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23
비내리는 날
비가 마구 쏟아 붓든 살금살금 지붕을 타고 내리든 나는 비가 온 후 맑고 화창하게 개는 호주의 날씨가 좋다. 해가 반짝하고 뜨면 수분과 함께 먼지까지 싹 사라져 마치 LCD 화면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리는 비는 아마도 호주의 겨울을 재촉할 것이다, 한국의 4월이 물오른 꽃봉오리가 만개를 준비하는 계절이라면 호주의 4월은 따뜻한 가디건과 커피향이 더욱 좋은 계절이라 하겠다.
그렇게 비가 내린 하늘 한켠에는 자주 무지개가 걸쳐진다, 한국에서 무지개를 본 것이 언제인지 가물가물 하지만 호주에선 종종 무지개를 볼 수 있어 좋다. 어느 날은 쌍무지개가 찬란하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난 하나님의 무지개 약속이 항상 떠오른다. 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양의 비가 하늘에서 떨어질 때 또 다른 커다란 홍수가 나지 않을까 하는 끝없는 두려움에 싸이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가족들에게 무지개를 언약의 징표로 주셨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 할지라…모든 생물 사이의 언약을 기억하리라. 창9;11~16> 약속의 무지개를 주신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노아라는 영화가 화제다.
많은 교회들이 영화가 개봉도 하기 전에 제목만으로 기독교 영화라 생각하고 단체 관람을 준비하기도 한다는데 영화를 직접 보지 않은 내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저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를 모티브로 한 영화이므로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는 사실, 성경적인 요소는 일부 이고 허구가 섞여 있으므로 잘 판단하여 보시는 지혜가 필요할 듯하다. 오늘도 하늘에서는 빗줄기가 제법 굵다. 비가 내리는 날은 잠이 쉽게 깨질 않아 여러 번 낭패를 봤다. 아침이 되도 어두컴컴해서 신체시계도 평소와는 다르게 착각을 하는지 곧잘 늦잠을 자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가 죽죽 내리면 하루 종일 이불속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게으름과 평소에 못 보던 영화나 밀린 드라마를 보고픈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리고 역시 부침개를 빼놓을 수 없다. 겉면은 바삭하고 안쪽은 촉촉하며 부드러운 녹두전, 부추와 호박, 풋고추를 잔뜩 썰어 넣은 일명 그린부침개. 빨간 고추를 넣으면 예쁘겠지만 일부러 안 맵고 초록색인 풋고추를 넣어 완전한 푸른색을 만들면 하람이가 참 좋아 한다.
가장 흔한 김치전은 어떤가. 오징어나 새우등의 해물을 약간 넣고 잘 익은 김치는 썰어 김치 국물과 함께 적당히 잘 섞어 부치면 간단하게 비를 음미하며 즐길 수 있는 명품 음식이 된다. 그렇다면 비가 오는 날 왜 부침개가 그리도 간절하게 떠오르는 걸까? 그것은 바로 밀가루에 들어있는 단백질과 비타민B 때문이라고 한다. 단백질의 주성분인 아미노산과 비타민 B에는 감정을 조절하는 물질이 들어있는데 이것은 우울증이랑 연관된 물질이다.
그래서 비타민B를 섭취하게 되면 우리 몸의 탄수화물 대사가 높아져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비가 오면 습도가 높아지고 일조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우울해 지기 때문에 이럴 때 밀가루 음식이 우울한 기분을 풀어주고 몸의 열기도 식혀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래서 비 오는 날 부침개를 찾는데도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는 건데 굳이 과학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부침개 자체만으로 너무 맛있어 본인은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도 자주 부쳐 먹는다, 간단하고 푸짐한 게 이만한 음식이 없다. 오늘은 오랜만에 혼자 집에 있는 날. 남편과 하람이는 둘 다 부지런히 도시락 들고 학교로 떠났고 나는 혼자 즐겨듣던 노래를 틀고 지글지글 잘 익은 부침개를 옆에 두고는 조금은 폼 안 나는 여유를 즐긴다. 그리고 좋아하는 시 한편을 읇조린다.
<내일 몫은 기쁨. 내일 몫은 환희, 내일 몫은 찬란함, 내일 몫은 영광, 내일 몫은 눈부신 황홀이리. 나는 견디리. 견디어 이기리. 오늘 비가 내려도 내일은 해가 뜨리. 저 하늘의 무지개 그 약속을 믿으리…유안진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양화영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