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93) _ 1월 27일
“길복형!”

지난 연말, 수년전 신학교에서 저의 강의를 수강했던 제자(?) 중 한분이 오랜만에 e-mail로 성탄과 새해 인사를 보내왔습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길복형! 세상 참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길복형!” 참 신선한 호칭이었습니다. 아니 놀라운 호칭이었습니다. 기타치며 노래 잘하고, 음악을 좋아하던 친구인지라, 아마 이즈음 유행하는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하는 가수의 노랫말에서 따온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기분이 나쁘질 않았습니다. 사실 제자라고는 하지만 그이도 70을 바라보는 나이로 피차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관계이긴 합니다만, 평생을 늘 ‘목사님 목사님’ 아니면 ‘교수님 교수님’ 소리만 들어왔던 저로써는 퍽 인간적이고, 꾸밈없이 다가오는 느낌이 너무 좋아, 저도 답장을 쓰면서 “김형!”이라고 부르며 인사를 보냈습니다.
스위스의 언어철학자 소쉬르 (Ferdinand de Saussure)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사용하는 그 언어에 따라서 자신의 생각을 결정하게 된다.”
시인 김춘추는 그의 시 “꽃”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꽃이라 부르기전 너는 실재로 꽃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야! 내가 널 꽃이라 부르니까 꽃이 된거지”
그렇습니다. 이름을 붙임으로, naming을 함으로 역사나 사건이 만들어지고, 한 존재가 마침내 존재로 형성이 됩니다.
오래전, 어느날 목사안수를 받고 돌아온 날, 교인들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목사님 목사님”이라고 불러주는 바람에 아직 준비가 많이 덜된 상태에서 그냥 목사가 되어버리고만 직업인으로써의 목사를 떠나, “길복형!”이라 불러줌으로 내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해 준 그 친구가 참 고마웠습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