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60) 중에서 _ 9월 11일자

“반성문”
요즘도 초등학교에서 계속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국민학교 때는 담임선생님이 가끔 반성문을 써오라는 숙제, 혹은 벌을 내리신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싸웠거나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았거나 교실에서 소란을 피웠거나 등등 문제를 일으켰을 때는 꾸중이나 벌을 내리신 후 ‘집에 가서 내일 까지 반성문 한장 써와’ 라고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그 시절 반성문을 쓰게 하셨던 데는 여러가지 교육목적이 들어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한글 공부 연습, 글쓰기를 통한 창작 훈련,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사고 교육,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상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도덕 교육 등, 참 여러가지 목적이 그 시절 ‘반성문 쓰기’에 담겨있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인문학 친구들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세계 3대 참회록 (고백록)으로는 흔히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루소의 참회록,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들지 않습니까? 저 역시 젊은 시절에 읽었던 그 글들이 오랫동안 하나의 위대한 반성문으로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서있는 한 인간의 신앙과 신학을 담아낸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이에 대해서는 2019년 3월 21일 우리 인문학교실에서 주경식 교수님이 한 명강이 자료로 남아있습니다.) 자신의 내면 세계를 정직하게 들추어낸 루소의 참회록, 인간과 휴머니즘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게 해 주는 톨스토이의 참회록 모두 초등학교 시절의 반성문 쓰기를 이어준 저의 젊은 날 독서 여행 중에 만난 축복들이라 하겠습니다.
요즘은 자서전을 출간하는 분들이 퍽 많이 있습니다. 정치적, 사회적 유명인사들로 부터 평범한 시민들도 자서전을 많이 쓰십니다. ‘모든 자서전은 거짓말이다. 대부분의 자서전이란 이름이 붙은 글들은 자기의 실수나 잘못은 숨기고 자기 자랑으로 일관되어 있다’ – 혹평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이름이 넓리 알려진 사람들의 자서전 중에는 정치적 목적이나 인기나 화제거리들을 자서전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하여 돈을 벌려는 상업적 목적도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통 소시민들의 자서전쓰기는 우리 초등학교 때의 반성문 쓰기 처럼 일상을 돌아보는 자기 반성, 늙어도 계속해서 글쓰는 습작훈련, 그리고 나이들어도 무엇인가를 자꾸해 보는 창조적 자기 기쁨과 보람 같은 것을 담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인문학친구들도 반성문이라 하든, 참회록이라 하든, 자서전이라 하든, 한번 자기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글을 써보시길 권면합니다. ‘아니 원 세상에 홍길복 같은 사람도 잡기장을 쓰는데’ 하시면서 용기를 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어른이 된 후 거이 일생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을 주로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 곳 저 곳에 글도 더러 쓰고, 보잘 것 없는 책도 몇권 냈습니다. 거기에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문학교실이 모이질 못하니 그 핑게를 대면서 우리 카톡방에 그져 글 같지도 않은 잡기장을 마치 심심풀이 하듯이 내보내기도 합니다.
지금의 모습을 포함하여 지난 날을 돌이켜보며 뭐, 참회 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을 반성합니다. 지난날 했던 설교문들도 가끔 들춰봅니다. 남아있는 기도문들도 다시 읽어 봅니다. 어제는 이 카톡방에다 올린 글들도 모두 다시 한번 읽어 보았습니다. 정말 미안도하고 부끄러워서 말을 못하겠습니다. 짧은 지식, 다듬어지지 아니한 식견과 판단, 유치한 표현, 하느님의 이름을 동원한 권위와 위선, 틀린 단어나 오자, 탈자 같은 것들은 모두 차치하고라도, 표현 방법의 미숙함을 넘어서, 혼자만 아는 척, 혼자 잘난 척했던 것들이 다 들켜납니다. 정말 부끄럽고 챙피합니다. 아직도 완벽주의자로 남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이제 그만’이 답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하게됩니다. ‘모든 게 다 쓸데 없는 거야! 헛되고 헛될 뿐인데…’ 하면서 이 새벽, 저는 국민학교 때 한글을 배우며 글쓰기를 연습하며 반성문을 썻던 것 처럼, 저 자신을 마주합니다. 쓰잘데 없는 잡문,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스레를 뜬 라틴어 인문학, 오늘로 100 번째가 되는 날이니 거기 제 얼굴이 보여 반성문을 씁니다.
반성합니다.
남들이 2, 3천년 전에 다 해놓은 이야길 저 혼자 아는 양 수선을 떨어서 부끄럽습니다. 다 이미, 남들이 했던 이야기들입니다. 새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무릇 내가 하는 이야기는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건데 단지 말을 않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아는 것은 남들도 다 아는 것이고 내가 하는 일은 남들도 다 할수 있는 일인데 너 보고 하라고 양보하고 있는 거야! 이 바보야!’
추천도서 :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선한용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3 / 김희보 옮김, 동서문화사, 2008 / 최민준 옮김, 바오르의 딸, 2010; ‘참회록’, J. J. 루소, 홍승호 옮김, 동서문화사, 2016; ‘톨스토이 인생론 참회록’, 육문사, 2012
(감사의 말씀 : 지난 4월 27일, 처음 카톡에서 잡기장을 시작할 때는 한 100회 쯤이나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코로나가 우릴 여기까지 오게 했네요. 생각 같아서는 어디 팤에서 커피라도 한잔 나누면서 얼굴도 뵙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지만 형편이 허락하지 않는군요. 하여튼 백문경 대표님을 위시해서 모든 인문학 친구들에게 마음 속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은 않하시지만 뒤에서 격려해 주시고, 읽어주시고, 또 다른 친구들과 나누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