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50)
빅 퀘스천 (Big Question)
한국의 카이스트 (KAIST)에서 일하는 김대식 교수의 책, ‘김대식의 빅퀘스천’ (김대식 지음, 동아시아, 2014), 거의 앞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15쪽)

아이들은 가끔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으로 어른들을 당혹하게한다.
‘초콜릿 먹으면 왜 안돼?’
‘이 상하니까’
‘이 상하면 왜 안돼?’
‘음식을 못 먹으니까’
‘음식을 못 먹으면 왜 안돼?’
‘아파서 죽을 수 있으니까?’
‘죽으면 왜 안돼?’
‘엄마 아빠가 슬프니까’
‘슬프면 왜 안돼?’
‘……’ (말문이 막힙니다)
대학 1학년 초, 철학개론 첫 시간에 철학과 선생님들이 흔히 꺼내는 화두입니다.
한 학생이 급히 강의실로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교수가 물었습니다.
‘학생, 왜 이렇게 바삐 가나?’
‘수업에 늦을까봐요’
‘수업에 늦으면 어떻게 되는데?’
‘강의를 다 들을 수 없지요’
‘강의를 다 못 들으면 어떻게 되는데?’
‘시험 칠 때 제대로 답을 못 쓰게 되지요’
‘시험을 잘 치면 어떻게 되나?’
‘그야 좋은 성적을 받게 되지요’
‘좋은 성적을 받으면 무엇이 좋은가?’
‘졸업 후 원하는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지요’
‘그래,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무엇이 좋은가?’
‘월급 많이 받고 저축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럼 그 후에는 뭘 할 건가?’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아이들도 갖겠지요’
‘그래,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세월이 지나 나이 먹고 저도 은퇴하겠지요’
‘아 그렇구만… 은퇴 후에는 뭘 하겠나?’
‘아내랑 세계 여행이나 하면서 노후를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
‘그 후엔 또 무얼 하겠나?’
‘무얼 하겠습니까? 그 때가 되면 저도 죽겠지요’

‘그렇구만! 그럼 수학에서 문제를 풀 때, 중간의 식은 다 생략하고 답 만 말하는 것 처럼, 한번 답만 말해보게. 학생은 지금 왜 이렇게 바삐 가나?’
‘아… 죽으러 가는 것이네요 !’
세계에서 질문을 가장 많이 하고, 잘 하는 민족은 유대인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너 오늘 뭘 배웠니?’ 하면서 ‘배운 것’을 물어봅니다.
그런데 유대인 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이렇게 묻는다지 않습니까?
‘너 오늘 무슨 질문을 했니? 너 오늘 선생님께 뭘 물어봤니?’
질문이 없는 곳에는 답도 없습니다.
인간은 질문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질문을 통하여 성장합니다.
자연도, 역사도, 인간도, 신도, 사상도, 과학도, 도덕과 종교 등등 세상 모든 것은, 질문으로 부터 출발하여, 질문을 통하여, 생각하게 되고, 답을 추구하게 되고, 더 깊고 넓은 이해를 더해 가게 됩니다.
우문현답, 현문우답, 우문우답, 현문현답 – a wise answer to a silly question / a silly answer to a wise question / a silly answer to a wise question / a wise answer to a wise question –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문이든, 현문이든, 일단은 질문이 먼저 던져지는 곳에 답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이어집니다.
소크라테스의 질문법,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Socratic Method는철학에서 가장 오래된 방법론 중 하나 입니다. 그는 사람들을 향하여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 가면서 제일 마지막에는, 자기 입으로 스스로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라고 실토하게 이끌었습니다. 그럼 그때, 소크라테스는 말합니다. ‘되었네! 자네는 이제 자네의 무지를 알게 되었으니!’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계속한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알게 해 주려는 것’ ‘자신의 무지를 깨우쳐 주려는 것’ – 그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너 자신을 알라’ – Know Yourself ! 를 그의 철학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 그 하나만은 안다’ – I know only one thing that is that I know nothing. 한 시대의 한 위대한 철학자는 이렇듯 쉬임없는 질문으로 부터 출발하였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질문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심하고, 의아해하고, 질문함으로 더욱 성숙해 집니다.
출발은 그져 아무 질문이나 괜찮습니다. ‘나는 왜 밥을 먹는가?’ ‘나는 왜 운동을 하는가?’ ‘나는 왜 이 글을 읽고 있는가?’로 부터 출발해 보십시요. 계속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다 보면 우리는 우리가 미쳐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모든 질문에는 호기심, 궁금해 하는 마음, 의심스런 마음이 그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인간 존재는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그 나이에 걸맞게 항상 끊임없는 호기심, 궁금증, 그리고 의심과 질문이 있습니다. 의심하는 것과 그 의심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실험해 보고, 토론해 보고, 그러다가 그것을 말하고, 글로 써 보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욕구 중 하나 입니다. 이런 호기심과 의심과 탐구심은 그 어떤 법률이나 종교적 교리나, 그 무엇으로든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인문학교실의 목표 중 하나는 우리 모두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질문하는 기쁨, 질문을 통한 자기 발견은 우리의 아주 소중한 관심사 입니다.
사람 마다 자신이 처한 환경, 자신이 해본 경험, 자신이 가진 생각에 따라 빅 퀘스천, 가장 크고 소중한 질문이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문제가, 또 어떤 이에게는 경제문제가, 그리고 다른 이에게는 가정문제, 자녀문제, 부부문제, 종교문제, 정치문제,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 등등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 인간들 대부분에게 던져지는 그 어떤 공통된 문제, 공통의 질문은 없을까요? 만약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이는 종교적 질문이 아닙니다. 과학적 질문만도 아닙니다. 사회학적, 정치학적, 인류학적 질문만도 아닙니다. 물론 고갱이 그의 작품의 제목으로 이 질문을 붙였다 하더라도 이는 실로 고갱의 질문만도 아닙니다. 이는 인간 모두가 지닌 가장 공통적이며 가장 깊고 심오한 빅 퀘스천입니다.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이 작품은 고갱 (Paul Gauguin)이 1897년에 그린 것으로 지금은 미국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김대식교수는 그의 책 ‘빅 퀘스천’에서 31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큰 질문은 3가지 입니다.
삶은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정의를 기대하는가?
만물의 법칙은 어디서 오는가?
이에 따라 그가 우리들에게 묻는 질문 31가지를 정리해 봅니다.
존재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왜 먼 곳을 그리워하는가?
원인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친구란 무엇인가?
삶은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환상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인간은 왜 죽어야 하는가?
운명이란 무엇인가?
영혼이란 무엇인가?
진실은 존재하는가?
인간은 무엇을 책임질 수 있는가?
우리는 왜 정의를 기대하는가?
민주주의는 영원한가?
로마는 정말 멸망했는가?
왜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는가?
인간은 왜 유명하고 싶어 하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소유란 무엇인가?
가축은 인간의 포로인가?
우리는 왜 사랑해야 하는가?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시간은 왜 흐르는가?
인간은 어떻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가?
만물의 법칙은 어디에서 오는가?
노화란 무엇인가?
정보란 무엇인가?
마음을 가진 기계를 만들 수 있을까?
인간은 기계의 노예가 될 것인가?
인간은 왜 필요한가?
Carpe diem !!!
(인문학 친구 여러분께 드립니다. 그 동안 부족한 사람이 잡기장이란 이름으로 아침 마다 올려 온 글을 오늘로써 마감하려고 합니다. 아직 코로나로 인한 lock down이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어제 저녁 부터 우리 인문학교실이 비대면으로, zoom으로 나마 다시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뵈올 수 있어서 참 기뻤습니다. 아마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9월, 10월, 11월 석달은 어제 처럼 매주 1째와 3째 주 목요일 저녁 7시에 만나 전 처럼 함께 배우고 사귈 수 있는 모임이 계속 될 것 입니다. 그 동안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글, 그야말로 일천한 잡기장을 읽어 주시고 여러가지 모양으로 함께 해 주신 여러분들께 마음 곳에서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