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무 목사의 주일묵상
정교분리
교회는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 말은 오늘날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 아무런 여과 없이 쓰인다. 사회적 현안에 대해 교회가 입을 열면 곧바로 정교분리를 어겼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마치 침묵만이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는 길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결론은 정치가 교회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다는 사실이다. 과연 교회의 침묵은 성경적인 선택인가.
한국 교회가 정치적 사안에 대해 조심스러워진 데에는 분명한 역사적 이유가 있다. 권위주의 시대에 일부 교회와 지도자들이 권력과 결탁하며 신앙을 체제 유지의 도구로 전락시켰던 어두운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강단이 정치적 선전의 장으로 오해받았던 경험은 교회로 하여금 말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태도를 학습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점차 원칙이 아니라 습관이 되었고, 나아가 신앙적 미덕처럼 포장되었다는 데 있다.
정치적 갈등이 커질수록 교회의 침묵은 더 요구되었다. 그리고 침묵은 어느새 신실함의 증거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정교분리는 침묵을 명령하는 교리가 아니다. 이는 성경의 직접적인 교리가 아니라 역사적 정치적 원칙의 천명이다. 그 핵심은 분명하다. 국가는 교회를 지배하지 말고, 교회는 국가 권력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교회를 억압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보호막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 안에서 정교분리는 자주 왜곡되어 사용되어 왔다. 정교분리는 “교회는 사회 문제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자기 검열의 논리로 작동했다. 그 결과 교회는 공적 영역에서 점점 목소리를 잃어갔다. 이는 정교분리의 본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성경은 정치 앞에서 침묵하라고 말하는가.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백성은 정치권력 앞에서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
특히, 구약의 예언자들은 개인의 신앙을 넘어 국가와 사회 전체를 향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다. 나단은 왕 다윗의 죄를 공개적으로 책망했고, 엘리야는 아합 왕의 불의한 통치를 고발했다. 아모스와 미가는 제사와 예배가 아무리 화려해도 정의가 무너진 사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외쳤다.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이 외침은 개인의 윤리를 넘어 정치와 제도의 영역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였다.
구약은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은 바른 정치, 바른 사회를 향해 말씀하신다. 신약도 다르지 않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개인의 내면에만 머무는 영적 개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존 질서와 가치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었다. 세례 요한은 왕의 부도덕을 비판하다 목숨을 잃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는 주”라는 고백으로 정치적 위협이 되었다. 복음은 본질적으로 공적 함의를 지닌다.
많은 이들이 우려한다. 교회가 정치의 선전 도구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이 우려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교회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해서는 안 되며 강단은 결코 이념을 주입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정치적 선전과 예언자적 발언은 동일하지 않다. 선전은 권력을 위해 진리를 선택적으로 사용하지만, 예언은 진리를 위해 권력을 향해 말한다.
교회가 생명 경시, 구조적 불의, 약자 차별, 거짓과 위선, 혐오에 대해 성경적 기준으로 말하는 것은 정치 참여가 아니라 신앙의 표현이다. 불의 앞에서의 중립은 결코 중립이 아니다. 성경은 언제나 고아와 과부, 나그네의 편에 서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증언한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가 사회의 고통 앞에서 완전히 침묵하는 것이 과연 신앙적인 태도일까?
교회의 사명은 정치를 소유하는 데 있지 않다. 동시에 정치 아래 숨어 침묵하는 데에도 있지 않다.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곁에 서서, 사회와 국가를 향해 질문하고 경고하고 증언해야 한다. 그것이 예언자적 전통이며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는 길이다.
정교분리는 교회의 입을 막는 족쇄가 아니라 교회의 양심을 보호하는 원칙이다. 한국 교회가 다시 성경적 상상력과 예언자적 용기를 회복할 때, 정치는 복음의 주인이 아니라 복음의 질문을 받는 대상이 될 것이다. 그때 교회는 침묵이 아닌 책임 있는 말하기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떠나는 신앙
익숙함이 신앙처럼 굳어 가던 밤
하나님은 주소 대신 방향을 주셨다.
아브라함은 묻지 않고 짐을 꾸렸고
자유는 첫걸음을 얻어
소유를 줄일수록 길은 또렷해졌다.
장막과 제단 사이에서
붙드는 삶보다 맡기는 삶이
사람을 가볍게 한다는 것을 배웠다.
셀 수 없는 별 아래서
계산을 버리는 마음
그리 될 것이라는 약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의로 기록되었다.
모리아의 언덕은 생사의 갈림길
가장 사랑한 것을 내려놓는 자리
믿음은 시험을 넘어 해방이 되고
하나님은 다시 생명을 건네니
참 자유는 순종의 이름으로 남았다.

한상무 목사
시드니생명나눔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