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65) 중에서 _ 9월 23일자

Mr. Historian
1894년 호남지역에서 일어났전 ‘그 사건’은 여러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처음엔 동학난이라고 하더니 그 후엔 갑오농민봉기, 농민전쟁, 동학운동을 거쳐,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동학혁명이라고 합니다. ‘난이다. 운동이다. 봉기다. 전쟁이다. 혁명이다’ 한 가지 역사적 사건이지만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다양하게 기술합니다. 우리 중학생 때는 ‘동학난’이라고 가르치고 배웠지만 지금 교과서에는 거의가 ‘동학혁명’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4.3도, 4.16도, 4.19도, 5.16이나 5.18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건은 하나이지만 해석은 여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팩트'(fact)는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안에서 본 사실 – 흔히 내재적 접근법이라고 하지요 – 과 밖에서 보는 사실 – 흔히 객관적 접근법이라고 하잖아요 – 이, 똑같이 일치하지는 않지요. 하나의 사건도 동서남북 같은 보는 자리와 낮과 밤, 아침과 저녁 같은 보는 시간에 따라 차이가 생겨난다는 이론 때문에 ‘모든 역사는 보는 시간과 보는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수있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지요. ‘우리는 마치 팩트는 하나인양 생각하지만 팩트는 여럿이다’라는 포스트 모던이즘적 역사이해는 이런 데서 연유하게 됩니다.
누가 오늘의 정치권력을 잡고 또 대중적 지지를 받느냐에 따라 역사해석도 다른 춤을 추게 됩니다. 예전 우리는 컬럼버스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개척자로 배웠지만, 지금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식민지지배에 앞장서온 침략자라고 가르칩니다. 팩트는 하나지만 그 팩트에 대한 해석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훨씬 다양화되어왔습니다.
‘역사란 객관적 사실을 서술하는 작업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에 대한 현재적 해석이고 현재적 평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역사가일 수 있습니다. 칼 벡카 (Carl L. Becker)는 일찍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Everyone is his own Historian. Everyman is Mr. Historian. 지난 세기 초엽 미국 역사학회 회장이었고 코넬대학 교수였던 그는 역사해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모두들 ‘역사해석의 주체자’가 되고 있나요? 안타깝게도 오늘날 역사해석의 키와 권위는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모든 역사적 팩트와 그에 대한 해석들은 – 그것이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심지어는 종교적이든 간에 – 오직 권력과 금력을 장악한 사람들과 그 그룹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서 해석될 뿐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그 무서운 틀을 벗어나질 못합니다. 역사는 승자의 현재적 해석이고 그 해석의 권위는 슬프게도 더 많은 돈과 더 강한 힘을 지닌 사람들이 좌우합니다. 진 사람, 없는 사람에게는 입이 천개라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몇십년 전에는 총과 땡크를 지닌 군인들이 역사를 만들더니 이제는 돈과 여론과 선동으로 무장한 정치인들이 Mr. Historian 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진정 우리같은 민초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시대, 나도 Mr. Historian 이 되는 날이 올까요?
좋은하루되시길 바랍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