란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것입니다. 10년 후에 오디세우스 왕이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다시 돌아왔을 때 철부지였던 왕의 아들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게 성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디세우스 왕은 자신의 아들을 그렇게 훌륭하게 교육시킨 친구에게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역시 자네다워! 다시 말해서, 역시 ‘멘토(Mentor)다워!’ 라고 크게 칭찬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백성들 사이에서 훌륭하게 제자를 교육시킨 사람을 가리켜 ‘멘토’라고 불러주는 호칭이 유래 되었다고 합니다.
멘토는 사람의 이름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왕인 아버지를 대신하여 아들이 왕으로써의 역활을 잘 해낼 수 있도록 준비시켜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멘토라는 단어를 사용할 땐,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거나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멘토의 도움에 대하여 멘토링(mentoring)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겸비했으며 왕이 신뢰할 수 있던 사람인 멘토가 1:1로 왕의 아들을 지도하고 조언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멘토라는 의미는 원래의 의미와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요즘 멘토의 의미는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의 조언’ 에 다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일단 세상적인 성공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어야 멘토라는 높은 레벨(?)에서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느낌입니다. 요즘 방송에 나오시는 일명 ‘스타강사’ 들의 강의들의 대부분의 핵심 내용은 ‘성공지향을 향한 방법’ 의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 라든지 ‘ 얼마만에 얼마를 벌 수 있다’는 식의 멘토링은 멘토가 가지는 본래적인 역활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럼, ‘스승’ 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스승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교육이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거리다가 이제는 더 이상 서 있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 한국사회에서는 ‘스승’ 이라는 명칭에 자체에 대하여 어색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혹시, ‘두사부일체’ 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조폭 이인자의 자리에 있는 주인공이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따야 한다는 조직의 명령(!)에 늦깍기 고등학생으로 학교 생활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에서 일진 학생 한 명이 ‘선생님께’ 행폐를 부리자 그 일진 학생을 혼을 내 주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것들이….” 뒷부분은 거칠은 표현(?)이라 생략합니다. 아무리 조폭이라도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담긴 이 장면을 보면서 많이 웃었습니다. 이 말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스승은 그 존재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으며 그분의 발자취 또한 존경한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이 시대의 멘토가 한 사람의 삶을 성공적으로 준비시켜주는 역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스승은 한 사람의 인격적인 성숙을 준비시켜주는 역활을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어쩌면 이 시대의 멘토는 성공한 사람들에게만 붙여주는 성공증명서 같은 것이라면 스승은 성공이라는 저울의 눈끔을 넘어선 인격증명서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멘토들에게 스승이라는 호칭을 붙여주는 것은 어색한 일이지만 모든 스승들에게 멘토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이 어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공적인 삶보다는 인격적인 삶에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시대의 멘토들이 스승으로써 스스로도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얼마전 아주 오랫만이 ‘스승의 은혜’ 라는 노래를 불러보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호주 이민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13년전에 시작되었던 어느 신학교의 마지막 종강예배에 참석했었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로 높아만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의 은혜는 어버이시다
마지막 소절을 부르는대 눈물이 났습니다. ‘스승의 은혜는 어버이시다.’ 스승과 어버이를 동일시하는 이 노래의 가사가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멘토라는 표현도 좋아합니다. 그러나, 스승이라는 표현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승은 자신이 말한 것을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에 대하여 표현할 때, ‘멘토’가 어울리겠습니까? 아니면, ‘스승’이 어우리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선생님’ 이라고 불렀던 것은 ‘성공적인 삶’을 가르치는 ‘멘토이신 예수님’ 을 지칭하기 보다는 ‘삶으로 증명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스승되신 예수님’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신문은 공익적인 도구이지만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계원 스승님 감사합니다. 저희들도 스승님을 본 받아서 또 다른 스승으로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And for this purpose I was appointed a herald and an apostle-I am telling the truth, I am not lying-and a true and faithful teacher of the Gentiles.
– 디모데전서 2: 7
현재 임기호 목사는 호주 시드니에서 ‘MESSAGE SCHOOL'(기독문화 대안학교)과 ‘메시지 교회’를 섬기며 문화사역과 함께 다음세대를 위한 사역을 하고 있다. (facebook: James Ki Ho L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