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57
(평생 초보엄마인 하람맘의 일상 속 에피소드)
아듀! 2014
호주의 더운 날씨에 나도 모르게 기진맥진 해졌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지 스스로 대견하다. 물론 그렇게 상황에 순응하며 지내지만 오늘같이 지나치게 덥고 습한 날은 어쩔수없이 기계의 힘을 빌린다. 바로 선풍기 이다.
책상용으로 나온 작은 은색 선풍기도 이제 꽤 오래 사용해 날개가 돌아 갈 때마다 윙윙 하며 듣기 싫은 소리를 내지만 더울 때는 이마저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하지만 선풍기 바람은 조금 꺼려진다. 잠깐은 시원하긴 한데 모터가 돌아가는 부분은 뜨끈뜨끈해서 과연 시원한 바람이 계속 나오는지도 살짝 의문이고 바람자체가 깔끔하게 톡 쏘는 맛이 없어 미덥지가 못한 것이다. 또한 밤에 약하게 켜놓기만 해도 아침에는 목이 따끔거리고 피부는 잔뜩 건조해지니 왠만하면 냉동실에 얼려둔 아이스팩을 안고 자는 게 현명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하는 곳에서 무심히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를 보며 문득 (고생하는구나 너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바람을 몰고 다니지만 그 덕분에 선풍기 날개에는 먼지가 잔뜩 쌓여간다. 눈에 잘 보이진 않지만 저렇게 겹겹이 무거운 먼지를 품고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은 미안하지만 시원함을 믿기가 어려워진다. 덥지만 당장에 선풍기를 끈 나는 나사를 풀러 선풍기 날개를 닦았다. 앞뒤로 얼마나 먼지가 많은지 끈끈해져 닦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그렇게 물기를 잘 말린 후 다시 조립하고 선풍기를 돌리니 아! 선풍기는 깨끗이 닦아 써야 제대로 된 바람을 즐길 수 있구나 싶다. 왠지 모를 청량함마저 느껴지는 게 기분도 함께 좋아졌다.
그러고 보니 나의 2014년 한해도 선풍기 날개처럼 바쁘게 돌아갔다. 멈출 틈 없이 종일 돌아간 나의 삶. 그러다보니 지금쯤에는 먼지가 잔뜩 낀 상태가 되어 쉬 피곤하고 모든 일에 기쁨도 줄어버렸다. 시원한 바람을 주기는커녕 먼지만 날리는 선풍기처럼 폐만 끼치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잠시 멈추고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과연 올해 나에게 맡겨진 모든 일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는가. 교회 안에서 나의 모습과 세상속의 모습은 동일한 크리스천의 그것 이었는가. 말과 행동이 늘 겸손하고 정직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주었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은 자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가득히 죄악을 품고 살았던 나. 그래서 한해가 가기 전 씻어내고 긁어내고 헹궈서 새로운 2015년을 맞이하고 싶다.
호주에서 얼마나 살았는지 헤아리자면 이제 두 손 다 필요한 딱 그만큼이다. 시간은 어느새 그렇게 흘렀고 내 일상은 늘 뭐가 뭔지 갈피를 못 잡고 헤매였는데 다행히 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1년간 연재하며 올해 꼭 하고자 했던 계획 중 하나를 이루었다. 보고 또 봐도 엉성하고 진지함도 없는 그저 지나가는 애엄마의 주저리 주러리 늘어놓은 수다 같은 글을 사랑해 주고 격려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호주는 나에게 많은 선물을 준 땅이다. 하람이, 교회, 동역자들, 인내, 사랑, 고통, 이 모든 것이 호주이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생 나를 돌봐주신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하실 하나님이 계시기에 감당할 수 있었다. 2015년도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기쁘고 행복한 일들을 만들고자 집에 있는 작은 선풍기 날개를 닦는다. 열심히 닦다보니 콧노래가 나도 모르게나온다. 한국에서 영양사를 할 때 일주일에 한 번씩 대청소 날이면 직원들 중 누군가가 자주 불렀던 오래된 가요의 한 소절을 그렇게 흥얼거렸더니 한글이 서툰(물론 영어도 서툴다)하람이가 이상한 표정으로 묻는다. “엄마! 왜 남자는 배고 여자는 항문이야? 그게 뭐야?” 그래. 남자는 배고 여자는 항구이다. 하지만 항구이든 항문이든 무슨 상관이랴. 정답이 뭐 그리 중요한가. 땅콩하나로도 일등급에서 가장 밑으로 추락하는 것이 우리네 모습인데 말이다. 그러니 인생은 그저 사는 것이 정답 아닐까. 살면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은혜로 받아들이는 노련함. 내년에는 그것을 향해 전진한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전도사 사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