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25
배우자
지금 옆에 있는 나의 배우자는 어떤 사람인지 요 근래 한번 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항상 옆에 있으니까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 사람이 현재 어떤 고민과 문제를 가지고 있고 무엇을 좋아하며 즐거워하는지 다정하게 얘기해 본 게 오래되지 않았는가… 나또한 다시 한 번 되짚어본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결혼생활 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 했던 것 만 큼 아주 핑크빛은 아니었다. 살아본 사람만이 안다고 하는 것처럼 결혼은 꿈이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아름다운 그림은 아예 없거나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 했다.
한국에서 우리는 학교생활, 직장생활 등으로 참 바빴다.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면 대충 라면이나 지천에 널린 김밥 집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각자 다른 시간에 잠들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연애시절보다 대화시간도 많이 줄고 별거 아닌 일에 쉽게 다투며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부족해졌다. 요즘 신혼여행이 이별여행이 돼서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는데 우리 또한 평생 싸울 일을 신혼 초에 다 한 것 같다. 정말 그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가 호주에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 하에 만들어진 우리 가정을 인정하자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 또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고 서로의 닮은꼴을 찾아보자는 부분도 상당히 컸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왔지만 호주에서의 생활도 어떤 면에서는 만만치 않았다. 남편은 새벽잠을 고스란히 포기해야 했고 나또한 바쁜 일상 속에 빠져들었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들을 감당하고 내가 알던 지식과 경험 또 자신 있어 했던 모든 기술들이 이 곳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낙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를 은혜와 축복의 땅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곳에 와서 한국에 있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마음이 많이 평안해진 나와(그래서 인지 몸도 많이 불어났다^^) 새로운 남편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바쁜 남편이지만 예전처럼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한 공동체라는 것을 실감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음이 상할 때마다 쪼르르 달려가던 친정은 멀리 한국에 있고 싫든 좋든 이제는 둘이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이 있는 시간도 길어지니 서로의 장단점을 보며 얘기하게 되고 그러는 사이 천천히 알아 간다. 확실히 우리 둘은 다르구나 하지만 내가 없는 좋은 점이 있구나 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한국에서는 전혀 몰랐던 남편의 알뜰함이다.
손이 커서 남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넉넉하게 음식을 하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덩치와는 맞지 않게 의외로 꼼꼼하다. 볶음고기를 사와도 꼭 먹을 만큼만 적당히 나눠 냉동 보관한다. 그래서 가끔은 제육볶음이나 불고기에 야채가 더 많을 때도 있다, 그냥 한꺼번에 다 볶아 실컷 먹고 치우는 내 스타일과는 다른 것이다. 오징어를 사오면 얼마 되지도 않는 양을 또 나눠 봉지마다 싸두고 겨우 한번 볶아 먹는 양은 주먹만 한데 그나마도 너무 잘게 썰어 주어 이빨에 씹히는 게 없을 정도다. 처음엔 이런 점이 이해가 안가고 이상하지만 그건 그저 나와 다른 것뿐이지 틀 린 것은 아니다. 그냥 책임감 있게 가정을 꾸리려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배우자란 무엇인가? 配偶者. 그 말 그대로 서로에게 나누는 것이다. 기쁨과 사랑, 따스한 은혜도. 때로는 아픔과 고통, 힘들고 긴 연단의 시간까지도. 호주에 와서 힘든 시간을 보낸 어떤 지인분의 이야기를 곱씹어 본다.
호주에서 사업을 실패하고 전 재산을 다 날려 낙심과 좌절에 빠진 남편 때문에 하루아침에 아내가 가정을 돌보게 된 상황이 되었단다. 그렇지만 아내는 단 한 번도 남편을 원망하지 않고 공허하게 낚시대만 들고 바다에 종일 나가있는 남편을 위해 매일매일 도시락을 싸면서 그저 살아만 오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단다. 그렇게 남편의 회복의 시간을 기다려준 아내. 덕분에 긴 터널을 빠져나와 다시 유쾌해진 남편. 가족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이겨낸 아름다운 기적. 지금은 한없이 행복한 그 가정을 바라보며 저런 레밸이 되기 위해 우리의 노곤한 삶도 몇 년간 지속될 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남편의 꿈을 위해 남편은 나의 꿈을 위해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꿈을 위해 서로를 연습중이다. 그러니 오늘은 몸에 조금 안 좋더라도 남편이 그렇게 좋아하는 콜라보약을 한 캔 챙겨두련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양화영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