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알바니아 (Albania)의 (독일로부터) 독립기념일
알바니아 (Republic of Albania)는 동남유럽 지역에 위치한 국가이다. 공식 국명은 알바니아 공화국이다.
1190년, 사상 첫 알바니아인의 국가 알바논 공국이 세워졌다. 이후 15세기에 알바니아는 오스만 제국에 병합되고, 이후 500년 동안 제국의 식민지배 하에 있게 된다. 이후 유럽 지역에서 오스만 제국이 몰락하고, 발칸 전쟁이 발발하며 알바니아는 1912년 11월 28일에 독립을 선언, 이듬해에 국제 사회로부터 독립국의 지위를 인정받는다. 또한 1944년 11월 29일은 독일로부터 해방된 독립기념일이다.

총면적 28,748km2로 2016년 기준 300만 명 가까이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티라나는 알바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이며, 두러스와 블로러 등의 대도시들이 알바니아에 위치하고 있다. 알바니아는 발칸반도에 위치하여, 북서쪽으로는 몬테네그로, 북동쪽으로는 코소보, 동쪽으로는 마케도니아 공화국, 남쪽과 남동쪽으로는 그리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알바니아는 북쪽으로는 지중해, 서쪽으로는 아드리아해,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이오니아해와 해안선을 맞대고 있다. 알바니아는 이탈리아와 오트란토 해협을 두고 72km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고전 고대 시대 동안, 현대의 알바니아 지역은 여러 일리리아 사람들과 그리스인들의 고향이 되어주었다. 일리리아 전쟁 이후에는 로마 제국에 병합되었고 로마의 행정구역 중 달마티아, 마케도니아, 그리고 모이시아 주의 일부분으로 쪼개졌다. 1190년, 사상 첫 알바니아인의 국가 알바논 공국이 세워졌다. 이후 15세기에 알바니아는 오스만 제국에 병합되고, 이후 500년 동안 제국의 식민지배 하에 있게 된다. 이후 유럽 지역에서 오스만 제국이 몰락하고, 발칸 전쟁이 발발하며 알바니아는 1912년 독립을 선언, 이듬해에 국제 사회로부터 독립국의 지위를 인정받는다. 알바니아 왕국은 1939년 이탈리아의 침략을 받고, 1943년에는 나치 독일의 보호령이 되었다. 이듬해, 알바니아는 엔베르 호자와 그가 이끄는 노동당에 의해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알바니아는 공산주의 시기 동안 다양한 방면의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겪었으며, 이 시기 동안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을 감내해야 했다. 1991년, 사회주의 공화국이 해체되고 알바니아 공화국이 새로이 설립되었다.
알바니아는 민주주의 성격의 개발도상국으로, 세계 평균의 기준에서 중상 단계 정도의 소득 경제를 운용하고 있다. 서비스 부문이 알바니아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산업과 농업 부문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알바니아의 공산주의 체제의 해체 이후, 시장경제 차원의 경제 개혁이 알바니아 안에서 이루어지며 해외 투자의 문을 개방하였는데, 특히 에너지와 교통 인프라 부문에 많은 부분을 개방해놓았다. 알바니아는 높은 HDI 지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보편적인 의료 시스템과 무료 초중등교육을 알바니아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알바니아는 UN, NATO, WTO, 세계은행, 유럽 의회, OSCE, OIC의 회원국이며, 유럽 연합의 회원국 지위를 신청해놓은 상태이다. 알바니아는 에너지 공동체, 흑해 경제 협력 기구 그리고 지중해 연합의 창립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알바니아는 남유럽 지역 최대 규모의 호수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들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 어원
알바니아의 이름은 중세 라틴어에서 비롯되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지리학자이자 천문학자였던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가 서기 150년 지도를 제작할 당시 두러스의 북동쪽에 위치한 알바노폴리스라는 도시를 명시할 때 알바니 (Albanët)의 일리리아인들을 명시할 때 유래된 것이라는 추측이 가장 유력하다.
알바니아의 이름은 중세의 아르바논 공국으로 지속되었다고 하나, 두 이름이 명시된 곳이 같은 장소였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가였던 미하일 아탈리아티스는 자신이 1079년에서 1080년 당시 집필한 저서 역사에서 1043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대항한 사람들로 알바노이를 처음 기술하였으며 디라키움 공작이 다스리는 사람들을 아르바니타이라고 기술하였다.
중세 동안, 알바니아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아르버리” 또는 “아르버니”라고 불렀으며 자신들을 “아르베레쉐” 혹은 “아르베네쉐” 사람들이라 지칭하였다.
오늘날의 알바니아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슈치퍼리” 혹은 “슈치퍼리아”라고 부른다.
17세기부터 지명 슈치퍼리아와 민족 데모님 슈치파레가 아르베리아와 아르베레쉬를 대체하였다.
두 단어는 “독수리들의 땅” 혹은 “독수리들의 아이들”로 종종 해석된다.

○ 약사
기원전 10세기경부터 알바니아인들은 발칸반도 서부에 거주하였으나, 독립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14세기 후반까지 주변 강대국인 로마· 비잔틴· 슬라브제국 등의 지배를 받았다. 그 뒤 19세기 말까지 터키의 통치하에 있었다. 1912년 발칸전쟁에서 터키가 패하자 알바니아는 독립을 선언하고,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국제적으로 독립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으로 다시 이탈리아와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되자 이에 항거하였다. 이후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호자 (Hoxha)의 영도 아래 1944년 11월 29일 독일로부터 독립하였고, 1946년 공산주의 정부를 수립하였다. 따라서 유고슬라비아의 영향권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1948년에 유고슬라비아가 소련 (지금의 러시아)과 결별하여 독자노선을 걷자, 알바니아는 유고슬라비아의 팽창을 두려워하여 소련의 대유고 공세에 가담하였다.
1951년 스탈린식 계획경제체제를 도입하는 등 친소노선으로 전환하였고, 1955년에는 바르샤바조약기구에 가입함으로써 완전히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스탈린 (Stalin,I.)이 죽은 뒤에 흐루시초프 (Khrushchyov, N.)의 반스탈린 노선 강요와 경제 간섭, 유고슬라비아와의 화해 등으로 1961년 소련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소련과 대립 중이던 중국의 동맹국이 되었다.
이어서 1968년에는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항의하여 일방적으로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탈퇴함으로써 동구권에서는 유일하게 친중국 세력이 되었다. 한편, 호자는 알바니아노동당을 창건한 이래 이와 같은 대외정책 노선이 변경될 때마다 국내의 반대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하여 폐쇄적인 일인독재 장기집권체제를 약 40년 동안 유지하다가 1985년 사망하였다. 그의 사후 권력구조가 개편되었으나, 스탈린식 강압정치와 경제침체 등의 유산이 쉽게 청산되지 않았다.

1970년대 중국이 미국에 접근하자 이를 기회주의적이라고 비난하여 중국과의 관계조차 냉각되는 등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추구하면서,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유럽안보협력회의 (CSCE)의 참가도 거부하였다.
그러나 루마니아에서 유혈 민중 봉기에 의해 차우세스쿠 정권이 몰락하자 알바니아는 알리아 (Alia, R.) 노동당 (19991년 6월 ‘사회당’으로 당명 변경) 제1서기의 주도하에 ‘위로부터의 부분적·점진적 개혁’을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90년 3월 카바야에서 최초로 반 (反)공산 민주화 시위가 발생하였다. 1991년 4월 26일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로 신헌법을 제정하고, 국호도 ‘알바니아인민사회주의공화국’에서 ‘알바니아공화국’으로 변경하였으며, 신 (新)국회 간접선거에 의해 알리아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992년 3월 급진 개혁 세력인 민주당이 두 번째 자유 총선에서 승리한 이루 개혁·개방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1992년 4월 카리스마적인 민주당 당수 살리 베리샤 (Sali Berisha)가 임기 5년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국내 질서 회복과 경제 난국 타파를 추진하였다.
일리르 메타 (Ilir Meta) 현 대통령은 2017년 4월 의회의 투표에 의해 제7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내각을 이끌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도우파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55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또한 알바니아 특유의 종교적 (이슬람교) 영향으로 알제리· 이집트· 리비아 등과는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진출은 활발히 하고 있다.

참고 = 위키백과
