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44
(평생 초보엄마인 하람맘의 일상 속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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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부모님 또는 형제자매와 함께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그게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는 소리도 난 그저 행복한 투정처럼 들리기만 한다. 그래도 갑자기 일이 생기거나 하면 생각나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게 가족 아닌가. 그래서 나도 희미하게 상상을 해본다. 나의 부모님, 형제자매들이 모두 호주에 와서 산다면 과연 어떨까. 나의 삶에 큰 변화가 올까. 그러며 나는 호주에서 새로운 식구들을 집으로 맞았다. 바로 쉐어생들이다. 렌트비 부담도 조금 덜면서 때로는 친구처럼 가족처럼 지낼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 이다. 생각해 보니 이제까지 꽤 많은 쉐어생들이 우리 집을 거쳐 갔다. 낡고 허름한 집임에도 불구하고 기차역이 비교적 가깝고 근처에 도보로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있기 때문 일 것이다.
호주 초창기 시절. 교회 중고등부 교사로 섬길 때 가르치던 학생이 호주 대학에 진학하면서 우리의 동거는 시작 되었다. 둥근 얼굴에 조신하고 사랑스러운 성격의 그 학생과 우리는 낯선 호주 생활을 하는 동안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다. 숱하게 많은 날을 호주의 추운 날씨와 무시무시한 바퀴벌레를 비난하며 밤을 새웠고 성실함을 무기로 간호대학을 잘 졸업한 그녀는 이제 의젓한 직장인으로 얼마 전에는 행복한 결혼까지 하고 부부가 함께 우리 집을 찾아왔다. 이제는 선생님과 학생이기 보다는 자매가 더 친근할 정도로 가깝다. 힘든 시기를 함께 겪으며 우리는 성장했다. 애도 같이 낳아 키우자며 농담반 진담반 얘기하면 폭소가 터진다. 이렇게 평생을 함께 할 좋은 관계의 쉐어생도 있지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리고 씁쓸한 쉐어생도 있었다. 피아노로 귀하게 섬기던 자매였는데 성격도 활발하고 적극적이라 친구도 많은 분위기 메이커였다. 그런데 우리가 감당 못할 비밀이 너무나 많았다. 보이는 모습이 실제가 아니라는 걸 그녀가 한국에 돌아간 뒤 정확히 알게 된 것이다. 호주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여 도망치듯 한국으로 돌아갔고 그 뒤 한동안 우리는 큰 상처를 받았다. 부디 한국에서는 행복하고 평안하게 지내기를 기도할 뿐 이다. 그밖에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큰 수박 반통을 거침없이 숟가락으로 퍼먹던 먹성 좋은 쉐어생, 화장실에 들어가면 한참동안 나오질 않아 궁금증을 유발시키던 쉐어생, 집에 들어오면 하루 종일 자신에게 있었던 시시콜콜한 얘기를 몇 시간이나 해대는 통에 늘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던 쉐어생 (그래서 우리는 그 애가 들어오는 낌새가 보이면 방으로 냅다 달음질 쳤다), 자기 것은 엄청 아끼면서 세제며 휴지 전기 가스등은 무한하게 나오는 것 마냥 아낌없이 써주던 억수르 쉐어생, 한번 같이 먹자 했더니 매번 식사 때마다 꼭 껴서 먹으려고 하던 눈치 없는 쉐어생 까지 이보다 더 다양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나는 점점 지쳐갔다. 집안에서 조차 구속 받는 느낌이 나를 한없이 힘들게 만들었다. 쉐어생 누군가의 시험기간이 되면 내심 걸음걸이조차 조심스러웠고 삼겹살도 마음 편하게 집에서 구워 먹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손님 초대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말만 우리 집이지 그냥 공동생활을 하는 기숙사와 다를 게 전혀 없는 것 이다. 그러며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마음을 다스리고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 내가 살기 위하여 또 인간관계에서 자유롭기 위하여 스스로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것 이었다.
그 첫 번째 방법은 [인정하기] 이다. 그 사람을 말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이다. 나와 생활패턴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식성도 다른 누군가를 그냥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가족을 바꿀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이다. 두 번째는 [칭찬하기] 이다. 쉐어생이 밥솥에 금방 해놓은 뜨끈한 밥을 도시락으로 다 싸가지고 가고는 밥도 해놓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 ‘알뜰한 아이네. 용돈이라도 그렇게 아껴야지.’ 하고 억지스럽더라도 칭찬을 늘어놓는다. 밤마다 늦게 들어와 운동한다고 마당에서 시끄럽게 굴어도 ‘호주에서 건강이 최고지 늦게 와서도 운동을 꼭 빼먹지도 않고 대단 하네’ 하며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좋은 점들을 바라봐 주면 마음이 좀 편안해 진다. 하지만 이건 상당한 노력과 시간 그리고 연습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불필요한 잔소리는 하지 않되 정확하게는 이야기 할 것) 이다. 나는 주로 혼자 속으로 끙끙 앓는 타입이라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 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불편하고 하기 싫은 일중 하나이다. 얼마나 그것이 힘들었으면 설득의 심리학 이란 책까지 읽으며 연구했을까. 그러나 집안 전체의 평화를 위해 꼭 말해야 할 경우가 있다. 그래서 생겨난 우리 집의 기본 룰은 이러하다.
1.공동의 공간은 사용 후 깨끗이 정리할 것.
2.손님을 초대해야 할 경우에는 다른 식구들에게 미리 공지하여 배려할 것.
3.밤에는 숙면을 위해 각방의 볼륨을 줄일 것.
4.전기, 가스, 수도 등의 공과금을 아껴 쓰는 조건으로 나머지 자잘한 소모품을 함께 나눠 씀 등이다. 예컨대 빨래세제나 일회용 봉지, 많이 쓰지 않는 양념 등은 언제든지 제공한다.
물론 지금은 최고의 멤버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마음이 잘 맞는 쉐어생들과 함께 이다. 우리부부가 바쁠 때는 믿고 하람이를 맡길 수 있고 중요한 일을 함께 걱정해주고 도와주는 그야말로 Share 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나는 작은 소망을 픔어 본다. 언젠가 우스꽝스런 옷을 입고도 맘 편히 방문 열고 살 수 있는 그런 자유의 날이 오겠지 하고 말이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전도사 사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